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0100 갤러리 12
아이완 지음 / 마루벌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이 아이는 누구일까? 이 책을 처음 볼 때는 바닥에 누워 있는 모습이 마치 아이가 죽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의아했었는데 뒷장으로 넘기고 나서야 잠들어 있거나 바닥에 귀를 대고 있는 모습이라는 것을 알았다.
 화자인 '나'의 옆에 줄로 연결된 막대기 두 개가 놓여 있었는데 이를 사용해서 원을 그린다. 즉 막대기 하나는 고정해 두고 다른 한 개의 막대기는 원을 그리는데 이용하는 것이다. 일전에 아이들의 방학 생활계획표를 그릴 때 컴퍼스를 쓴 적이 있는데, 그것처럼 아이가 두 개의 막대기를 사용하여 그린 원의 뚜껑이 열림으로 해서 그것이 구멍이 되는 것이다. 책 속의 아이는 동물들이 여행을 시작할 수 있도록 통로를 만드는 일을 하는 것이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도시의 모습이 보이는 아주 커다란 구멍에서 파란 물방울과 함께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바로 고래! 책을 보던 아이는 고래가 어떻게 날 수 있느냐고 하였는데, 구멍을 통해 날아오른 것은 고래의 실체가 아니다. 실은 책표지에 적혀 있는 문구를 보고서야 작가의 의도가 '동물의 영혼'임을 알게 되었다. 아이는 구멍을 만들어 동물의 영혼이 자유로운 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해 주는 존재인 것이다. 또 하나의 존재, 동물들이 여행의 길목에서 만나는, 코와 입은 있는데 '눈이 없는 친구'의 모습은 솔직히 나에게 공포영화속의 등장인물 같은 느낌을 주어서인지 여러번 보아도 얼마간의 거리감이 느껴진다. 그렇긴 해도 작가가 이런 등장인물을 그린 의도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눈이 없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겉모습보다는 동물이 지닌 영혼을 그 자체를 느낄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리라.

 점점 많아지는 원들.. 아이가 빈공간에 계속 원을 그리니 발을 디딜 자리가 없을 정도로 점차 원이 늘어나는지라 위태로워 보이더니 결국 아이는 원 안으로 떨어져 버리고 만다. 아, 바닥에 빼곡히 그려진 원의 수만큼이나 이 세상에 아이가 여행을 떠나게 해주어야 할 동물의 영혼들이 많다는 것일까? 원 안으로 추락하여 지상의 바닥으로 떨어져 엎드려 있는 아이의 모습은 마치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 듯한 느낌을 준다. 처음 장면처럼 눈을 감고 엎드려 있는 아이에게 느껴지는 것은 단지 그림자뿐... 볼 수 없는 아이는 느낄 수 있으나 볼 수 있는 눈을 지닌 사람들은 마음도, 영혼도 이미 차갑게 식어 아무 것도 볼 수 없게 된 것일까. 이제 구멍을 만들어 줄 아이는 죽음같이 잠들어 있고 빠져 나갈 구멍이 없어 하늘 위를 떠도는 코끼리의 영혼만이 서글픔으로 남는다. 그리고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소녀...

 이 그림책은 글이 있긴 하지만 차지하는 분량이 그리 많지 않아, 글자없는 그림책처럼 그림을 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보태야 하는 작품이다. 한 아이가 만들어 낸 구멍을 통해 여행을 떠나는 동물들의 영혼, 전달하는 주제가 단순한듯 하면서도 생각할 거리가 많아지게 된다. 인터넷 서점의 책정보를 통해 작가가 <워터 보이>라는 만화 작품 등으로 호평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독특한 그림스타일이나 영혼의 여행 같은 내용적인 측면을 보건데 독자 대상에 성인도 포함될만한 그림책이다.(아이들에게는 어려운 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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