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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 시험 ㅣ 보리피리 이야기 6
박선미 지음, 장경혜 그림 / 보리 / 2009년 3월
평점 :
학교 근처 길을 가다 보면 지나가는 학생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쌍스러운 말투와 욕에 기함을 하곤 한다. 다투는 것도 아니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아무 거리낌 없이, 천연덕스럽게 욕을 섞어서 말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면 어린 아이들의 여린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는 것이 의심스러워 다시 한 번 쳐다 볼 수밖에 없다. 나 어릴 때도 가끔 욕을 쓰는 아이들이 있긴 했지만 지금처럼 일상화 되어 있지는 않았던 터라 요즘 아이들의 모습이 낯설고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일전에 욕을 쓰는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고-초등학생들에 이어 심지어 유치원생들까지- 있다는 내용의 욕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거기에 욕 시험을 본 실례도 나온 터라 혹 이런 추세를 반영한 동화인가 싶어 관심을 가졌는데 의외로 반대(?)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동화이다. 아빠가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가진 터라 스스로 자신의 말이며, 몸가짐, 행동을 조심하려 애쓰는 내성적인 야야를 통해 작가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을 그리고 있는 작품. "~데예", "~노" 등 과 같은 다양한 어미가 등장하는 경상도 사투리가 딱딱하면서도 칼칼한 느낌을 주며 글맛을 돋우어 읽는 재미를 제공하고 있다.
뜬금없이 시험지를 나누어주며 욕 시험을 보겠다는 선생님. 한 줄도 쓰지 못하고 있던 야야는 들은 것도 없냐는 선생님의 말씀에 동네 어른들이 다투던 때를 떠올리며 욕을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이어 억울했지만 가슴 속으로 꾹꾹 눌러 참아야 했던 온갖 일들이 떠오르자 입 밖으로 내 본 적이 없던 욕들이 절로 나오는지라 시험지를 빼곡히 채우기에 모자람이 없다. 야야는 선생 딸이 욕도 하냐고 놀릴까봐, 오빠에게 대든다고 할까봐, 야무지게 일한다는 어른들의 칭찬의 말 때문에 참고 지내는 일들이 많다. 선생님은 야야를 비롯하여 아이들이 드러내서 말하지 못하고 가슴 속에 꾹꾹~ 눌러 놓은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시험지에 욕이라도 질펀하게 풀어 놓는 것으로 마음을 씻어 버리라는 의도로 욕 시험을 본 것이다.
친구들에게 말 못하고 집에 돌아와 혼자 끙끙거리고, 선생님이나 부모님한테 혼나도 그 자리에서는 말도 못 하고 눈물 찔끔거리며 돌아서고, 밤에 누워서도 낮에 있었던 일을 곱씹어 대는 답답한 아이. 야야에게서 어릴 적 내 모습과 소심하고 내성적인 내 아이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누가 시킨 것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여 지나치게 자기 검열을 하다 보면 사는 것이 더 힘들게 느껴진다. 선생님은 야야에게 남들 때문에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할 수 있는 데까지 하고 억지로 더 잘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고, 욕해야 될 때는 욕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억울하게 무조건 당하지만 말고 받아칠 때는 받아치라는 의미일 텐데, 그렇긴 해도 아이들이 정도-욕에 수준이나 정도가 있겠는가마는-를 넘어서는 욕은 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소심한 덕분(?)에 아직은 욕을 거의 입에 담지 않는 우리 집 아이들. 작은 아이는 가끔 자기도 욱~ 해서(=성질나서) 욕을 하고 싶을 때가 있지만 참는다고 했었는데, 혹 이 책에 선생님이 욕해도 된다고 했다고 할까 은근히 걱정되기는 한다. (^^)> 여러모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동화이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부를 때 종종 이름 말고 '야야~"라고 칭하곤 하셨던 터라 주인공의 이름부터 나에게는 향수 어린 단어이다. 앞쪽은 매끈해서 잘 써지지 않고, 뒤쪽은 꺼칠꺼칠해서 연필에 걸려 찢어지는 누런 시험지. 요즘 아이들은 이런 종이는 써본 적이 없을 게다. 마지막으로 요즘 대부분의 아이들이 욕을 한다는데, 아이는 어떤 욕들을 알고 있는지 욕 시험도 한 번 보고 욕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건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