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뫼어스 지음, 안영란 옮김, 귀스타브 도레 그림 / 문학동네 / 2003년 4월
구판절판


"그렇다면 왜 이 섬을 '고통받는 처녀들의 섬'이라고 부르는 거지? 저들에겐 도대체 고통 비슷한 것도 없는 거잖아."
"그야 물론 처녀들이 직접 지은 이름이니까 그렇지! 그럼 섬 이름을 '용을 잡아먹는 처녀들의 섬'이라고 하겠어? 아니면 아예 '이무기 가공 아마조네스 사업본부'라고 부를까?"
그리핀은 목쉰 소리로 키득거렸다.
"그랬다면 용의 손아귀에서 처녀들을 구하기 위해서 이곳을 찾는 용감한 청년은 아마 하나도 없을걸. 이제 알겠어?"-32쪽

귀스타브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아니 정말로 가슴이 찢어져 정확히 반으로 나누어지고 말았다. 이것으로 영영 돌아오지 않을 아름다운 처녀를 품은 쪽과, 아직은 온전히 그의 것으로 남아 있는 나머지 반쪽으로, 가슴 한복판을 관통하는 그 차가운 균열의 느낌은 여태껏 느껴본 그 어떤 육체적 고통보다 심한 것이었다.
그린핀이 고도를 낮추어 한쪽 날개에 귀스타브를 실었다.
"내가 말했잖아. 살다보면 용보다 더 치명적인 것이 있다고. 사랑도 바로 그런 것 중의 하나지."-48쪽

"가능성의 복도야. 우주의 카오스를 정돈하는 곳이지. 물론 제대로 되고 있지는 않지만... 삶이 그렇듯이 말야. 그래도 이곳에선 어떻게든 일을 파악하고 분류해서 저 서랍 속에 넣어두려고 애를 쓰고 있지. 한심하지만 어쩔 수 없지 뭐. 관료주의란 원래 그런 거니까!"
돼지가 비웃는 듯 히죽거렸다.-173쪽

"삶이란, 꼬마야, 삶이란 그저 고단하고도 아름다운 여행만은 아니란다. 그건 죽음을 향해 한 발 한 발 다가서는 일이기도 하다구.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톧스럽지! 인간은 그걸 견뎌내야 하는 거야. 어때, 그걸 참고 견딜 각오가 돼 있니, 꼬마야?"
"물론!"
"그럴 줄 알았어. 누구나 처음에는 다 그렇게 말하지."
돼지는 갑자기 진지해졌다. 거의 엄숙하다고 해야 할 지경이었다.
"좋아, 그러니까 넌, 그런 삶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거지? 삶이 가져다주는 경악과 경이로움을 받아들일?"-1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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