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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처구니 이야기 - 2005년 제11회 황금도깨비상 수상작 ㅣ 비룡소 창작그림책 28
박연철 글.그림 / 비룡소 / 2006년 9월
평점 :
뜻밖의 기막힌 일을 겪었을 때 흔히 '어처구니없다'라는 표현을 쓰곤 하는데 과연 '어처구니'이라는 단어의 기원은 무엇일까? 그리고 결혼식 날자나 이사하는 날을 정할 때 '손 없는 날'을 좋은 날로 보고 날짜를 정하는 풍습이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 그림책은 '어처구니'들이 궁궐 추녀 마루 끝에 자리잡게 된 사연과 '손'과의 관계를 옛이야기 풍으로 재미나게 들려주고 있다. 2005년 황금도깨비 대상(그림책 부문)을 수상한 박연철 작가의 작품.
- 이 작가는 2007년에는 볼로냐 국제 어린이 도서전에서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를 수상하기도 함.
내용도 재미있지만 작가의 개성이 느껴지는 그림들도 인상적이다. 낡은 벽의 느낌을 풍기는 바탕에 판화 기법과 벽화, 콜라주를 이용한 묘사 등, 극의 상황에 따라 다양한 기법을 이용한 점이 돋보인다. 특히 어처구니들을 만화적인 느낌으로 익살스럽게 묘사하여 작품의 해학적인 면을 한껏 살린 터라 이들의 과장된 표정이나 행동들 덕분에 시종일관 웃으며 이야기 속으로 빠져 들게 된다. 표지 그림 속의 손의 험상궂은 모습이 혹 유아들에게 무서움이나 거부감을 일으킬 수도 있겠으나 이 작품은 책 제목을 거꾸로 표기한 속지에서부터 웃음을 유발한다.
먼 옛날, 어처구니란 녀석들의 말썽 때문에 하늘나라가 조용한 날이 없자 화가 난 임금님이 이들을 잡아 와서는 사람에게 해코지를 하고 다니는 '손'이라는 못된 귀신을 잡아 오면 죄를 용서해 준다고 한다. 손을 잡는 일은 호락호락하지 않아 한 번 실패를 하고, 대당사부가 방법을 생각해내서 다들 맡은 임무를 위해 노력을 한다. 한데 손을 묶을 밧줄을 만드는 임무를 지닌 손행자가 게으름을 피운 탓에 그만 막판에 손을 놓치고 말았으니... 결국 어처구니들은 하늘로 잡혀가 궁궐 추녀마루 끝에서 손으로부터 사람을 지키게 되었단다.
입이 두 개여서 어느 쪽이 거짓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이구룡을 비롯하여 저팔계, 손행자, 사화상, 대당사부, 험상궂은 손처럼 개성만점의 대상이 등장하고, 입과 귀를 즐겁게 해주는 나불나불, 주물주물, 가랑가랑 등의 다양한 의성.의태어를 구사하여 옛이야기를 듣는 같은 재미도 갖추고 있다. 어처구니들이 죄수복을 입고 갇혀 있는 그림도 웃음을 유발하지만 어처구니들의 죄상을 조목조목 나열하는 부분이나 이들이 항변하는 부분을 -색색의- 이름별로 기재한 구성도 이색적이다.
손행자의 게으름이 빚어낸 결과는 굳이 이야기 속에 어떤 교훈이 담겨 있다고 말하지 않아도, 여러 명이 힘을 합쳐 무슨 일을 할 때 나 하나쯤은, 혹은 이 정도쯤은 하는 안일한 생각을 가진 이가 있으면 일을 그르치기 쉽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본문 뒤에 어처구니와 손에 대한 설명, 어처구니없다 라는 말이 생긴 연유 등이 간략하게 실려 있어 아이들이 '손 없는 날'이 무엇인지, 이런 날을 고르는 이유를 궁금해 할 때 함께 볼만한 그림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