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오리 한 마리가 살았는데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31
헬렌 옥슨버리 그림, 마틴 워델 글, 임봉경 옮김 / 시공주니어 / 200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책을 보았을 때 표지 그림-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넓은 밭을 혼자서 갈고 있는 오리 한마리를 보면서 '그는 왜 이렇게 혼자 일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책장을 넘기면서 그의 불행을 알게 되었지요. 그의 불행은 바로 게으름뱅이 늙은 농부에게서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초콜릿 상자를 끼고 신문이나 보면서 하루종일 침대에서 뒹굴거리는 게으름뱅이 농부가 하는 일이라고는 '일은 잘 돼가나?'라고 오리를 재촉하는 말 뿐입니다. 게으름뱅이 농부를 위하여 식사를 나르고, 농장 동물들을 돌보는 등, 집안 일과 바깥 일을 혼자서 모두 해나가야 하는 오리의 신세의 고달픔을 굳이 말로 표현할 필요도 없겠지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일을 해야 하는 오리의 축 쳐진 어깨와 피곤에 찌들은 표정을 보고 알 수도 있을 것이며, 읽어주는 엄마의 힘없는 '꽥'이라고 오리의 대답에서 그 고달픔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너무나 지쳐서 눈물을 흘리며 주저앉아 닭들의 위로를 받고 있는 오리의 모습은 찡한 감정을 자아내게 하더군요.

그러나 이 책은 슬픔만 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반복되는 글과 그에 따른 동물들은 울음소리는 아이들의 흥미를 돋구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물론 우리 아이들도 '일은 잘 돼가나?'라는 질문에 '꽥' 하는 대답을 하는 문구가 반복되자 웃음을 참지 못했습니다.

사실 이 책을 처음 읽어 줄때는 아이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일부러 농부의 질문과 오리의 대답소리를 우렁차게 읽어주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꽥'이라는 이 한마디속에 녹아 있는 오리의 고통을 제대로 표현해 내지 못했어요. 하지만 엄마가 동물들의 울음소리에도 감정을 담아서 읽어준다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아이들도 오리나 농장의 다른 동물들의 감정-슬픔, 분노, 기쁨을 충분히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곰사냥을 떠나자'의 그림에서 느꼈던 헬린 옥슨버리의 섬세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그림들이 너무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림 자체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이야기를 이끌어 갈 글이 필요없을 것 같은 생각마저 듭니다. 권선징악의 상투적인 내용이라고는 하지만 오리를 사랑하는 다른 동물들이 힘을 합쳐 게으름뱅이 농부를 쫓아 낸 후 신나게 살게 된다는 내용도 좋았습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인 동물들의 울음소리를 아이와 함께 큰 소리로 내어 보세요. 한 두번만 읽어주고 나면 엄마가 '일은 잘 돼가나?' 하면 아이들은 알아서 '꽥'하고 대답합니다. '젓소가 말했습니다'하면 '음매~', '양들도 말했습니다' 하면 '매애애!' 이렇게 엄마와 아이가 함께 읽다보면 책 읽는 시간이 즐겁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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