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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이 맞아, 고래얍! - 일곱여덟아홉 2
이금이 지음, 이형진 그림 / 푸른책들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일전에 <아이스케키와 수상 스키/이금이>도 재미있게 읽었는데 아이가 있는 집에서 실제로 겪을 법한 이야기를 담은 이 책도 읽으면서 킥킥거리며 웃기도 하고 손으로 무릎을 탁~ 치고 싶어지기도 했다. 한 아파트에 사는 푸르니네와 동찬이네를 중심으로 한 연작동화인데 특히 우리 딸아이들 같은 푸르니와 고우니가 등장해서 더 친근감이 갔다. 우선 <내 말이 맞아, 고래얍!>은 다툼에 대한 아이들과 어른들의 관점과 견해 차이를 바탕에 담은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아이들은 싸웠다가도 돌아서면 다툰 것은 금세 잊어버리고 다시 어울려 노는데 비해 어른들은 그 일로 인해 속상한 마음이 아이들만큼 쉽게 풀어지지 않고 오래 간다.
사실 형제간이나 친하게 지내는 이웃끼리라도 아이들 문제로 부모로서 서로가 속상하고 서운한 마음이 들곤 할 때가 있다. 아이가 놀림을 당하거나 다친 것을 아는 그 순간에는 당장에라도 달려가서 그 집 아이를 혼내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어떻게 또 그럴 수가 있나... 괜히 그랬다가는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되면 어쩌누! 꾹꾹 눌러 참지만 그래도 속상한 것은 어쩔 수 없어서 아이들에게 거듭 다짐을 해둔다.
"누가 약 올리거나 때리려고 하면 하지 말라고 큰 소리로 말해! 그리고 너 태권도 배웠잖냐! 자꾸 괴롭히면 한 대 때려 줘! 알았냐?"
그러면 아이는 "네~"하고 대답하지만 과연 그럴지는 미지수...
<엄만 누구 거야?>를 읽을 때는 ' 이금이씨는 어쩜 그렇게 우리집 사정에 밝으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누구 것이냐는 문제를 두고 푸르니와 고은이, 아빠가 다투는 모양새가 꼭 우리집 풍경 같기 때문이다. 두 딸아이도 가끔 "내 엄마야!"라며 서로 경합을 벌이고, 그 자리에 남편이 있는 경우에는 푸르니의 아빠처럼 우리 남편도 "무슨 소리! 엄마는 아빠거야!"하고 선포를 한다. 물론 어느 것도 정답이 아님! 나는 어디까지나 바로 나 자신의 것이라고요~. 그리고 이 이야기를 아이들이 특히 더 좋아하는 이유는 가족이 한 방에서 잘 때 엄마 옆에서 자는 문제로 푸르니와 고우니가 티격태격 다투는 모습이 또한 자기들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남편의 출장이 잦아지면서 아이들이 안방에서 자는 것에 재미(?)가 들려서 아빠가 들어오셔도 푸르니네처럼 네 식구가 한 방에서 자고 있다. 그런데 자리 경쟁이 치열하다. 애들 아빠는 "엄마는 아빠 옆에서 자야 한다!"고 엄포를 놓고, 두 딸아이는 서로 엄마 옆에서 자겠다고 툭탁거리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세 모녀만 잘 때에도 행여 엄마가 누구 한 사람 옆에서만 잘까봐 또 저희들끼리 티격태격 자리싸움을 하다가 나에게 "엄마는 중간에서 자야 한다."며 단단히 다짐을 시키고 베개도 자기들 사이에 놓아두고는 잠자리에 드는 것이다. 문득 아기 취급을 받는 동생이 늘 엄마 옆에서 자는 것이 속상하기만 한 푸르니의 마음이 우리 큰아이의 마음인 것 같아 미안해진다.
엄마, 아빠 놀이를 하게 된 동찬이가 아빠의 모습을 너무나 실감나게 연기(?)하는 통에 다투게 된 <울보 싼타 할아버지>편도 공감이 가는 것이 우리 남편도 집에 오면 '텔레비전만 보는 아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놀이를 할 때 하는 말들에 깜짝 놀라거나 당황할 때가 있는데 알고 보면 그게 다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 앞에서 한 말들이다. 책 속의 아이들이 엄마, 아빠 놀이를 하면서 하는 행동이나 말들을 보면서 그러한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과연 푸르니는 TV만 보고 있는 동찬이에게 어떤 말을 했을까? ^^
<멋진 남자가 될 테야>는 멋진 남자에 대한 정의를 내리시는 아빠의 말씀에 동찬이가 울고 싶은 것을 내내 꾹꾹 참느라 애쓰는 모습을 담고 있다. 달려가다 넘어져서 피가 나도 울음을 참고, 교통사고를 당해서 입원하신 외할머니의 모습을 봐도 울고 싶은 것을 참는다. 멋진 남자가 되기 위해 키우던 금붕어가 죽어서 땅에 묻어줄 때에도 눈물을 꾹 참지만 과연 그 많은 눈물을 눌러 담아 놓은 동찬이의 가슴 속은 괜찮을까? 어른들도 속에 있는 것을 뱉어내지 못하고 삭히다가 화병이 생긴다고 하면서 혹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병을 키우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남자도 사람인데 울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건만 우리 사회는 '남자는 울면 못 쓴다'는 관습이 아이에게서 눈물을 빼앗고 감정을 억누르게 강요한다. 그런데 솔직히 나에게 아들이 있다면 나도 동찬이 아빠가 한 말을 아이에게 할 것 같으니 참 이율배반적이다. 내 아이를 주위의 시선과 관습에 억매이지 않고 키우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일까?
마지막으로 <거울아 거울아>도 재미있었는데, 나야 뭐-두꺼운 안경을 껴서 볼품없는 모습이지만- 우리 아이들이나 남편이 " 우리 엄마(마누라)만큼 예쁜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고 늘 이구동성으로 말하는지라 푸르니 엄마처럼 속상할 일은 없다. 그렇긴 해도 마법의 거울이 있다면 한 번 물어 봐야지~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오호호호~"(음... 어째 못된 왕비의 웃음소리 같다는 느낌이...^^; ) 이 책에 실린 다섯편 모두 재미있게 읽었는지라, 가족과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잘 짚어내어 재미난 이야기로 엮어내는 글 솜씨를 지닌 이금이씨의 다른 이야기들도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