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야, 나!
고경숙 지음 / 재미마주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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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경숙 씨는 2006년 볼로냐 아동도서박람회에서 <마법에 걸린 병>이라는 그림책으로 픽션부문 라가찌상을 수상한 작가.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이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단체에서 수상을 하는 것은 반갑고도 기쁜 일이다. 상을 수상한다는 것은 작품성을 인정 받은 셈인데, 그 작품의 어떤 점이 독특하고, 뛰어나서 인정을 받았는지, 작가의 작품 세계 등이 궁금하여 관심이 가게 된다. 

  <마법에 걸린 병>에서는 병 그림뒤에 숨어 있는 여러 동물로 즐거움을 주었고, 글밥이 상당히 많아서 놀랬던 <위대한 뭉치>에서 흥미진진한 모험 이야기를 들려 주는 등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하는 작가이다. 이번 작품은 원색을 많이 사용한 현대적인 감각이 돋보이는 독특한 그림들이 눈길을 끈다. 흰 바탕에 인물이나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지 않고, 대상의 특징이나 중요 부분들을 도형으로 형상화하거나 콜라주 등으로 과감하게 표현해 놓은 점이 인상적이다. (인터넷 서점에 올라와 있는 책소개 글을 보면 입체파 형식을 언급해 놓았던데, -미술에 대한 지식은 부족하지만- 개인적인 감상을 표현하자면, 표현주의 그림 같은 느낌을 풍기는 화풍이라고나 할까~) 

 세로 방향의 판형이 제법 긴 이 책은 부채 접는 것처럼 긴 책장을 차곡차곡 접는 방식으로 제작된 병풍 책으로, 책장의 일부를 들추어 보는 플랩(여닫이 판)이 포함되어 있다. 플랩과 플랩 밑의 그림이 한 책장에 있는 일반적인 플랩북과 달리 플랩에 해당하는 부분에 오는 책장 (뒷면) 쪽에 밑그림(글자)을 인쇄한 것이 특징. 이 책의 책장이 일반 그림책의 책장보다는 두꺼운 편이긴 하지만 책장마다 배치한 작고 긴 플랩이 구겨지거나 찢어질까 염려되어 들추어 보기 조심스럽다.
- 책장 뒷면은 들춰보는 곳에 해당되는 아래쪽 부분에 글자가 인쇄되어 있는 것 외에는 공백으로 비어 있다. 뒷면에도 그림-가령 버려진 것들-이 그려져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은 고급스러운 책장이 비어 있는 것이 너무 아까워서~. ^^*

 표지 책장을 넘기면 -속지 없이-검은 색의 간지에 그림을 그렸다가 구겨서 버린 것 같은 종이 뭉치가 눈에 들어온다. 옆 장에는 그 종이가 펴지면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그림 속의 한 여자 아이가 "누구야?"하고 묻는다. 빨간 체크무늬 리본을 맨, 대충 그린 듯한 곱슬머리에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여자 아이는 스케치를 끝내고 채색을 하려다 만 듯한 모습.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느낌을 받은 미미는 자기를 버린 이가 누구인지 궁금하다.

 많은 이들이 차례로 "나야, 나!"라고 외치며 나서는데, 책장의 하단에 달려 있는 긴 플랩을 넘겨보면 이들이 저마다 버린 것들이 나온다. 피아니스트는 슬픈 음계를, 교통순경은 고장 난 호루라기를, 발명가는 낡은 부속품들을... 그런데 마지막에 모습을 드러낸 화가는 앞서 등장한 이들과 달리 자기는 아니라고 부인한다. 소리를 친 아이가 화가가 그린 그림인 것을 눈치 채고 있는 독자 입장에서는 빤히 눈에 보이는 사실을 부인하며 발뺌하는 모습에 코웃음을 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화가 이외의 이들은 미미를 버린 당사자가 아닌데 왜 자기라고 나선 거지?  비록 미미(를 그린 종이)를 버린 것은 아니지만 자기가 다른 무엇인가를 버렸다는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 아닐까? 어쩌면 자신들이 버린 어떤 것들도 어디선가 미미처럼 "누구야?"하고 묻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이 책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어떤 것들을 버렸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이와 이 책을 처음 볼 때는 플랩을 넘겨보기 전에 이 대상이 무엇을 버렸을지 추측해 보게 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그리고 책에 나오는 인물들로 그치지 않고 또 다른 대상과 짝지어 버렸을만한 것들을 덧붙여 보는 것도 재미있는 활동이 되지 않을까 싶다. 작가가 이야깃거리를 제공한다면 그것에 상상력을 더해 이야기를 확장시켜 가는 것은 독자의 몫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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