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56
마샤 브라운 그림, 블레즈 상드라르 원작, 김서정 옮김 / 보림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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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책은 그림자 자체의 특징을 잘 살려놓은 그림책이긴 하지만 블레즈 상드라르의 '주술사'라는 시를 원작으로 하는 그 내용이 유아들이 이해하기에는 좀 난해한 감이 있습니다. 작가가 '초등학교 2학년을 대상으로 그림을 슬라이드로 보여 주며 시를 읽어 주었다'는 글에서 짐작하듯이 초등학교 2,3학년 이상은 되어야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그림자의 다양하고도 오묘한 면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1학년인 우리 아이도 이 책을 보면서 큰 재미를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작은 아이에게도 읽어주는 것이 무리인듯 하여 그림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로 그쳤습니다.

그림에 대한 전체적인 평을 하자면 그림자를 만들어 내는 선명한 검은색과 어슴푸레한 하얀색이 어우러져서 아프리카의 토속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갈가리 찢긴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토인 가면같이 선명한 색상이 눈에 성큼 다가서기도 하지요. 제가 보기에도 그림자가 산다는 숲 속의 검은 풍경은 기괴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불이 꺼진 뒤 눈이 멀어 비틀거리며 기댈 곳을 찾아 흐느적거리는 그림자의 모습은 귀신의 형상처럼 여겨졌어요. 반면 초원을 배경으로 움직이는 동물들을 비록 검은색으로 표현하긴 했지만 매우 약동적으로 그려져 있기도 합니다. 간혹 유아가 겁을 집어 먹을 만큼 매우 강렬한 느낌을 주는 그림도 눈에 띄는 등 마샤 브라운의 그림은 매우 독특하다고 생각되어 졌는데, 저나 아이의 정서에는 그다지 맞지 않아서인지 현재로서는 자주 보게 되지는 않더군요.

그렇긴 해도 저 혼자 책에 실린 시를 읽다보면 정말 그림자가 살아 움직일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시에 표현된 '그림자'는 춤추는 이들 틈에 끼어 서성이며 춤추는 것을 좋아하고, 절대로 말이 없이 조용한 존재입니다. 불길이 사그라들면 숲 속으로 돌아가지만 결코 잠들지 않은 채 우리가 눈뜰 때를 노리면서 숨어서 엿보고 있지요. 앞을 볼 수가 없어 비틀거리지만 울지도 않고, 아무도 부르지 않는, 목소리가 없는 존재인 그림자! 하지만 세상 모든 기어 다니는 것과 꿈틀거리는 것들의 어머니가 바로 그림자라고 속삭이고 있답니다. 시인이 그림자의 속성을 매우 명철하게 꿰뚫어 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수작입니다.

이 책을 그다지 흥미있게 보거나 들을려 하지 않길래 아이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그림자 놀이'로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불을 다 끄고 촛불 하나 켜 놓고 손으로 여러가지 동물, 곤충 등을 만들어 내는 놀이요... 두 아이가 좀 더 큰 후에 그 때 함께 했던 그림자 놀이를 떠올리며 즐거운 마음으로 이 책을 보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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