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살아난 찌르 달팽이 과학동화 1
심조원 글, 박경진 그림 / 보리 / 2000년 2월
평점 :
절판


여섯 해 동안이나 어둡고 침침한 땅 속에 있었던 '찌르'로서는 햇살이 내려 쬐는 따뜻하고 화사한 바깥 세상이 그가 찾고자 하던 유토피아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아름다운 세상에서 단 며칠밖에 살지 못한다면, 글쎄 우리에게도 그런 일이 닥친다면 당연히 절망하고 어떻게든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칠 것이다.
왜 중국의 진시황이 불로초를 그렇게 애타게 찾았겠는가...
어떻게든 영원히 살고픈 인간의 욕망을 벌레라고 해서 느끼질 않을리 없을 것이다.

종교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부처님이 인간의 생로병사에 해탈하신 후,
죽음이 닥쳐 왔을 때 두려워 하지 않은 것은 윤회를 통해 다시 태어나는 것을, 영원한 죽음은 없다는 것을 믿으셨기 때문일 것이다.  작은 곤충들 역시 자신들이 이 세계에서 영원히 사는 길은 종족번식을 통한 길뿐임을 알고 있었기에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이 아니겠는가...

 눈 앞에서 죽음을 보는 것은 그것이 누구든, 무엇이든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찌르가 매미의 죽음을 보고 충격을 받아 알을 낳기를 포기하고 살아가려한 것을 탓할 수는 없다. 결국 다른 곤충들은 알을 낳음으로서 계속되는 삶을 택하지만 찌르는 그것을 거부한다.

그리고 죽음을 무릅쓰고 다음 생명을 위한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곤충들 속에서, 오직 교미만을 목적으로 태어난 수개미들의 결혼비행을 지켜보면서 찌르는 슬픔에 잠긴다.
'왜 알을 낳고 죽는 것을 산다고 하지?'라는 질문을 가슴에 품고...
그러나 알에서 깨어나 땅속으로 들어가려는 매미 애벌레들을 보고 찌르도 다시 산다는 것의 의미를 깨닿게된다. 자신을 닮은 새끼들을 통하여 계속되는 자신의 삶을...

종족번식 본능을 가장 극명하게 나타내어 주는 것은 이 책에서 나오는 하루살이이다.
작고 갸냘픈, 생명력이 짧은 하루살이의 선택(진화)은 입을 없애는 것이었다.
오직 알을 낳아 종족의 영속성을 보존하기 위하여 가장 원초적인 본능인 식욕마저 포기해 버린 하루살이들.. 

 짧은 동화 한 편이었지만 어른인 내게도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었다. 삶과 죽음은 종이 한 장 차이인데 인간들은 너무나 삶에 억매여 있는 것은 아닌지. 죽음을 너무나 두려운 것으로 받아 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고 삶을 경시하게 되는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우리 아이도 머지않아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을 알게 되게지만 아이가 이 책을 통해서나마 그 어두운 감정들을 슬기롭게 다스려 이겨내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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