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대로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82
이현 글, 김주현 그림 / 마루벌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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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를 양육하면서 절감하는 것이,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해 놓고 돌아서면 실천이 안 되는 부분들이 참 많다. 아이 스스로 해낼 때까지 기다려주기, 아이의 생각과 의견 존중하기, 아이 마음에 상처 주는 말 하지 않기, 일이 생겼을 때 야단치기 전에 앞서 아이에게 자초지종 들어주기 등등. 아, 이런 부모가 되면 참 좋은데! 아이들에게 정말 좋은 부모일 텐데! 그러나 현실의 내모습을 들여다보면 아이가 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거나 마음에 흡족하지 않다 싶으면 수시로 잔소리하고, 야단치고, 때로는 다그치기도 하며 아이를 옥죄는 것 같다. 아이도 하나의 인격체로 자기가 원하는 것, 생각하는 것이 있을 텐데 무시로 부모에게 휘둘려야 하는 아이의 마음은 어떨까?

 

 

 

 

 집으로 향하는 아이. 대문 앞에 선 장면을 보면 아이의 모습이 점점 작아진다. 대문 쪽으로 가까워질수록 점진적으로 크게 표현한 것이 아니라, 집에 들어서기도 전에 야단맞을까 주눅이 들어 -초인종 소리는 커지는데 반해- 쪼그라드는 아이의 내면을 형상화 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가 들어서자마자 대번에 뭐하다 이제 오냐고, 빨리 오지 않았다 야단을 치는 엄마의 음성이 날아든다. 엄마는 아이가 뭘 물어도 무응답으로 일관하며 설거지를 하고, 아이에게 꾸물거리지 말라고, 뽀득뽀득 소리가 날 정도로 깨끗하게 씻으라고 다그친다. 그럴 때마다 아이의 마음은 어떨지, 아이에게 엄마가 어떤 존재로 다가오는지 이 그림책이 잘 표현해 놓았다.

 

 

 

 

 뿔난 도깨비처럼 보이는 엄마.  금세라도 빵~ 터질 것 같이 부푼 풍선 같은 엄마. 쪼아대듯 아이를 다그치는 딱따구리 같은 엄마. 녹음기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는 엄마. 대면하는 아이의 내면 속에 자리잡은 엄마의 모습을 잘 짚어 형상화 했구나는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잔소리에 귀에 딱지가 않은 아이들은 공감대의 파도가 밀려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을까 싶다. 아이가 하려는 말을 듣기에 앞서 일단 내가 하고 싶은 말부터 폭풍처럼 쏟아낼 때가 많은 잔소리쟁이 엄마를 둔 우리 집 아이들에게 나도 저런 얄궂은 형상으로 비치려나 싶어 뜨끔해진다.

 

 

 


  아이가 그린 듯한 단순화 된 화풍이 어우러져 엄마에게 대놓고 드러내지는 못하고 속으로 항변하는 아이의 소심한 반항을 보는 것 같아 살짝 웃음이 나온다. 아이는 꾸물대지 말라는 엄마 말에 반항이라도 하듯 꾸물꾸물 나라로 가서 날마다 꾸물꾸물 상을 받아 올 거란다. 어질러 나라로 가서 어질러 상도 받아 오고, 내 마음대로 나라에 가서 내 마음대로 상도 받아오고. 상을 받아오겠다는 표현이 계속 나오네 싶었는데, 이어지는 내용을 보니 엄마가 아이에게 가만히 앉아서 그림을 그리라며, "뭐라도 상을 하나 받아야지"라고 한다. 평소에도 이런 말을 들었다면 자기도 잘할 수 있는 것-꾸물거리기, 어지르기 등-이라면 상을 받을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 것 같다. 골난 얼굴로 책상에 앉은 민혜. 두더지 나라로 갈 거란다. 땅굴과 두더지를 대충 그려 넣은 그림이 엄마의 다그침을 피해 땅굴이라도 파서 숨고 싶은 아이의 심경을 대변하고 있는 셈이다. 

 

 아쉬움을 주는 것은 마지막 장면으로, 날마다 "척척 상"을 받아올 거라는 다짐에는 아이보다 어른의 마음이 훨씬 더 많이 묻어난다. 아이가 알아서 척척 해내기를 바라는 부모의 바람이 투영된 장면이랄까. 조금 서툴더라도 충분히 인정과 독려, 칭찬을 받는 아이에게서 나올 법한, 긍정적이면서도 당당함이 느껴지는 아이의 모습이 앞서의 반항적이던 모습과 많은 차이를 보여 이질적인 느낌을 준다. 이는 아이를 꼭두각시처럼 마음대로 휘둘러 대는 주체(엄마)에게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은 채 이루어진 과정이라 괴리감을 주는 것 같다. 아이에게는 동시처럼 짧고 간결한 본문 글이 듣는 즐거움을 주는 것 같은데, 마지막 장면은 왠지 성급하게 몇 단계 건너뛰어 마무리된 느낌이 들어서 책장을 덮을 때마다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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