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 결혼 시키기
앤 패디먼 지음, 정영목 옮김 / 지호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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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30년동안 나는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이 하나가아니듯이 책을 사랑하는 방법도 하나가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그 청소부는 여인을 예의바르게 떠받드는 궁정식 사랑의 신봉자였다. 그녀에게는 책의 물리적 자아가 신성불가침이었으며, 그 형식은 내용과 분리될 수 없었다. 연인으로서 그녀의 의무는 순수하게 정신적인 사랑을 나누는 것이었다. 서점에서 막 들고 나온 완벽한 순결 상태를 영원히 보존하겠다는, 고귀하지만 실패할 수 밖에 없는 목표를 세운 셈이었다.-64쪽

"그렇게 하면 언제든지 즉시 원하는 데부터 읽을 수가 있잖아. 전자 제품에 비유하자면, 책갈피를 끼우고 책을 덮는 것은 '멈춤' 단추를 누르는 것이고, 책을 펼친 채로 엎어 놓는 것은 '일시 중지' 단추를 누르는 것이지." 고백하거니와 나는 되는 대로 읽던 곳 표시를 해 둔다. 때로는 책의 양명늘 쫙 펼쳐 놓기도 하고, 때로는 책의 귀퉁이를 접는 훨씬 더 극악한 죄를 짓기도 한다.-66쪽

물론 이 책을 읽는 독자 자신이 교열 강박감에 사로잡힌 사람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그런 버릇이 재채기처럼 피할 수 없는 반사 작용이라는 것을 알 테니까- 생각이 완전히 다를 것이다. 패디먼 집안 사람들은 아주 훌륭하고 공적인 정신이 투철한 사람들이로군!-118-119쪽

많은 글쟁이들이 알고 있듯이, 컴퓨터는 글을 고치는 면에서는 다른 것들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배치를 바꾸는 것이 너무 쉽기 때문에 이전 같으면 구식의 자르고 붙이는 노고와 폭력으로 인해 내 상상력으로부터 차단되어 보이지 않았을 구조적 결함도 금방 알아볼 수 있다. (중략) 옛날 같으면 그어 놓은 줄 밑에 그대로 남아 있을 말들이 지금은 보통 망각의 영역으로 들어가 버린다.(나는 퇴찌를 놓은 구절들을 화면 하단으로 옮겨두는 쪽을 택하는데, 그 구절들은 그곳에 있다가 쟁기 앞에 계속 나타나는 눈더미처럼 진행중인 텍스트 앞에 연신 고개를 내민다.)-133-134쪽

당신이 인용부호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당신이 일기에 옮겨 놓은 멋진 구절이 사실 플로베르가 쓴 것임을 "잊는다"면, 자신을 기만하여 언어의 로즈메리 잔가지 하나만 보태도 소유권이 이전된다고 믿는다면, 당신은 벤저민 디즈레일리가 내가 너보다 거룩하다는 태도로 이야기한 뮤여한 구절에서 표현한 대로, "다른 사람의 지성을 훔친 강도"가 된다.-148쪽

그러나 슬프게도 장인한 현실 때문에 환상에서 깨어날 수 밖에 없다. 조지 오웰은 1936년에 쓴 "서점 추억"이라는 에세이에서 헌책방에서 점원으로 일하던 시절을 회상한다. 근무 시간은 길고, 가게는 매우 추웠으며, 책꽂이에는 죽은 청파리가 여기저기 널려 있고, 손님 대부분은 미치광이였다. 그 가운데도 최악은 책에서 점차 매력을 잃게 된다는 점이었다. "정말로 책을 사랑하던 때가 있다. 책이 쉰 살을 넘기만 하면 그 모습과 냄새와 촉감이 무척 좋았다. 시골 경매장에서 1실링을 주고 책을 떨이로 사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은 없었다. 그러나 책방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부터 책을 사지 않게 되었다. 책을 한 번에 5천 권이나 만 권씩 덩어리로 보게 되자, 책이 지겨워지고 심지어 약간 역겨워지기도 했다."-2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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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20 19: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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