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제단 - 개정판
심윤경 지음 / 문이당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효계당 서안 조씨 17대 종손...
이 묵직한 수식어는 한 사람에게 주어진 화려한 후광이라기보다는 조상룡이라는 한 젊은 사내의 어깨를 짓누르는 커다란 짐이었다. 자신의 의지와 아무런 상관도 없이 등떠밀려서 앉혀진 이 자리는 적출의 소생이 아닌 그에게 출생의 근원을 끈임없이 상기시키며 늘 그의 언저리에서 상룡의 목을 죈다. 우리나라에서 종손이라는 호칭에 따라 붙는 책임감은 한 사람의 인생으로부터 자신의 생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갈 자유를 빼앗아가기 쉽상이다.  종가의 품위를 이어가려는 열망으로 가득한 할아버지가 상룡에게 준 것은 가혹한 상처뿐이었고, 그리하여 이미 예고된 서글픈 결말을 보긴 했지만 책을 덮고도 내내 우울했다. 집안의 명예와 전통을 이어가기 위한 삶이라니..

 요즘 세상은 그 옛날, 가문의  대를 잇지 못해 시가에서 쫓겨나거나 집안에 흉사가 있다고 자결을 강요받는 일은 없어졌으니 여자로서는 한결 행복한 세상이긴 하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아들을 낳아 한 집안의 대를 이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사라지지 않고 있고, 여자는 결혼을 하면 명절, 혼인상제 행사때 많은 음식을 장만하는 수고를 해마다 치루어야 하는 의무가 주어진다.  한 해동안 음식을 장만하여 치루어야 할 행사가 십여 차례가 넘는 종가의 종손 며느리에게 주어지는 의무가 얼마나 크고 무거운지는 여자들만이 알 것이고, 장남이라는 직위가 얼마나 힘겹게 느껴지는지는 남자들만이 알 것이리라..

  이 책에는 아들이 없는 양반가에서 대을 잇기 위해 혈연이 있는 친척집에서 양자를 들이는 이야기가 종종 나오는데 우리 아버지의 경우도 이와 비슷하다. 딸만 셋에 아들이 없는 작은 할배가 아들이 필요하여 차남인 아버지는 일짜감치 그 분의 양자,  즉 노후를 대비한 보장성 보험이 되셨다. 그 덕에 우리 오빠는 졸지에 이 대 장남이 되어버렸는데, 달시룻댁의 대사중에 "으른 많제 제사 많제 어데 젊은 처자가 오고 싶어하겠나."라는 말이 현실을 반영하듯 이는 우리 오빠가 장가가기 힘든 이유로 내세우는 근거이기도 하다.

  책을 읽으면서 놀라웠던 점은 본문에 그 지방 사람이 아니라면 쉬이 알아들을 수 없는 사투리가 수시로 들려 온다는 것이다. 서울 태생에 서울에서 대학을 나온 작가가 어떻게 타 지방 사투리를 대화 속에 자연스럽게 구현해 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놀라움을 가지게 만든다. 또한 간간이 등장하는 언찰 또한 놀라움을 갖게 하는 것이, 아래에 달린 주석을 통해 번역을 해야 할 정도로 난해한(?) 단어들로 채워진 터라 온전히 작가의 상상력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할아버지가 그토록 중시했던 양정공 조춘억으로 시작된 서안 조씨 가의 비사가 담긴 이 언찰이 처음에는 껄끄러운 사설인 것 마냥 느껴졌다. 그러나 한 가문의 비사를 언뜻 언뜻 비추는 이 언찰이 오히려 후반부로 갈수록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것이 이야기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심윤경님이 주목받는 신인작가라는 것이 믿기지 않게 만드는 작품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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