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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고 소리 ㅣ 푸른숲 어린이 문학 16
문숙현 지음, 백대승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9년 12월
'검고 소리'라는 책 제목을 보고 '거문고'를 떠올렸는데 소개 글을 보니 작가가 거문고의 유래(삼국사기)에서 글감을 얻어 쓴 동화라고 한다. 악기를 소재로 한 작품은 생소한 편인데, 이 동화는 실제 역사를 기반으로 한 것은 아니고, 작품 속에 서로 다른 환경의 두 나라를 창조하여 이야기의 배경으로 삼고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검고’라는 새로운 악기를 만들기 위한 여정과 음악을 통해 두 나라간의 전쟁-한 쪽의 일방적인 침략이긴 하지만-을 막기 위해 애쓰는 이들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칼과 창으로 무장한 허허벌판 나라는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땅에, 몇 개월씩 비가 내리지 않아 물도 부족한 나라이다.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살다 보면 사람들의 감정도 메마르고 호전적이 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이에 비해 가우리 나라는 향기 나는 맑은 물과 비옥한 땅이 있는 곳으로, 왕은 음악으로 하늘신을 섬기고, 백성들 또한 품성이 온유하다. 힘을 지닌 나라에서 전쟁을 통해 주변의 약소국로부터 공물을 받거나 약탈을 행하는 일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주 있었던 일이다.
풍요로운 가우리 나라를 호시탐탐 노리는 허허벌판 왕은 사신을 통해 자국의 악기인 ‘칠현금’을 보낸다. 악기를 연주하지 못하면 이를 빌미로 전쟁을 일으키고자 한다. 혹 이 악기를 제대로 연주한다 하더라도 허허벌판 나라의 힘이 들어 있는 칠현금의 소리를 통해 가우리 나라 사람들의 마음에 미움과 원망을 심어주려는 흉계가 숨어 있다. 피아노나 바이올린, 현악 4중주 등 다양한 악기로 연주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마음이 편안해지거나 즐거워지기도 하고, 슬픈 마음이 들거나 흥분되는 느낌이 든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이 작품에는 음악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작가의 생각이 배여 있다.
가우리 왕은 칠현금을 연주하는데 실패한 악사장 해을에게 악기를 가우리 나라에 맞게 고치는 임무를 맡긴다. 처음에는 해을이 주인공인 줄 알았는데 악기에 필요한 목재를 구하는 과정에서 자연에 깃든 소리를 들을 줄 아는 '다루'라는 소년이 등장한다. 이 두 사람이 힘을 합쳐 다루가 아끼던 나무를 베어 악기를 만들고 왕이 '검고'라는 이름을 내린다. 책을 읽다 보니 악기를 만드는데 걸린 시간이 삼 년으로 설정이 되어 있는데, 하나의 악기를 완성하기에는 적당한 시간일지는 몰라도 허허벌판 나라의 사신이 당장이라도 대가를 치르게 할 것처럼 하고 간 것을 생각하면 꽤나 긴 시간의 여유를 준 것으로 여겨진다.
조공을 바치러 가는 사절단을 따라 허허벌판 나라에 다녀온- 그 과정에서 타마 공주를 만나고- 다루는 미완으로 남아 있던 검고를 완성시키고, 목전에 닥친 전쟁을 막기 위해 다루와 타마공주는 함께 평화와 평등, 자연에 대한 공경심이 담아 연주를 시작한다. 전반적으로 이야기 중간 중간에 약간의 불협화음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어서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감이 있긴 하지만, 작품의 영감을 얻은 역사의 기록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도 되어서 좋았다. 개인적으로 섬세하면서도 몽환적인 느낌을 한껏 살린 백대승씨의 일러스트가 특히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