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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털머리 트룹이 찾은 행복 ㅣ 국민서관 그림동화 53
자넬 캐넌 지음, 김경연 옮김 / 국민서관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이 그림책은 세상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인간세계를 구경하러 길을 나선 '솜털머리 트룹'라는 가상의 동물(어쩌면 실제로 존재할지도. ^^)이 겪는 험난한 여정을 담고 있다. 새하얀 털에 수정처럼 푸른 눈을 가진 솜털머리는 '손재주 있는 하얀 고양이과'에 속한 동물(작가의 분류기준으로~ ^^)로 평화를 사랑하고 싸움을 싫어하여 양보의 미덕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종족이다. 어린 솜털머리 트룹이 길을 나서려 하자 어른 솜털머리들이 조심할 것을 당부하며 배웅을 해준다. 어른 솜털머리들은 그것이 쉽지 않은, 위험한 여행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트룹을 막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이 어떤 물건이나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지녔을 때 그것이 위험하다는 이유로 무작정 감싸 안고, 막으려 하기보다는 직접 대면하고 경험하게 해줌으로써 비록 어려움을 겪더라도 그러한 과정을 통해 조금씩 성장해 나가지 않던가...
길을 떠난 트룹은 사람들이 자기 모습을 보고 두려워하지 않도록, 옥수수 밭에서 만난 까마귀의 조언을 받아들여 허수아비의 옷을 입는다. 늙은 허수아비 따위는 겁나지 않는다는 까마귀는 벌거벗게 생긴 허수아비가 추울까봐 수건으로 감싸줄 줄 아는 마음씨를 지녔다. 까마귀는 트룹과 동행하여 기차를 타면 먼 곳까지 빨리 갈 수 있다거나 깨진 유리조각을 조심해야 한다는 등의 이런 저런 조언을 해준다. 어깨에 까마귀를 얹은 고양이 비슷한 동물이 길을 가는데도 사람들은 무심히 바쁜 걸음으로 제 갈 길을 갈 뿐이다.
그런데 그를 알아보는 한 여자가 트룹의 앞을 막아선다. 모자에 칫솔을 잔뜩 꽂고, 여러 가지의 옷을 겹겹이 걸친, 일견 요상한 차림새를 한 버니스는 트룹의 다친 발을 치료해 주고, 어느 식당 뒷문가에서 음식도 나누어주고, 기차를 타다 찢어진 트룹의 바지도 꿰매 주는(글에는 나오지 않지만) 등 여러 가지 도움을 준다. 그리고 다음 날 집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고 떠나려는 트룹이 고맙다는 인사를 하자 버니스는 "남을 도울 수 있는 행복한 기회가 날마다 오는 것은 아니"라고 말해준다.
인정이 메마른 삭막한 현대 사회에서 오직 내 삶을 위주로 하여 살아가다보면 주위의 어려운 이웃을 살피고, 곤란한 지경에 처한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놓치는 경우가 많다. '나 자신이 어려운데 누굴 도와!' 라는 생각은 어쩌면 나에게는 사소한 행동-하기 어렵다 싶은 경우도 있겠으나-이 어려움에 처한 누군가에게는 큰 도움이 되고 살아갈 힘을 줄 수도 있음을 잊고 살아가게 만든다. 행복은 사람들의 가치 기준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버니스가 말한 행복은 어떤 형태로든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을 때 손 내밀 수 있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리라.
버니스를 보니 문득 나홀로 집에 2에서 케빈이 공원에서 만난 비둘기 아줌마가 떠올랐는데, 미국 영화에 가끔 나오는 부랑자들의 모습을 보면 이 아줌마처럼 집 없이 떠돌아다니며 자신의 세간을 손수레에 싣고 다니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 모양이다. 미치광이 모의 등장으로 넘어져버린 버니스의 손수레에서 쏟아져 나온 물건들은 그녀에게는 무척이나 소중한 물건들일 것이다. 책갈피에 꽂혀 있는 나무잎, 수건으로 감싼 피리, 젊은 시절의 자신의 모습을 찍은 사진, 여러 통의 편지들... 요란한 옷을 입음으로써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그것에서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버니스의 말에 사람들에게 외면당한 채 살아가는 소외계층의 아픔과 외로움이 묻어나는 것 같다.
-리뷰 등록하려고 '솜털머리'를 검색해 보니 책속에 등장하는 트룹의 친구인 야우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이 나온 모양이다. 이번엔 어떤 이야기를 담았으려나.. 사족이지만 개인적으로 이 책의 저자인 자넬 캐넌의 <바퀴벌레 삐딱날개>가 화풍이나 내용면에서 조금 더 마음에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