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언덕의 집
타카도노 호코 지음, 치바 치카코 그림, 서혜영 옮김 / 미래엔아이세움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현실과는 또다른 세상. 낯선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 현실과 다른 공간에 발을 내딪는 불안감. 신비한 매력에 매혹되어 끌리는 욕망. 판타지 동화나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작품을 통해 이런 감정들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다카도노 호코, 젊어지는 옷이라는 색다른 발상이 재미있었던 <꼬마 할머니의 비밀>를 읽었을 때 언제고 이 작가의 작품을 다시 접하게 되리라 여겼는데 두번째로 읽게 된 것이 바로 이 작품이다. 양파처럼 한 겹 한 겹 벗겨 내다 보면 중심에 이르는 것처럼 낯선 세계에 매료된 주인공의 심리를 섬세하게 잘 묘사한 판타지 동화이다.




주인공 후코는 십 삼세의 소녀로, 사촌 마리카로부터 받은 온 편지를 계기로 시계 언덕에 위치한 할아버지 댁을 방문하여 놀러온 마리카를 만난다. 이층으로 가는 층계참-할머니가 떨어진 곳임을 나중에 알게 됨- 에 있는 창문틀에 걸려 있던 회중시계가 꽃으로 변하고, 창 너머에 초록빛 정원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을 광경을 목격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신비한 정원이 다시 나타났을 때 그 곳에 발을 내딪게 된 후코는 길을 잃고 헤매다 머리핀을 줍게 된다. 후에 할아버지를 통해 할머니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말을 듣고, 할머니가 창 너머로 펼쳐지는 신비스러운 정원으로 건너가신 거라 짐작하게 된다.



 주인공이 주변 사람들과 어떤 상황에 직면하여 느끼는 감정, 좋아하는 친구에게 자신의 비밀을 공유하고 함께하고 싶은 여자 아이의 심리 등이 잘 묘사되어 있다. 시계 언덕의 집(할아버지 댁)에 신비한 느낌을 받았다는 마리카의 사촌 오빠인 에이스케를 만나 함께 시계탑을 방문하고 러시아 시계 장인에 대해 조사를 진행하며 점차 가까워진다. 후코는 정원을 탐색해가고, 에이스케는 신문 기사와 자료 등을 조사하면서 접점을 발견하고 비밀을 추적해 가는 과정이 흥미를 돋우며 체르누이쉐프라는 인물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된다.

 후코는 할아버지 집에서 일하는 리사 아주머니가 -스카프 지도와 더불어- 마트로슈카 인형과 닮은 것을 보고 정원에서 온 사람일 거라 추측한다. 신비한 정원에 매료된 사람이 어둠의 구멍 속으로 떨어져 사라질 때면 정원에 살고 있는 사람(마트로슈카 인형을 닮은 아이 중 하나)이 세상 밖으로 나와야 한다는 지난 여름에 아이들이 한창 빠져 있던 만화 <강철의 연금술사>에 자주 언급되는 등가 교환의 법칙이 생각난다.



 후코가 비밀의 정원에 끌리면서도 계속 -평범한 자신과 달리 신비한 분위기를 지닌 -마리카가 그 곳에 더 어울리는 사람일 거라 여긴다. 마츠리카(재스민)에서 따온 이름이라는 점도 영향을 끼쳤겠지만 내내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바보 같은 그리움을 간직한 눈에만 보이는 곳. 마리카에게는 보이지 않는, 후코의 눈에만 보이는 초록빛 정원. 후코는 자신이 정원의 주인임에도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럼에도 매혹적이면서도 어쩐지 위험해 보이는 정원에 매료되어 버린 후코의 마음 속에는 그 곳을 거닐어 보고픈 욕망이 조금씩 부풀어 오른다. 조금 더. 조금만 더 가면 더 멋진 풍경이 앞에 펼쳐질 것만 같은 기대감과 열망은 기어이 후코를 정원 중심에 위치한 분수대로 이끈다.

 신비의 정원을 한 번 본 적 있지만 그 이후로 더 이상 다가가지 않았다는 할아버지. 눈부시고 아름다운 정원이었지만, 할머니와 달리 할아버지는 그 유혹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나라면 신비한 세상의 문을 열어주는 비밀의 열쇠가 눈 앞에 있다면 어떻게 할까? 후코가 정원을 탐색하는 장면이나 주인공이 위험에 처하는 후반의 긴박한 장면이 인상적이다. 건너편으로 가는 문이 옷장이라는 설정은 판타지 문학의 고전인 <나니아 연대기>에 대한 오마주가 아닐까 싶다. 시계탑의 천사와 POM이라는 글자의 비밀. 야마다씨의 기록. 러시아 시계 명인과 마술사 이야기 등 궁금증을 자아내며 책장을 넘기게 하는 요소들이 포진해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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