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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없는 그림책 ㅣ 동화 보물창고 14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원유미 그림, 이옥용 옮김 / 보물창고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그림 없는 그림책>은 안데르센 동화 중에서도 가장 시적이고 문학적인 작품으로 손꼽히는 작품으로 총 33편의 짧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으나 이 책에는 어린이들이 읽기에 좋을 만한 작품 17편을 골라 실었다고 한다. 어른이 되고 보니 어린 시절 마음을 울렸던 동화들을 쓴 작가의 내면 세계나 삶에 대한 궁금증이 문득 문득 일었는데 <그림없는 그림책>을 읽고 난 후 마침 <안데르센 평전>을 기회가 생겨 지금 열심히 읽고 있는 중이다.
그 책을 통해 이십대 전의 안데르센의 삶까지 알게 된 상태인데 책에 실린 해설에 요약해서 나오는 것처럼 안데르센은 코펜하겐에 머물렀던 젊은 시절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안데르센의 삶에 관심이 가시면 뒤에 실린 해설을 읽어보시길..) 상처받기 쉬운 영혼을 지녔던 그는 자신을 향한 조롱과 비웃음을 자신의 작품을 통해 비판하고, 꼬집었는데 <그림 없는 그림책>에서도 그런 성향을 엿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어느 날 가난한 화가를 찾아온 달이 매일 들려 자신이 본 것들에 대한 들려주는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어둠이 내려앉은 밤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들이라 그런지 왁자지껄함이나 분주함보다 차분하고 잔잔한 느낌이 든다. 달은 많은 곳을 둘러보고 많은 곳을 여행하여 왔기에 그가 들려줄 이야기는 무궁무진할 터... 오로라가 소용돌이치며 타오르는 그린란드나, 베수비오 화산이 버티고 있는 폼페이, 페잔의 어느 사막과 오아시스가 존재하는 페잔에서 일어난 일 등. 이처럼 가난한 화가는 가보지 못할 머나먼 곳에 대한 이야기도 있지만, 달은 어느 집 마당이나 숲의 농가, 바닷가나 어느 작은 도시에서 있었던 일 등의 일들도 들려준다.
아이가 닭장의 닭들에게 지난 밤 괴롭힌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뽀뽀를 해 주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하고 딸을 혼낸 아빠가 나오는 둘째 밤 이야기나 아이들이 있는 방에 들어온 곰이 아이들과 병정놀이를 하며 장면을 목격하고 기함을 하는 엄마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서른한째 밤 이야기에서는 아이들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어른들의 모습이 볼 수 있는데 그들이 바로 내 모습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원피스를 예쁘게 차려 입은 한 아이가 멍멍이들이 자신의 예쁜 모습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 하는 열 일곱째 밤의 이야기나, 잠자리에 들기 전 아이가 '일용할 빵' 위에 버터도 듬뿍 발라 달라고 기도한 서른 셋째 밤의 이야기는 아이들의 때 묻지 않은 천진난만함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흥미진진한 사건이 등장하는 이야기들이 아니다 보니 독자에 따라서는 단순하거나 밋밋하다는 느낌, CF 카피로 표현하자면 2% 부족한 느낌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각 단편들을 다시 한 번 음미하며 읽어보니 조금 싱겁긴 하지만 따스한 기운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스프 한 그릇을 받아 든 느낌 같은 것이 찾아 든다. 책 제목은 "그림 없는 그림책"이지만 이 책에는 그림이 들어 있다. 어린이들이 읽기에 좋을 만한 작품을 고른 것이나 그림을 삽입한 것 등은 저학년의 어린이를 독자 대상으로 고려한 편집 방향인 것 같다. <여자는 힘이 세다>, <이젠 비밀이 아니야> 등의 작품의 그림을 그린 원유미씨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달이 등장하는 밤의 느낌을 어두운 푸른색 계열의 색상으로 담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