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25살의 나이에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그 중압감과 남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을 하려던 혜완. 그녀는 버스를 놓칠까봐 길에서 다가 오고 있는 파출부에게 아이의 등을 떠밀고 쫒아가려다 그만 아이를 교통사고로 잃고 만다. 모든 책임은 그녀에게 있었고, 아이를 죽였다는 남편의 힐난과 구타를 참지 않고 이혼을 감행한다.

딸만 낳아 시어머니의 냉대와 남편의 눈치만 보며 살아온 혜완의 친정어머니는 손자의 시체를 끓어 안고 오열하는 사돈을 두고 병실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이는 장면이 있다. 그토록 귀한 아들을 횡천길로 보낸 딸때문에 얼굴을 들 면목이 서질 않았기 때문이리라. 자신의 한을 풀듯 딸 둘을 둔 큰 딸에게는 소파수술을 시켜서서라도 기어이 아들을 가지게 만든다.

한편 혜원을 작가 초년생이자 이혼녀로 살아가는 혜완은 어느날 친구인 영선의 자살소동 소식을 접한다. 영선은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학업도 접고 파리로 날아가 남편을 영화감독으로 성공시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한 여성이다. 그녀가 왜 자신의 몸을 자해하려고 했을까? 정신병, 아니면 우울증? 그녀의 불행은 남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것, 그래서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 자신이 너무 비참했기 때문이리라. 같이 공부하자면서 남편은 커피와 야참을 이야기하고, 집안에 어디가 지저분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과연 영선이 남편과 아이 뒷바라지를 하면서 자신이 하고싶은 일을, 공부를, 책을 마음껏 읽을 시간이 있기나 했겠는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정의 일과 육아까지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는 슈퍼우먼은 없다. 어느 것 하나는 삐걱거리고, 여자를 힘들게 한다. 그렇다고 전업주부는 행복하기만 할까?

또 한 명의 여주인공 경혜는 잘나가는 방송국 아나운서였지만 의사라는 잘난 남편을 만나 직장도 그만 두고 집에 있다. 재력의 차이때문에 시댁의 눈치를 보면서 사는 경혜에게는 남편의 외도라는 불행이 함께하고 있었다. 불행한 결혼생활이지만 그녀는 혜완처럼 이혼을 하지도 않을 것이고, 영선처럼 자살을 할 용기도 없다. 그저 겉만 번지르르한 의사 사모님의 위치를 지켜나갈 뿐이다.

이 책을 몇 번째 읽지만 그 때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딸이었든데 그 생각이나 며느리가 된 후, 아이의 엄마가 된 수의 생각들이나 느낌이 조금씩 달라지지만 여자의 불행에 관한 생각은 변함이 없다. 여자가 사회의 편견과 불평등을 안고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여자에게는 불행이듯이, 남자도 평생 가족의 부양이라는 짐을 지고 살아가는 남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불행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나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더 큰 희생과 불평등을 강요하고 있는 부분이 많이 있다. 물론 작가가 이 소설을 쓴 시대와 그 이전 시대에는 밀레니엄 시대로 접어든 지금보다 더 큰 굴욕과 굴종의 짐들이 여성에게 짐지워져 있었다.

자신은 딸로 태어났으면서 아들이라는 존재를 낳기 위해 자식을 줄줄이 낳거나 낙태수술을 반복하는 것은 다반사였던 시대가 분명이 있어 왔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은연중에 어른들로부터 주입되고 강요된 의식-여자는 아들을 낳아야만 대를 있는 의무를 완수하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그토록 아들에 집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주인공들의 대화중에 '딸낳고 잔치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는 말이 있다. 정말 아들을 낳았다고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동네방네 자랑하려고 쫓아다녔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딸 낳았다고 기뻐하거나 잔치를 벌인 집이 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과연 여자는, 딸은 환영받지 못할 존재인가.. 이 세상에 인간이라는 존재를 존속시키기 위해서는 두 성이 다 존재해야 하는데 왜 유독 여성은 불평등을 안고 살아야 하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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