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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프 ㅣ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5
이종호 지음 / 황금가지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우리나라에서는 불모지나 다름없는 공포 소설 분야에서 이름을 알린 <분신사바>의 저자 이종호씨의 신작 <이프>! 일전에 모 유선 채널에서 <착신아리 2>라는 일본 공포영화의 후반부를 보았는데 거기서는 사람들이 휴대폰을 통해 죽음의 메시지를 받는다. 현대문명의 이기를 통해 전파되는 죽음과 공포에 관한 작품은 충격적인 영상을 담은 비디오테이프 보게 된 사람에게 죽음을 가져다주는 <링>에서 시작되어, 휴대폰, 컴퓨터 메일 등을 소재로 계속 진화(?)하고 있다.
<이프>에서는 등장인물들에게 기묘한 제목이 붙은 이메일 동영상이 배달되고 이를 본 사람은 곧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선우는 '스벵가리의 선물'이라는 이메일 동영상에서 기묘한 영상을 보게 되고 때를 맞춰 걸려 온, 의문의 여인에게서 자신이 어떻게 죽는지 알려달라는 말을 듣는다. 그리고 다음이 바로 자신의 차례라는 것도.. 한편 기자인 도엽은 차를 몰고 가던 중 한 남자로부터 "보이는 모든 것이 진실은 아니"라는 전화를 받고 아파트 옥상에서 한 여자가 떨어져 내리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이후로 '스벵가리의 선물'이라는 제목의 이메일 동영상을 받고 죽음을 맞이하는 인물들이 계속 등장하고, 희생자들의 죽음에서 공통점을 찾기 위해 사건을 뒤쫓는 도엽의 모습을 교차하여 그리고 있다. 도엽은 희생자들이 생활고, 비만, 학교 성적, 심각한 질병, 성폭력 등의 고민으로 큰 고통을 받았음을 알게 되는데... 어느 순간 내가 살아 온 현실과 전혀 다른 현실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과연 무엇으로 진실을 판별할 수 있을까? 가족도, 주변 사람들도, 자신의 삶도 믿을 수 없는 상황!!
책을 읽다 보면 등장인물들의 삶을 뒤흔드는 극심한 혼란이 그대로 독자에게 전해져 과연 무엇이 진실인지, 그들이 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알고 싶은 호기심으로 인해 작품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한 사람의 행복한 삶을 마구 헝클어뜨리고 뒤흔들어 놓는 그 이메일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지, 도엽이 잇달아 접하게 되는 자살 사건의 이면에는 어떤 진실이 숨겨져 있을지 숨죽이며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행복한 삶이 얼마만큼의 큰 가치를 지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섬뜩한 공포를 자아내는 이 작품을 오후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심약한 탓에 밤에는 도저히 읽고 있을 수가 없어서 덮어버리고는 다음 날 다시 읽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한 여인의 비극적인 삶이 너무도 가슴을 아프게 해서 이런 설정을 한 작가가 미워지기도 했다. 공포 소설의 배경은 진화하고 있지만 공포를 자아내는 내면의 실체는 옛날과 그리 다르지 않는 것 같다. 삶과 죽음, 고민과 여한, 집착과 애증 같은 많은 요소들이 고통과 번뇌를 자아내고,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공포를 일깨우는 작용을 하는 것은 아닌지...
때로는 책 속의 이야기보다 자신의 내면에서 생겨나는 공포가 더 무섭게 여겨지기도 한다. 공포 영화나 공포소설은 보는 그 순간에 닥치는 공포도 두려움을 안겨주지만 스위치를 끄거나 책장을 덮고도 한동안은 한밤에 화장실에 가는 것이 무섭게 여겨지는 후유증을 낳기도 한다.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던 일상이 어느 순간 내 속에서 스멀스멀 피어나는 공포를 등에 엎은 무시무시한 상상으로 인해 밤에 불을 끄고 자는 것조차 두렵게 만드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척박한 한국 공포소설 시장'을 언급하는 선우의 모습에 작가 자신의 내면이 투영되어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다. 실은 나도 공포소설은 스티븐 킹의 작품 외에 별로 읽어본 것이 없다. 장르 소설에 냉담한 한국 문학계가 좀 더 시야를 넓히고 작가는 다양한 소재 개발과 함께 작품성을 키워나간다면 앞으로는 우리나라에서도 공포소설의 독자층이 더 두터워지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아직은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통에 밤잠을 설치기도 하는데 이 무더운 여름이 가기 전에 무더위를 산뜻하게, 아니 섬뜩하게 식혀줄 공포소설 한 권쯤 읽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