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친구 집에서 자는 날 보림어린이문고
버나드 와버 글 그림, 김영선 옮김 / 보림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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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라는 친구 레지로부터 자기 집에 자러 오라는 초대를 받고 무척 신이 난다. 처음으로 친구 집에서 자 보게 되었으니 신이 날 수 밖에……. 자기 집, 또는 친척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잠을 잔다는 것, 아직 그런 경험이 없는 아이에게는 두려우면서도 참 설레는 일이지 않을까 싶다. 아이라는 곰 인형을 가져갈 것이냐는 누나의 질문에 당치않다는 듯이 큰소리를 친다.

"친구 집에? 농담이지? 말도 안 돼. 당연히 안 가져가지!"

곰인형 없이 자본 적이 없는 아이라가 과연 그 말처럼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을지……. 고민에 빠진 아이에게 엄마 아빠는 곰 인형을 가지고 가라고 친구가 웃지 않을 거라고 말해주는데 비해, 누나는 동생을 놀리는 것이 재미있는 모양이다. 하긴 소소한 일로 아이를 놀리는 것은 슬며시 웃음이 나게 만드는 묘미가 있다. 말 한마디에 눈물을 글썽이고, 화를 내면서 삐치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 자꾸 더 놀리고 싶어지니 말이다. 아이라가 아주 어리다면 아무 고민도 하지 않고 곰 인형을 가지고 친구 집에 갈 텐데, 책에 정확한 나이는 나오지 않지만 아무래도 드러내 놓고 인형을 안고 자는 모습을 보일 나이는 지난 모양이다.

함께 자기로 한 레지와 아이라가 곧 있을 한 밤의 여흥-레슬링, 마술, 도미노 게임 등-에 대한 기대를 안고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보면 또다시 슬며시 웃음이 난다. 귀신 얘기도 할 것이라는 레지의 말에 곰 인형이 생각난 아이라가 '곰 인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을 던지지만 레지는 못 들은 척 하지 뭔가. 어른들도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 생기면 '어디 갈 데가 있어서…….' 라며 슬며시 자리에서 빠져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꼭 그 모습 같다. 아이라는 아무래도 불안했던지 곰인형을 가져가기로 마음을 먹지만 누나 때문에 또 마음이 바뀐다. 간결한 그림이지만 심통이 난 듯 눈썹을 모으고 있는 아이의 표정이 참 재미있다.

가방을 챙겨 들고 아이라가 향한 친구의 집은, (애걔걔) 바로 옆 집이다! 그렇긴 해도 어쨌든 다른 집에서 자는 건 자는 거니까……. 둘은 낮에 세운 계획들을 하나 하나 실행하는데, 나는 그 중에서 고무도장으로 사무실 놀이를 하는 것을 해 보고 싶은 반명 우리 아이들은 베개 싸움을 해보고 싶다고 한다. (음, 먼지 많이 나는데…….^^;) 드디어 잘 시간이 되었는지 레지의 아빠가 와서 "잘 시간이다!"라고 말하는데 표정을 봐서는 좀 무뚝뚝해 보이는 타입이다. 아이라의 아빠는 콧수염을 길러서인지 나이 들어 보이긴 해도 다정한 느낌이 들고, 악기를 연주하거나 부엌일을 함께 하는 것을 보더라도 상당히 가정적인 남편이자 아빠인 것 같다.

침대에 누운 두 아이다 다 한숨을 내쉬는 걸 보니 더 놀고 싶은 마음이 남았는데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것이 아쉬웠나 보다. 드디어 레지가 귀신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사실 잠자리에 든 아이들에게 읽어줄 때는 이 부분을 싱겁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평이하게 읽어 준다. 낮에는 무서운 분위기가 느껴지도록 으시시한 분위기를 잡고 읽어주지만 밤에 그렇게 했다가는 겁 많은 작은 아이를 잠 못 들게 만들 것 같아서 후다닥 읽어주고 넘어가 버린다. 그런데 귀신 이야기를 하던 당사자인 레지도 무서웠는지 갑자기 뭘 꺼내 온다. 그것은…… 바로 곰 인형! 아이라는 친구에게 창피를 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일부러 곰 인형을 가져오지 않았는데 레지도 곰 인형을 안고 잠자리에 들다니! 거기다 이름이 '푸푸'라니 자기 곰 인형 이름인 '빠빠'랑 별로 다를 것도 없다.

결국 나란히 집에 가서 곰 인형을 가져와서는 끌어 안고 잠이 든 아이들을 보니, 자기가 좋아하는 베개와 인형을 끌어 안고 자는 우리 집 두 아이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미소를 짓게 된다. 큰 아이가 이 책을 보고는 자기도 친구 집에서 자보고 싶다고 하는지라 가까운 곳에 또래가 있는 친척집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어린 시절, 이 책에서처럼 한 집 건너에 있던 고모네 집에 가서 사촌들에게 내가 지어 낸 도깨비 이야기를 들려 주기도 하고, 어울려 신나게 놀다가 아쉬운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곤 했던 때가 있었는데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작은 아이도 이 책을 읽어달라고 자주 가지고 오는 걸 보면 아이라가 겪는 고민, 레지와 노는 모습 등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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