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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판사 ㅣ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54
마고 제마크 그림, 하브 제마크 글, 장미란 옮김 / 시공주니어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1970년 칼데콧 아너 상을 받은 작품으로, 입으로는 "공정한 심판"을 외치지만 본 대로를 말하는 죄수들의 호소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던 판사가 결국 괴물에게 잡아먹힌다는 내용을 담은 그림책. <지각대장 존/존 버닝햄>이 아이의 말을 믿지 않고 벌을 주기만 하는 권위적인 선생님을 비판하고 있다면, 이 그림책은 법을 대변하는 판사의 권위를 풍자하여 비판한 작품이라 하겠다.
거만함이 깃든 모습으로 판결대에 앉아 있는 판사는 끌려 온 죄수가 무시무시한 괴물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하자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감옥에 처넣으라고 판결한다. 그 뒤를 이어 차례로 끌려 나온 죄수들이 하나같이 괴물이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다고, 얼마나 무시무시한지를 구구절절 설명하는데도 판사는 여전히 그들의 말을 거짓말로 치부하며 가두라고 명령한다.
특히 판사가 세 번째 죄수에게 "척 봐도 악당이로군."이라고 말하는 것은 공정함을 견지하지 못하고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모습을 드러낸 장면이라 하겠다. 그리고 "감히 나를 속이려 들다니!"라고 소리를 치는 것에서 자신의 직위에 대해 지나치게 자부심을 가진 탓에 상대를 낮추어 보는 자의 권위적인 모습이 드러난 장면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다섯 번째 죄수가 끌려가는 장면을 보면 이름도 없는 괴물이 마침내 당도한 것이 창문을 통해 보이는데, 결국 판사는 이 괴물에게 잡아먹히고 만다.
- 책에서는 괴물을 험상궂고 못된 짓을 저지르고 다니는 존재로 묘사했지만 판사가 괴물에게 잡아먹힌 것이나 본 그대로를 말한 사람들이 풀려나는 것을 보면서 괴물이 상징하는 것이 혹 진실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개인적인 생각임.)
책에 들어 있는 가이드를 읽어보니 이 책에는 '하브 제마크가 쓴 터무니없는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고 한다. 괴물이 등장하는 것이 터무니없는 점으로 여겨진다 하더라도 법을 집행함에 있어 공정함보다는 불신과 권위를 앞세우는 사람은 그 자리에 있을 필요도 없으며 있어서도 안될 것이다. 이 그림책은 부부 사이인 마고 제마크가 그림을 그리고 하브 제마크가 글을 쓴 작품이며, 마고 제마크의 또 다른 작품으로는 <우리 집은 너무 좁아>가 나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