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마을
다시마 세이조 지음, 엄혜숙 옮김 / 우리교육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도쿄에서 직접 가축과 농작물을 기르며 아이들을 위한 작품을 쓰고 그린다는 다시마 세이조의 이력을 보며 작고하신 우리나라 동화작가 권정생님이 떠올랐다. 자연을 가까이 하며 아이 같은 동심을 잃지 않는 점 등의 유사한 면이 있어서 일까? 아이들의 상상 속에서 펼쳐질 법한 이야기들을 형상화시킨 다시마 세이조의 그림책들을 보면 먼저 아이가 그린 것 같은 그림이 눈길을 끈다. 독자들은 내가 혹은 친구, 내 아이가 그린 것 같은 그림에서 동질감과 친근함을 느끼게 된다. 글도 미사여구로 치장하지 않고 아이가 쓴 것처럼 간결하고 짧다. 

 <로쿠베, 조금만 기다려>, <사람놀이>, <훈이와 고양이> 등의 그림을 그린 초 신타(죠 신타) 역시 어린이가 그린 것 같은 화풍을 선보이는 작가인데, 다시마 세이조의 그림이 좀 더 원색적인 색감과 선 굵고 강렬하면서도 대담한 붓질로 화풍에 활력이 충만하다. 주인공이 놀라는 모습도 깜짝 놀라는 정도가 아니라, 펄쩍 뛰어 오르거나 나동그라질 만큼 화들짝 놀라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과장스럽게 표현해 놓았으며, 자연의 활기를 기운차게 흐르는 시냇물처럼, 세차게 쏟아지는 폭포수처럼 시원하고 생동감 있는 그림으로 잘 발산하고 있다. 

 소풍 가는 날 아침, 친구들이 탄 버스를 놓치고 뒤이어 오는 다른 버스를 타게 된 주인공. 그런데 이 버스는 소풍 장소가 아닌 '모르는 마을'로 향한다. 이 마을에는 -인간 중심의 현실 속에서 이룩된- 상식을 뛰어넘는 일들이 연이어 펼쳐지며 이야기 속 주인공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도 쉴 새 없이 놀라움을 안겨준다. 차를 타면 갈 수 있는 곳이라는 설정 또한 이처럼 기발하고 놀라운 세계가 현실과 그리 멀지 않은, 가까운 곳에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우리 동네에도 이런 마을로 가는 버스가 멈추면 아이들이 무척이나 좋아할 텐데~. ^^

 모르는 마을은 현실에서 고정되어 있던 것들이 살아 움직이고, 물과 땅에서 사는 것들이 뒤바뀌어 있는 세상이다. 식물이 걸어 다니고, 시냇물에서 과일이 헤엄쳐 다니고, 길가에는 새가 나 있고 밭에는 소랑 돼지가 자라고 있는 곳.(<돼지가 주렁주렁>이라는 그림책에서도 돼지가 꽃으로 피기도 하고 열매가 되기도 하지만 이는 아내가 인위적으로 만든 설정. 돼지들을 나무에 매달다니, 이 아내 힘이 장사에요~. ^^) 여러 종류의 물고기가 땅에 머리를 처박고 자라나고 있는 밭이라니, - 나무에 물고기가 열매처럼 주렁주렁 열린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있긴 하지만-기발한 설정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물에서 튀어 오르는 바나나를 잡고, 여치를 타는 즐거움을 누린 소년은 채소로 되어 있는 마을에 도착한다. 이곳에서는 가로수 개가 도시락을 먹어치우며, 민들레가 사람을 삼켜 버리기까지-맛이 없어서 뱉어내긴 하지만- 한다. 그리고 이 마을 햄버거가게에서는 햄버거가 고양이 화분을 판다. 고양이가 햄버거를 파는 것이 아니라! 정형화된 틀을 벗어난 설정이 더 큰 웃음을 주는 것을 아는 작가의 발상~.

 주인공은 태어날 때의(=발가벗은) 모습 그대로 민들레 솜털을 타고 돌아온다. 아침에 맨발로 뛰어나오며 도시락을 챙겨주었던 동생이 이번에도 맨발로 달려와 반긴다. 그리고 아이가 옷가지며 배낭을 잃어버리고 돌아왔지만 엄마는 야단은커녕 환하게 웃는 얼굴로 맞이한다. 바로 우리 아이들의 소망이 투영된 해후이자 감격적인 결말이 아니겠는가~. 현실에서는 대게 동생과 늘 티격태격하고, 부모에게는 야단맞기 일쑤인데 이와는 정반대의 꿈같은 일이 현실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아, 이 얼마나 즐거운 소풍이란 말인가!! 

 속지 그림을 보면 표지 그림과 달리 원색을 배제하고 흑백으로 그려져 있다. 앞 속지의 흑백 그림은 -중요한 순간에 실수를 하면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처럼- 타야할 차를 놓친 암담한 소년의 감정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반면 뒤 속지의 흑백 그림은 지붕 위로 달이 떠있는 어두운 밤에 소년이 다시 모르는 마을로 놀러 가는 풍경으로, 꿈과 환상의 세계로 진입하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아, 민들레 솜털들을 따라 웃는 얼굴로- 짐작에 옷을 걸치지 않은 듯- 모르는 마을로 가는 소년의 모습을 작게 그려 놓아서 하마터면 놓칠 뻔 했다.

 명화 같은 느낌의 고풍스러운 그림-대게 아이보다 어른들이 이런 작품이 더 끌리는 경향이 있지 않을까-도 아이들의 감성을 풍부하게 키워주겠지만, 아이들에게는 웃음을 주는 요소가 있거나 상식을 벗어난 설정이나 그림, 그리고 찾을 거리, 볼거리가 많은 그림이 더 큰 즐거움을 주는 것 같다. 깔깔~ 소리내 웃어가며 이 책을 본 아이(초등5)가 정말 재미있다며 엄마도 빨리 보라고 독촉을 하기에 감상을 말로 표현해 보라고 하니 "창의성이 돋보이는 걸작"(조금 과장된 표현이려나?) 이라고 한다. 하긴 내가 봐도 아이들이 재미있는 책이라고 열광할만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이 놀라자빠지는 주인공의 표정이나 곤란한 상황에 처한 모습 등을 보며 내내 웃지 않을 수 없다.

  이 그림책이 펼쳐 보인 새로운 세계를 접한 아이들은 새로운 시선으로 주변을 돌아보면서 자신의 내면에 또 다른 세상을 창조해낼지도 모르겠다. 다시마 세이조의 작품으로는 이 그림책 외에 <뛰어라 메뚜기>와 <채소밭 잔치>를 보았는데 <엄청나고 신기하게 생긴 풀숲>을 비롯하여 아직 보지 못한 다른 그림책들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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