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지음, 조석현 옮김 / 이마고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과거의 기억은 뚜렷하나 현재는 단 5분전의 일도 기억하지 못하는 남자.
젊음이 다시 찾아 온 것처럼 기운이 넘치고 무작정 행복한 88세 생일이 갓 지난 백발의 노부인.
자기 다리를 자신의 신체의 일부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
자기도 모르게 무심코 '개자식', '젠장할' 같은 욕설이 튀어나오는 틱 장애를 가진 사람

 인식불능증, 틱 장애, 신경매독, 투렛증후군, 자폐증 등의 병력을 지닌 다양환 환자들의 야기를 접할 수 있는 이 작품은 병에 대한 연구서이자 임상보고서이며, 저자 자신이 접한 환자들을 관찰하고 치료하면서 그들에게 느낀 경이로움과 심경을 담은 이야기책이다. 단지 병의 본질만을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병으로 인해 고통을 겪는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주체성을 지키려고 애쓰는 한 인간을 마음에 둔 의사가 임상체험을 기록으로 남긴 인간미 넘치는 글인 것이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단순히 뇌나 신경에 문제가 있는 환자를 접하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말처럼 "상상을 뛰어넘는 나라를 여행한 사람들"의 세계에 조금이나마 가까이 가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나는 모 영화채널에서 방영하는 <닥터 하우스>라는 의학 드라마를 즐겨보는데 이 책에 그 드라마에 나왔던 환자와 같은 유형의 환자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는지라 깜짝 놀랐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자폐증 환자(더스틴 호프만 분)로 쏟아진 성냥의 개수를 순간적으로 알아맞히는 등 보통 사람들이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특별한 능력을 선보이는 <레인맨>의 한 장면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이 외에도 몇 개의 영화가 생각이 났는데 저자가 질병 자체보다는 환자를 고통 받고 병와 맞서 싸우는 인간 그 자체로 주체로 보고 신경 장애 환자들을 치료하고 관찰하면서 남긴 임상기록이 의학 관련 영화와 드라마의 소재로 자주 이용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가 아닌가 싶다.

 이 책은 '상실', '과잉', '이행', '단순함의 세계' 등의 4부로 나누어져 있으며, 각 부의 소단원에서 특이한 병력을 보이는 환자들의 증상과 발병 요인, 치료과정, 뒷이야기 등을 들려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저자는 환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에게 판단과 느낌을 배제하면 어떤 능력을 상실하게 되는지, 뇌기능 장애로 인식을 상실하거나 과잉이 될 경우 나타나는 특징이나 그로 인해 야기되는 아이러니한 증상 등을 알려준다. 그리고 기억이나 인식이 무엇인지,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기억이 어떤 식으로 뇌에 기록되어 있을지, 과연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인간으로서의 주체는 어떤 것인지 고민하고 생각해보게 한다. 

  우리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결함을 가진 사람들을 볼 때 그들의 결함에 주의를 기울이느라 그들에게 남아 있는, 또는 우리가 가지지 못한 능력은 알지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저자가 환자를 인간이 인간을 바라보는 시점으로 보고 다가서려고 노력한 점이 돋보이는 것 같다. 년 수에 상관없이 정확하게 요일을 맞추는 쌍둥이 자폐아를 연구한 학자들은 판에 박힌 접근방식이나 상투적인 질문, 자신들이 의도한 결말에 맞추려 했을 뿐이지만 저자는 그들의 내면에 좀 더 접근하려 노력하고 관찰한다. 그런 노력이 있었기에 소수 놀이를 즐기는 형제들의 취미를 알게 되고 이들에게 이십 자리 소수까지 짚어내는 특별한 능력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가끔 특정 분야-피아노 연주, 설계, 계산-에서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자폐아의 이야기를 접할 때가 있는데 그들의 능력에 놀라고 호기심을 가지면서도 '자폐'라는 병이 지닌 그 사람의 인생이 어떨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는 않은 것 같다. 이 책은 우리에게 놀라움을 선사할만한 특별한 환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단순히 흥미거리로 읽어 넘길 책이 아니라 그런 환자들도 영혼을 지닌 고귀한 인간임을 깨닫게 해준다. 저자가 환자에게 기울인 애정과 관심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20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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