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위의 아이들 난 책읽기가 좋아
구드룬 파우제방 글, 잉게 쉬타이네케 그림, 김경연 옮김 / 비룡소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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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이 왜 나무 위에 올라갔을까? 그 위에서 신나게 놀기 위해 올라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재미있고 즐거웠겠으나 산타나네 아이들이, 그리고 움베르토가 나무 위에 올라 간 것은 나무를, 숲을, 자연을, 지구의 생명 줄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적나라한 현실이자 안타까웠던 점은 산타나네 일곱 아이들이 나무에 올라 간 것은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숲을 지키려는 그들의 의지는 지주인 세뇨르 리폴의 협박, 아니 그보다는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엄마의 애원 앞에서 꺽일 수 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나무를 지키기 위해 그 위에서 모습을 드러낸 장면에서는 그 강력한 의지에 마음이 울컥했으나 엄마의 애원에 결국 내려올 수 밖에 없는 것이 그들의 현실인 것에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세뇨르 리폴의 아들이 나무 위에서 소리치자 
상황이 달라진다.  움베르토의 아버지인 리폴은 과연 모두에게 숲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는 아들의 말에 공감해서 나무를 태우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것일까? 그보다 앞서 숲에 들어갔을 때 산타나네 아버지는 아무 쓸모 없다며 나무를 베어 숲을 없애려는 세뇨르 리폴에게 숲이 중요한 이유를 열심히 설명했었다.
"
그렇지만 뿌리로 물을 붙들어 놓고 있는걸요. 숲이 없어지면 시내도 없어집니다. 숲이 없어지면 밭도 황무지가 될 거예요. 여기 나뭇잎들은 공기를 맑게 해 준답니다."
 그러나 이런 중요한 설명을 세뇨르 리폴은 무시한다. 그러다 나중에 물과 좋은 공기를 주고 여러 동물들에게도 숲이 필요하다는 아들의 말에는 수긍을 한다. 아니 어쩌면 농장을 갖지 않겠다는, 옳지 못한 것을 갖지 않겠다는 아이의 강력한 의지 표명에 마음을 접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리폴이 아들의 말은 중요하나 소작인의 말은 미신에 불과하다고 무시하게 하는 설정은 매우 현실적이긴 하나 오히려 그 점 때문에 이 작품이 조금은 못마땅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리고 차를 타고 떠나면서 리폴이 세상에 공짜란 없는 걸세, 산타나라고 한 말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산타나네 엄마가 아이를 아홉이나 낳고 열 번째 아이를 가졌다는 대목을 보면서 입이 벌어지기도 했었는데(낳을 생각을 해보면...^^;) 아이 생각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가족이 많으면 같이 놀 사람이 많아서 더 좋을 것이란다.  움베르토가 산타나네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모습을 보니 정말 그렇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친구도 없이 혼자 무슨 재미로 놀겠는가... 우리 집만 해도 언니가 피아노나 태권도를 배우러 가고 나면 집에 혼자 남은 둘째는 심심하다며 누구하고 노느냐고, 무엇을 하며 놀아야 하냐고 투정을 부린다. 아이는 산타나네 아이들과 움베르토가 어울려 노는 모습이 부러웠을 것이다. 그들과 함께 나무를 타고, 가축을 우리에 몰아 넣고, 개울에서 멱을 감고 물장구치며 함께 어울려 놀고 싶으리라...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참으로 삭막하기만 하다. 아마존 밀림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기사를 접한 기억이 난다. 지구촌 곳곳에 사막화가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기사도 보았다. 지금도 경제 개발의 미명 아래, 인간에 의해 파괴되고 사라져가고 있는 원시림들...  그 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자신의 생존과 생활을 위해 나무를 베어 내고 있고, 그 일을 선도한 선진국들은 이제 그 일을 막으려고 하고 있다. 과연 누가 산타나네 아이들이고, 누가 움베르토일까? 아니면 누가 산타나네 아버지의 말을 무시한 세뇨르 리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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