- 밀리언셀러 클럽 한국편 001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1
김종일 지음 / 황금가지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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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은 인간의 신체의 일부를 소재로 한 열 개의 단편이 실린, 한국 공포소설 작가 김종일의 장편소설이다. 단편이 실렸다면서 장편소설이라 지칭하는 것은 이 작품의 특성 때문이다. 이야기는 초반부터 독특한 설정으로 독자들을 몰입시킨다. 주인공인 영화감독 앞에 불쑥 나타난 한 남자가 건넨 원고에 적힌 제목- 김종일 장편 소설 "몸"  바로 이 책의 저자의 실제 이름이고, 작품이름이지 않은가. 이것은 독자에게 이 작품이 마치 작가가 실제로 겪은 일인 것처럼 여겨지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온다. 그리고 주인공이 원고를 읽는 행위가 독자가 이 책을 읽는 행위와 일치하게 됨으로써 나중에 그가 겪는 공포가 독자에게도 전이된다. 액자 소설 형태를 취함으로써 연관성이 없는 각 단편들을 결집시키는 묘미를 지닌 작품이다. 

  이 작품에도 언급이 되는데, 친구의 추천으로 이토 준지의 <토미에 PART>라는 공포 만화를 보던 날이 생각난다. 머리가 머리 위에 일렬로 십여 개나 달라 붙어 있는 사람이 마치 애벌레처럼 기어 나오는 그로테스크한 장면이나 신체의 일부-목이나 팔, 다리 등-가 고무인형처럼 길게 죽~ 늘어난 엽기적인 모습은 소름을 돋게 만들었다. 나는 그 만화를 보면서 인간의 신체의 변형이 얼마나 괴기스럽게 느껴지고 공포스러운지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날 밤 다 큰 어른이 화장실 가는 것이 겁이 나 참고 있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우스운 듯 하면서도 다시 섬뜩해진다. '공포'는 실체를 지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내면에 소리 없이 자리잡고 있다가 일시에, 또는 서서히 덮쳐 옴으로서 인간의 마음을 심약하게 만드는 힘을 지닌 것 같다.

  영화감독이 연 판도라의 상자(원고)에 실린 첫 번째 작품은 "눈"이다. 마음의 창이라 지칭되는 눈은 우리 얼굴, 즉 제자리에 있을 때는 맑은 영혼을 드러내는 아름다운 존재이다. 하지만 만약 이를 따로 떨어뜨려 놓았다고 상상해 보라. 제자리를 탈출한 눈알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으며, 그저 혐오스러운 물체로 여겨질 따름이다. 이처럼 인간의 신체를 이루는 각각의 부분들은 제 위치에서 다른 부분들과 균형을 이루고 있을 때나 아름답지 따로 떼놓는 순간부터 그것은 그저 불쾌한 느낌을 안겨주는 살덩이 일뿐이다. 작품 속에 묘사되는, 인간의 신체가 파괴되는 장면들은 끔찍하면서도 엽기적이다. 

  "머리카락" 편은 유독 머리카락에 손이 닿는 것을 싫어하는 아내가 나오는 이야기다. 무심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다 책장-심지어 그다지 매끈해 보이지 않는 책장일 때도-에 베이는 경우를 한두 번씩은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책장이 손가락을 스치고 지나가는 그 찰나의 순간에 살갗을 가르는 따끔하면서도 서늘한 그 느낌!  머리카락이 쭈뼛 서고 식은 땀이 솟는 순간이 지나면서 생살이 벌어진 틈 사이로 새빨간 핏방울이 불쑥 흘러 오르는 것을 보는 순간에 찾아오는 찜찜함과 더러운 기분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이런 순간에 찾아오는 예기치 않는 불쾌함은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에 손을 벤 것도 아니고, 전혀 위험할 것 같지 않은 평범한 물건이 나에게 위해를 가할 수도 있다는 섬뜩함 때문일 것이다.

 목욕을 하다 보면 빠진 머리카락이 욕조 속에 떠다니게 되는데 이를 가만히 지켜 보면 마치 뱀이 유영하는 듯한 착각이 인다. 생명을 다해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간 대상이 하나의 생명체 마냥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건 과히 좋은 느낌이 아니다. 그리고 나도 마찬가지지만 아이들이 무척 싫어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목욕 중에 머리카락이 몸에 달라 붙는 것이다. 길다란 머리카락이 몸에 들러 붙어 있으면 마치 벌레가 몸 위를 꿈틀거리며 기어 다니는 듯한 징그러운 느낌을 주어 때로는 소름이 돋기도 한다. 한 때는 내 몸의 일부였던 그것을 한시라도 빨리 떼어내 버리지 않고는 참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몸" 편은 컴퓨터와 관련된 중독 증세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흔히 TV 혹은 컴퓨터에 오랫동안 몰입해 있는 사람을 보고 '달라 붙어' 있다는 식의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 작품은 바로 그런 형상을 실체화하고 있다. 왜소한 신체로 인해 사회적 약자에 속하는 남편은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하루의 대부분을 컴퓨터 앞에서 지낸다. 사용하거나 보지도 않을 파일이나 프로그램을 인터넷 접속을 통해 다운로드 받는 것에 매료된 남편은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하며 오직 그 일에만 몰입한다. 아내가 의사와 상담할 때 언급하는 인터넷-새로운 것이 계속 등장하는 정보의 바다-의 생리와 '저 모퉁이만 돌아서면' 증후군은 컴퓨터와 인터넷에 몰입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폐해를 경고하고 있는 듯 하다.

 <이프/이종호>에서도 우리나라 공포소설의 척박한 환경과 작가들의 어려움을 살짝 엿볼 수 있었는데 저자 역시 이 작품에서 우리나라 공포 소설 작가나 영화 제작자의 어려움을 드러내고 있다. "공포" 편을 보면 영화감독의 아내가 남편에게 '유독 돈 안 되는 공포영화'만' 물고 늘어지는 것에 대해 시비를 거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둘의 대화장면에 우리나라 공포영화나 외국 공포영화 작품이름이 줄줄이 열거된다. 내가 본 영화가 몇 편이나 되는지 살펴보는 것도 한 재미일 듯....  

 제 3회 황금 드래곤 문학상에 당선된 이 작품이 저자의 첫 작품이라고 한다. 김종일. 이 작품에서 후반부의 반복적인 구도가 약간의 아쉬움을 안겨주지만 앞으로 한층 성숙하고 다듬어진 공포소설로 우리 곁을 찾아올 것이라는 기대감을 안겨주는 작가이다. 그가 선보일 새로운 작품을 기대하여도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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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9-29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어두운 밤에 마주치는 생명체 중에 사람이 제일 무섭잖아요...
그런데 그게 부위별로 마주치게 된다면 더더욱 끔찍할꺼란 생각이 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