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까만 돌 일공일삼 77
김혜연 지음, 허구 그림 / 비룡소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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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가장 가까운 사람인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가슴앓이를 하게 만드는 고민거리가 생기곤 한다. 생각할 때마다 깊은 한숨을 불러일으키는 고민거리. 겉으로 드러내지도 못하고 혼자 담아두고 있으려니 답답한 마음 가눌 길 없어 누군가에게라도 내 속내를 털어 놓고 싶어진다. 도움을 받고 싶은 마음도 있을 테고, 어떤 대책이나 해결책을 제시해주지 않아도 좋으니 그저 내 말을 들어주기만 해도 좋을 것 같다. 가슴을 짓누르는 고민, 어찌 하지 못하는 현실이 어른에게만 있는 것은 아닐 터. 아이들도 가장 의지가 되는 부모나 친한 동무에게조차 말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을 게다.

 

 

 
  엄마가 사고로 돌아가신 후 말을 잃어버린 아빠와 함께 조부모 댁에 내려와 살고 있는 지호는 체격도 왜소하고 소극적이라 학교에서도 유명한 악당으로 소문난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아토피가 있어 피부가 울긋불긋한 탓에 -전염이 되지 않음에도- 반 아이들에게는 기피 대상이다. 새나 벌레와 얘기를 나누는 괴짜 같은 면 때문에 따돌림을 당하긴 해도 지호에게는 자신을 놀리고 괴롭히는 아이들보다는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듯한 새와 벌레가 더 편안한 대상이다.

 

  수학 문제를 푸는 능력이 뒤떨어져 나머지 공부를 하고 집에 돌아오던 지호는 말을 할 줄 아는 까만 돌을 줍는다. 말이 고팠고, 자신의 얘기를 들어줄 상대가 필요했던 지호는 까만 돌에게 가족 이야기며 학교에서 겪은 일, 속상한 마음 등을 종알종알 들려준다. 그런데 이 특별한 돌은 자기가 말하고 싶을 때만 할 뿐, 대게는 그저 듣기만 할 따름이다. 지호가 세 아이에게 괴롭힘을 당한 일을 이야기했을 때는 '이유 없이 괴롭히는데 왜 당하고만 있는지, 왜 도망치는지' 힐문하기도 한다. 지호는 말을 많이 하지는 않아도 자기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까만 돌이 좋기만 하다. 내 말을 들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어주지 않던가. 

 

   

 

 

 

 

 

  아내를 사고로 잃고 말하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지내던 지호의 아빠는 까만 돌에게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말할 줄 아는, 그럼에도 말없이 들어주는 까만 돌 덕분에 가슴 속에 웅크리고 있던 큰 짐을 내려놓고 다시 세상과 소통하게 된다. 지호는 까만 돌의 원주인인 줄리 아줌마에게서 세상을 떠난 남편을 향한 그리운 마음과 슬픔을 까만 돌에게 이야기하며 힘든 시간을 이겨낸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처럼 등장인물들은 까만 돌에게 가슴 속에 담아두었던 얘기를 들려주는 과정에서 아픔을 털어내고 일어설 힘을 얻는다. 지호는 서울(?)로 떠나던 날, 까만 돌을 숲에 놓고 간다. 말없이 들어주는 까만 돌에게서 위안과 살아갈 힘을 얻을 누군가를 위해..

 

 지호는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아빠나 조부모님에게 말하지 않는다. 이처럼 지속적인 폭력에 시달려도 부모나 선생님, 주변 어른들에게도 말하지 못하고-혹은 말을 했어도 무시당하거나 가벼이 넘겨버려- 혼자 그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감내하는 학생들이 많은 모양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왕따나 괴롭힘을 당하던 아이가 자살한 기사를 심심찮게 접하게 되는데, 자식 키우는 부모이기에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왕따가 남의 일 같지 않아 걱정이 앞선다.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어 삶의 끈을 놓아버렸을 그 아이들에게 자신의 고통에 귀 기울여 주고 들어주는 이가 있었다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지는 않았을까..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고민거리가 생기면 가끔 블로그 같은 곳에 비공개로 글을 쓸 때가 있다. 그리 해봐도 답답한 마음이 크게 가벼워지지는 않지만 나에게는 얘기를 들어주는 까만 돌이 없으니 이것이 차선책이라고나 할까. 내가 그러하듯이 내 주변의 다른 이들도 자기 얘기를 들어줄 누군가를 필요로 할 것 같다. 그 사람에게 내가 까만 돌이 되어준 적이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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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05 1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06 15: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08 1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12-03-08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까만 돌,, 문득 어릴 적 그러니까 지금보다는 나이가 적을 적에는 힘든 일이나 마음이 부대끼면 친구들과 토로하고 그러면서 우애를 다졌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때 그 친구들도 멀리살거나 서로의 가정일도 벅차기 땜에,, 그리고 저 자신도 아영 엄마님의 말씀처럼 다른이의 하소연을 다 받아줄 여유가 없어진 것 같고요.
그래서 그런 공허함 탓에 제가 알라딘 서재를 떠돌며 배회하나 그런 생각도 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