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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 - 고골 원작 ㅣ 그림이 있는 책방 5
니꼴라이 고골 원작, 지빌 그래핀 쇤펠트 다시 씀, 겐나디 스피린 그림, 김서정 옮김 / 보림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나로서는 무엇인지 모르는 것 그 하찮은 것이 모든 땅덩어리를, 황후들을, 모든 군대를, 온 세계를 흔들어 움직이는 것이다. 클레오파트라의 코, 그것이 조금만 낮았더라면, 지구의 모든 표면은 변했을 것이다." - 파스칼(프랑스 철학자)
이 책을 보면서 '코'에 관련된 말들을 떠올려 보니 클레오파트라의 코를 언급한 글이 생각나서 인터넷을 통해 찾아보았다. 파스칼은 이 문장에서 자존심의 상징이기도 한 '코'를 통해 클레오파트라의 미모가 세계정세에 미친 영향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고골 또한 '코'에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여 이 작품을 썼다. 아이가 읽어 보고는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정말 이상한 이야기"라고 감상평을 한 이 책은 우리 몸을 구성하는 신체의 일부인 '코'가 어느 날 갑자기 이발사의 손에 잘려 나간 후 독립적인 개체로 행세를 한다는 설정을 담고 있는 그림책이다. 니콜라이 고골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대도시인 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한 이 이야기는 이발사가 아침으로 먹기 위해 자른 빵 안에서 '코'가 나오면 시작된다.
이발사는 두려움에 휩싸여 코를 버리기 위해 바깥으로 나가지만 그것을 버리려 할 때마다 이를 수상히 여기는 경찰의 제재를 받는다. 한편 아침에 일어나 자신의 코가 사라진 것을 안 코발료프는 경악한다. 더욱 황당한 것은 코가 자신보다 높은 직위의 제복을 입은 신사가 되어 모습을 드러낸 것! 자신의 코 앞에서 쩔쩔매는 코발료프에게 코는 '나는 나 자신'이라며 그를 무시하고 가버리고 마는데... (원작에는 어떻게 나오는지 모르겠으나 이발사가 코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어떻게 해서 경찰이 코를 들고 나타나게 되었는지 등은 자세히 나오지 않고 넘어가 버리는지라 이 점이 좀 석연치 않게 느껴졌다)
'코'는 제정 러시아 시대의 부패한 사회나 인물 등을 풍자한 작품으로, 우선 코를 도둑맞은 '코발료프'라는 인물을 살펴보면 좀 더 나은 직위를 얻기 위해 애쓰고, 결혼관 역시 신부감보다는 여자가 가져올 지참금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는 인물이다. 그리고 나중에 그의 코를 찾아온 경찰은 가봐야 한다는 말끝에 난데없이 물가가 오른 이야기며 자신의 살림살이가 어렵다는 등의 말을 갖다 붙여서는 코발료프에게 지폐 한 장을 받아 쥐고 사라지는 것으로 부패한 공무원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허우대 좋은 의사는 코를 붙여달라는 코발료프에게 코가 없어도 괜찮다며 전시하면 좋을 것 같으니 코를 자신에게 팔라고 하는 등의 환자의 고통 같은 것은 염두에 두지 않는 의사의 전형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 책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요약판의 취약함을 보완해주고 있는, 유수한 상을 수상한 겐나디 스피린의 필치로 그려낸 그림들이다. 독립적인 개체로 행동하는 코의 모습과 함께 에르미타주 궁전, 카잔 성당, 페트로 파블로프스크 요새 등 명소와, 넵스키 거리를 오가는 마차와 사람들을 통해 제정 러시아의 수도였던 페테르부르크를 보여주고 있다. 이발사의 간소한 아침 식사와 집안의 누추한 풍경과 대비되는 코발료프의 화려한 집 안 풍경, 그리고 고급스러운 옷차림으로 우아한 저녁 모임에 참석하여 웃음을 터트리는 신사숙녀들의 모습은 고통 받는 민중의 삶과 지배계층의 삶의 질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풍경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원작자인 니콜라이 고골의 질곡에 찬 삶을 기록한 글이 실려 있어 있으니 부모들도 이 부분을 읽어보시길 권하는 바이다. 작품에는 작가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 이념 등이 녹아 있는 경우가 많은지라 지은이의 생애를 아는 것도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기회를 봐서 니콜라이 고골이 쓴 원작 <코>를 비롯한 <외투>, <죽은 넋> 등의 작품들을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