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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왕 핫산 ㅣ 낮은산 어린이 4
백승남 지음, 유진희 그림 / 낮은산 / 2003년 3월
평점 :
책을 펼치자 눈에 들어오는, 막 퇴근해서 문간에 들어서는 아빠. 그 표정이 너무나 지쳐있고 기운이 빠진 모습이다. 무척 피곤한가보다, 얼른 누워서 쉬고 싶을 텐데……,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러나 아빠를 기다리던 산하와 강산이는 그저 오랜만에 일찍 들어온 아빠와 함께 놀 수 있다는 것이 좋은 모양인지 매달리며 늑대가 된 아빠의 등에 타고 노는 즐거움을 만끽한다. 기어 다니며 늑대 울음소리도 그럴듯하게 낼 줄 아는 진짜 늑대왕 아빠이니 얼마나 실감나고 신이 나겠는가! 문득 '함박웃음을 머금은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피곤한 아빠도 그 순간만큼은 기운이 나고 신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본 큰 아이는 아이들이 노는 모습이 부러운 모양이다. 애들 아빠는 한 달에 쉬는 날이 하루나 이틀 정도 밖에 되지 않고, 대개 밤 12시나 되서야 퇴근하기 때문에 아이들과 놀 시간과 여유를 찾아보기 힘들다. 일요일에는 산하 아빠처럼 부족한 잠을 보충하느라 늦게까지 잠을 자고 일어나서는 “오늘은 회사가지 말고 우리랑 놀아요!”라고 말하는 아이들을 두고 또 출근을 한다. 피곤에 절은 남편을 보면 안쓰럽고 속상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가족과 함께 구경도 다니고 놀아주기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초등학교 3학년인 큰 아이는 이제 내가 발목에 앉히고 쿵덕쿵덕 방아 찧어주거나 비행기를 태워주기에는 너무 버겁다. 두 아이 다 서로 해달라고 달려들 때면 '아이 아빠가 있으면 사이좋게 두 딸 아이를 한꺼번에 즐겁게 해줄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특히나 더 들곤 하는 것이다.
'과로사'로 쓰러져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등진 아빠. 아무런 준비도 없이, 작별인사도 못한 채 남편을 보내고 졸지에 미망인이 된 아이 엄마의 심정은 또 어떨까! 산하의 눈물 젖은 얼굴과 강산이를 보니 우리 아이들 또래라 이 책의 이야기가 남의 일이 아닌 것 같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이제 아빠 몫까지 해야 하는 엄마, 공장에서 일하는 모습 또한 많이 고단해 보인다. 그리곤 집에선 아이들이 늦게 들어오는 엄마를 기다리고 있다. 엄마가 일하러 나가시고 안 계신 집에 들어가는 것은 참 쓸쓸하고 허전한 일이다. 나도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내내 직장을 다녀서 자주 텅 빈 집에 들어서곤 했던 날이 많았던지라 이 아이들의 외로움을 알 것 같다.
아이들이 그린 늑대 그림. 애초에 아빠를 그리려 했던 그림이라서 일까, 아니면 진짜 늑대왕 같았던 아빠가 아이들이 못내 그리워 다시 찾아 온 것일까? 아이들이 그린 그림 속의 늑대가 모습을 드러내고는 아빠가 아이들을 등에 태워 기어 다닌 것 마냥 아이들을 자신의 등에 태우고는 밤하늘을 날아 엄마가 계신 공장으로 향한다. 아빠의 뼛가루를 뿌린 곳에도 가본다. 두 아이는 엄마를 기다리는 밤 시간이 늑대왕 핫산 덕분에 덜 힘들게 느껴지긴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이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강산이가 엄마가 보고 싶어 보챌 때 산하는 아빠의 빈자리를 더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
아빠의 뼛가루를 날려 보낸 바람이 늑대왕 핫산도 데려가 버린 날, 산하는 또 한 번의 이별을 한다. 아빠도 늑대왕도 하늘나라에서 이 두 아이를 오래 오래 지켜봐 줄까? 책을 덮으면서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났다. 뜨거운 용광로 근처에서 날마다 야근, 철야를 해가며 고생하느라 곳곳에 화상자국을 달고 다니시던 아버지. 한 번 편히 쉬어보지 못하시고 과로로 얻은 병으로 힘겨운 일 년을 보내시다 결국 우리 곁을 떠나셨다. 가끔 '가족을 염려하던 아버지가 하늘에서 우리를 보고 계실까?'하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하고, '아버지, 엄마가 힘든데 하늘에서라도 좀 도와주세요.'하고 혼자 속삭여보기도 한다.
아버지는 한 가족의 기둥이라는 말, 어렵고 힘든 일이 생길 때면 더 가슴에 와 닿게 된다. 지금 나와 두 딸아이의 기둥은 우리 남편이다. 애들 아빠도 가족들을 위해서 주말에도 쉬지 않고 일을 하는 것이지만 자기 몸 생각도 해가면서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산하 아빠처럼 어느 날 갑자기 우리만 남겨두고 가지는 말아야 할 것이 아닌가. 이 책을 본 아이는 우리 아빠가 죽지 않고 오래 오래 살았으면 좋겠단다. 오래 오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