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 아저씨의 뜨개질 벨 이마주 17
디 헉슬리 그림, 마거릿 와일드 지음, 창작집단 바리 옮김 / 중앙출판사(중앙미디어) / 2002년 4월
평점 :
품절


기계에 의해 잘만들어진 옷들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는 요즘에는 뜨개질을 하는 사람이 드뭅니다. 그러나 여자라면(남자들도) 누구나 한 번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이 손수 떠서 만든 목도리나 장갑, 옷을 입혀주고픈 열망에 사로잡힐 때가 있지요.
남편에게, 아이에게, 연인에게 줄 목도리나 조끼, 스웨터를 실로 뜰 때 그 한 코, 한 코에는 아내의, 엄마의, 애인의 정성이 함께 떠지는 것입니다. 옷이 완성되어 선물하였을 때 받는 이의 기쁨을 생각하면서 한 밤중에도 손가락이 뻗뻗해지도록 뜨고 뜨고, 또 뜨는 것이죠...

작년 여름 아이의 옷을 뜰 때도 그 실값이면 아이 옷 두벌은 사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 손으로 뜬 새하얀 원피스를 입혀주고 싶은 마음에 한 달내내 실뭉치와 바늘을 들고 뜨개교본을 보면서 씨름을 하여 옷을 완성하였답니다.
입혀보기 전에 작지는 않나, 행여 코는 빠뜨리지 않나 살펴보고, 드디어 옷 한 벌을 완성했다는 대견함과 뿌듯함을 안고 설래이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입혀볼 때의 기쁨이란... 그 설레임과 뿌듯함을 떠올릴 때면 다시 한 번 뜨개 바늘을 들고 싶은 유혹을 느끼곤 한답니다.

그런데 뜨개질은 여성의 전유물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탓에 남자가 뜨개질을 한다는 것이 무척 이상하게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 나오는 뜨개질을 하는 닉 아저씨가 조금은 낮설게 느껴지기도 하지요. 하지만 책을 보면서 문득 임신한 아내와 함께 십자수를 뜬다하여 화제가 된 탤런트 최수종씨가 생각났습니다.

남자에게는 낮설은 바늘을 들고 한 땀 한땀 수를 놓으면서 그의 아내와 아기에게 향한 사랑을 표현했겠지요. 한 바늘이라도 틀리지 않으려고 정신을 집중하다 보면 잡념이 없어지고 그 속에는 오직 사랑만이 충만해졌으리라 믿습니다.

한편 낯선 사람일지라도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되면 공통된 화재를 가졌다는 이유로 금방 친해지기도 합니다. 아마 닉아저씨와 졸리 아줌마도 뜨개질이라는 공통의 취미가 아니였다면 기차 안에서 마주보고 앉아 있다 하여도 말 한마디 건네지 않는 사이였을지도 모릅니다.

매일 아침 도시로 가는 일곱시 기차를 타고 늘 같은 길을 가는 두 사람, 닉 아저씨와 아줌마는 부부는 아니지만 오랜 친구처럼, 여행길의 동반자처럼 늘 함께 뜨개질을 합니다. 닉 아저씨는 해마다 쑥쑥 자라는 스물 두명의 조카에게 줄 점퍼를, 졸리 아줌마는 동물 장난감을..한 사람은 빠진 코를 챙겨주고, 한 사람은 얽힌 실을 풀어주는 참 다정한 친구들입니다. 그러던 어느날인가부터 졸리 아줌마가 기차에 타지 않게 되고, 닉아저씨는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 코을 세 개나 놓쳐버립니다. 늘 함께 뜨개질 하던 아줌마가 없으니 뜨개질마저 재미가 없어졌지요.

며칠 뒤 졸리 아줌마가 몹시 아파서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병실에 혼자 누워 있는 아줌마를 위하여 닉아저씨는 회복을 비는 위문카드나 화사한 분홍색 털실 뭉치, 코바늘을 준비하지요. 첫 코를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아저씨에게 분홍색 코끼리를 뜨겠다며 눈물을 터뜨리는 졸리 아줌아는 무엇보다 기차여행을 하면서 보던 것들이 그립기만 하지요.

날마다 기차를 타고 가면서 뜨개질을 하고, 다른 승객들을 살피고, 창문을 통해 지붕들, 뒷뜰, 항구의 풍경을 보던 졸리 아줌마에게는 작고 하얀 병실처럼 폐쇄된 공간이 참을 수 없이 답답해 보였을 것입니다.

기차여행을 그리워 하는 졸리 아줌마를 위하여 다시 뜨개질을 시작한 닉 아저씨가 뜬 것을 무엇일까요? 졸리 아줌마를 위하여 뜬 아주 아주 특별한 것... 저 역시 그것을 보고 감동하고 말았지요. 아저씨가 졸리 아줌마에게 선사한 사랑의 선물은 무엇인지 궁금해 지지 않으세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꼭 해 주고 싶을 만큼 정말정말 아름다운 선물...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나니 문득 뜨개질 바늘이 부딪치면서 나던 딸각딸각 소리가 그리워집니다. 이번에는 둘째 아이를 위하여 시원한 여름 옷 한벌을 만들어 볼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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