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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우 ㅣ 그림책으로 만나는 셰익스피어 4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루스 샌더슨 그림, 브루스 코빌 다시 씀, 구자명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2년 8월
평점 :
품절
폭풍우.. 영어로는 Tempest(템페스트)인 이 이야기는 셰익스피어가 쓴 연극용 작품이다. 그의 작품을 그림책으로 만나보기는 <한여름밤의 꿈> 이후로 두번째인데, 이번 작품도 매우 재미있게 읽었다. 폭풍우에는 마법, 요정, 괴물 등과 같은 판타지적 요소가 들어 있어서 개인적으로 판타지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매우 재미있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줄거리를 잠깐 언급하자면, '프로스페로' 공작은 마법사로 책과 지식에 탐닉하느라 동생에게 도시를 다스리는 일을 맡긴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 참으로 간사한 것이, 동생은 권력의 맛을 본터라 형인 프로스페로를 쫓아 내고 그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음모를 꾸민다. 친구의 도움으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프로스페로와 그의 딸 미랜더는 어느 섬에 도착하고 공기의 요정 에이리얼을 구해준다. 그리고 캘리번이라는 괴물(마녀의 자식)과도 만나 함께 살아가게 된다. 12년이란 세월이 흐른 후 운명은 동생 안토니오와 그의 일행을 이 섬으로 이끌어 프로스페로에게 복수할 기회를 주지만 사랑과 관용으로 모두가 해피엔딩의 결말을 맞게 된다..
저자는 뒷편에 실린 <작가의 말>이라는 글에 서양의 문화 속에 자리잡고 있는 등장인물을 알고 있는 것 자체가 '문화적 교양'을 갖춘 것이라고 하였다. 나로서는 등장 인물의 이름을 잘 알지 못하는지라(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고..) 문화적 교양이 부족하다고 여겨져 서평을 쓰기 전에 인터넷으로 자료를 검색해 보면서 프로스페로나 캘러번 등의 각 등장인물이 대변하는 계층이나 문화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되었다.
프로스페로와 안토니오가 구세대를 대변하는 반목하고 원한을 지닌 관계라면 미랜더와 나폴리왕자인 퍼디넌드는 새세대로 사랑으로 구세대의 반목을 청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자칫 아우의 배신과 형의 분노로 이야기가 비극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것이 젊은 남녀가 사랑을 통해 용서와 화해의 반전을 이끌어 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동생인 안토니오와 나폴리 왕은 요정 에이리얼이 하피로 변하여 그들의 죄상을 밝히고 프로스페로가 모습을 드러내자 두려움 때문에 용서를 구한 것이긴 하지만....
주요 인물들 이외에 술에 취한 김에 배신의 길을 가려는 괴물 캘러번이나 광대 트린큘로, 집사 스테파노 등의 조연들이 행하는 모습들이 웃음을 자아내게 만들고 있다. 세밀하게 묘사된 개 두마리에게 ?겨 가는 모습은 매우 실감나게 그려져 있어 마치 사진을 보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그 앞 장에 무지개가 뜬 하늘 위로 여신으로 변장한 요정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젊은 남녀의 약혼을 축복하는 장면은 무척 아름답게 여겨진다..
그림을 그린 루스 샌더슨은 유명한 삽화가인 것으로 아는데, 웅장함과 섬세함이 잘 배합된 그림들이 극의 재미를 잘 표현하고 있다. 다만 나의 그림 취향으로 보자면 다른 인물들에 비해 미랜더의 외관상의 모습이 그다지 흡족하지는 않다. 그녀의 손에 의해 표현된 미랜더는 길다란 황금빛 머리칼을 빼면 왕자가 반할만한 미모라기보다는 건강미(?)를 물씬 풍기는 평범한 처녀의 모습이다. 이 그림책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근사한 이미지를 고수하는 인물은 역시 주인공인 프로스페로가 아닐까 싶다.
<작가의 말>에 보면 이 그림책에 실린 이야기는 원작과는 방식의 차이가 있다고 한다. 원작에는 하루 동안의 일 속에 과거의 일들이 포함되어 있어서 행동보다는 설명이 많다고 한다. 이것을 작가인 브루스 코빌이 연령층이 낮은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시간적인 순서대로 이야기를 플어 놓았기에, 덕분에 우리는 현재, 과거, 현재를 오가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어쨋든 이 그림책은 '원작을 체험하고 싶은 마음'을 부추기는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 나 자신도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다시 읽어 보고 싶어지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