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야! 내인생의책 그림책 4
마리 루이스 피츠패트릭 지음, 이상희 옮김 / 내인생의책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나는 나"임을 외치는 두 아이를 통해 서로의 소중함을 인정하지 않을 때 찾아 올 메마른 세상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책. 글자수는 많지 않지만 축약된 문장과 그림에 녹아 있는 상징적인 의미를 통해 말의 힘과 단절과 화합을 표현한 작품이다. 저자는 ’강을 뜻하는 아메리칸 인디언의 기호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라고 밝히고 있다. 한 사람이 동시에 강 양 쪽에 설 수 없는 것처럼 두 가지 문화에 동시에 속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강폭이 좁아지는 곳에서 몸을 앞으로 기울이면 건너 쪽 사람과 닿을 수 있다는 촉토족 인디언들의 생각을 기반으로 한 작품이다.

파란 머리의 한 아이가 ’나는 나야!’라고 외치며 언덕 위로 올라가서 보니 작은 물줄기를 사이에 두고 맞은 편 언덕에 또 다른 아이가 서 있다. 파란 머리 아이는 자신이 "세상 만물의 왕"이라고 외치자 맞은편에 선 금발 머리의 아이도 맞서 "눈에 보이는 것들의 왕!"이라고 외친다. 둘은 상대를 인정하려 하지 않고 날카롭게 날이 선 말들을 내뱉는다. 그러자 이 말들은 뽀족뾰족한 가시 철조망으로 변해 둘 사이를 가로지른다. 나에게 속한 것이 상대보다 더 우월함을 드러내려 애쓰고, 내 것만 따지고 들자 거대하게 변한 물줄기는 모든 것을 쓸어버린다.

 나를 인지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주체성을 자각하는 중요한 인식의 첫걸음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 나 혼자 잘났다고, 나만 위대하다고 잘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을 외쳐대는 두 아이가 서로를 비난하고 미움이 담긴 언어는 불을 내뿜는 거대한 용으로 형상화 되어 대지를 사막처럼 만들어 버린다. 많은 사람들이 어우러져 사는 우리 사회도 그렇다. 세계가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가는 현대에 들어서는 자신이 속한 문화와 다른 문화도 수용할 줄 아는 자세가 더욱 절실하다. 개인도 마찬가지이다. 개인의 독자성을 존중해주며 화합하고 공존하는 겸허한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 자세를 버리고 독선을 고집할 때 우리 사회, 이 지구촌은 정이 메말라 버린 사막이 되어버릴 것이다.

 물줄기도 말라버리고 땅이 거북 등처럼 갈라진 황폐한 모습을 드러내자 두 아이는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는다. 그림은 실의에 빠진 아이들을 점차 작아지는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제 둘은 겸손하게 "나는 나일 뿐이야."라고 말하며 상대의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러자 다시 싹이 움트고 꽃이 활짝 피어난다. 이 세상에 평화가 오는 길은 이렇게 쉬운데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는 오직 나만을 내세우는 이들이 가시철조망을 세우고 세상을 메마르게 하고 있다.

* 석가가 태어났을 때 이 우주만물 중에서 내가 가장 존엄한 존재라는 뜻으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 외쳤다고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인간의 존귀한 실존성을 상징하는 이 말이 현대에는 자기 혼자 잘났다고 뽐내거나 잘난 척하는 사람을 일컫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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