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 Dear 그림책
숀 탠 지음 / 사계절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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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 전쟁, 핍박을 피해 고향을 떠나 이주한 이민 혹은 망명한 난민들의 두려움과 어려움, 새로운 환경에 정착해 가는 과정을 그림으로 담아 낸 글자 없는 그림책. 사람들에게 버려지고 잊혀진 것들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상징적인 그림책 <잃어버린 것>의 작가 숀 탠은 이 작품을 통해 자기 가족(아버지)과 자신의 나라(호주)-혹은 세계-의 이민사를 담아냈다. 낯선 땅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사람의 고단함과 희망을 일구어가는 모습을 차곡차곡 담은 흑백 사진들이 빼곡히 들어 있는 낡고 오래된 앨범 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이 그림책이 도착한 후, 최근의 한 모임에서 북크로싱으로 <무슈 린의 아기>이라는 책을 선물로 받았다. 전쟁을 피해 젖먹이 손녀를 데리고 망명길에 오른 한 노인의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에도 낯선 나라에서 살게 된 사람이 겪는 여러 어려움이 깊이 배여 있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두려움, 언어가 다른 탓에 말이 통하지 않는 답답함, 혼자라는 외로움, 고향이나 멀리 있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 숀 탠은 초현실적인 이미지의 도시 풍경, 기괴한 모습의 동물, 익숙한 형태와 달라 기묘한 느낌을 주는 사물들, 해독할 수 없는 문자 등을 통해 모든 것이 낯선 이민자의 혼란스러움과 두려움을 탁월하게 묘사하고 있다.

  아내와 딸과 함께 찍은 가족사진을 천으로 감싸 가방 속에 소중하게 챙겨 넣는 남자가 있다. 셋은 함께 집을 나서지만 한 사람은 떠나고 두 사람은 뒤에 남는다. 낡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골목길마다 암울한 기운의 거대한 촉수가 드리워진 그 곳에 가족을 남겨두고 떠나는 가장의 마음은 어떠할까? 그가 난생 처음으로 본 도시의 풍경은 기묘하고 비현실적이다. 낯선 도시에서 길을 찾기 위해 지도를 들고 다니고, 몸짓과 그림으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소통을 시도하고, 자기 한 몸을 뉘일 작은 거처를 마련한다. 직장을 구해보려 하지만 자리를 구하기도 어렵고, 처음 하는 일이라 서툴러 실수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낯선 곳에도 인정과 친절이 있어 이방인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길을 안내해주는 사람,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이, 집으로 초대하여 함께 식사하며 외로움을 달래주는 가게 주인 가족, 친구를 소개해주는 동료 등등. 주인공의 아이는 지도를 들고 두리번거리는 여인에게 다가가 길을 알려주는 것으로 인정을 이어간다. 다양한 인종, 민족, 나라의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이 시대에,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해지기 위해서는 바로 이런 인정이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활짝 피어나야 할 것이다.

 정든 고향이나 나라를 떠나 다른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으로, 작가는 주인공이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이민 온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을 들려준다. 강제노역을 하다 탈출한 아가씨. 국경을 넘어 탈출하기 위해 소중한 물건을 주어야 했던 가게 주인.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싸우다 다리 한 쪽을 잃은 몸으로 돌아와 파괴된 고향을 목격해야 했던 노인...  책표지를 넘기면 증명사진-여권이나 증명서 같은 것에 붙이는- 같은 느낌을 주는 예순 명의 얼굴 그림이 실려 있는 면지가 눈길을 끄는데, 다양한 연령, 다양한 인종의 이들도 책 속의 인물들처럼 갖가지 사연을 가슴에 품고 이민을 결정했을 듯하다. 
- 첫번째 세로줄의 세번째 그림 속의 아이가 바로 숀 탠의 어릴 적 모습임.
: http://www.shauntan.net/about.html 사진 참조. 

 비현실적인 세계의 공간을 묘사한 듯한 도시 풍경도 독특하지만 시간의 흐름을 담은 그림들도 인상적이다. 주인공이 가족에게 편지를 붙이고 난 후 나뭇잎이 자라 꽃을 피우고, 씨앗을 날려 보내고, 열매를 맺고 잎이 점차 부스러져 내려 잎맥만 남는 그림을 순차적으로 담은 장면 속에 계절의 변화도 함께 하고 있다. 앞서 주인공이 고향을 떠나 배를 타고 가는 부분에 한 면에 걸쳐 다양한 형태의 구름낀 하늘을 담은 60개의 작은 그림도 주인공이 배를 타고 가는 동안 걸린 시간의 경과를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의 편지를 받은 아내와 딸이 도착하고, 비록 주변 사물들이 여전히 낯설게 느껴지긴 하지만 함께 식탁에 앉아 있는 가족들의 얼굴 표정은 초반의 모습과 달리 매우 밝다. 새로운 곳에서 진정한 의미의 '도착'를 이룬 가족의 모습이다. 책을 손에 들고 쓰다듬는 것을 좋아하는 편인데 담겨 있는 내용만큼이나 묵직한 느낌을 주는 이 책도 누군가를 보담아 주듯 품에 안고 자꾸 쓰다듬게 된다. 리뷰를 쓰는 동안 몇 번을 다시 봤지만 볼 때마다 미처 보지 못하고 놓친 부분들도 눈에 들어오고, 그 그림들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특히 책표지가 너무 근사하다! ) 볼로냐 라가치 특별상을 받은 작품.

*현재 출간되어 있는 그림책들
   
- 그 외 <살아있는 시체>라는 어린이 공포동화에도 그림을 그렸음. 

* 우리나라에는 아직 출간되지 않은 그림책
출처: http://www.shauntan.net/books.html

The Viewer Memor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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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torojjan 2008-03-18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정보력이 대단하신듯 합니다. 오랜만에 들어와서 잘 읽고 가네요 ^^

아영엄마 2008-03-19 22:26   좋아요 0 | URL
리뷰 쓸 때 이것 저것 찾아보는 편이어요. 아, 리뷰에 언급한 사이트는 책에 실려 있는 주소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