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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고니의 하늘
테지마 케이자부로오 글.그림, 엄혜숙 옮김 / 창비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병든 자식을 두고 떠나야 하는 큰고니 가족 이야기 속에 계절에 따라 먼 곳으로 이동해야 하는 철새의 생태가 담겨 있는 그림책. 큰 고니의 가족애와 아픈 탓에 함께 북쪽나라로 떠나지 못하는 새끼를 두고 떠나야 하는 슬픔을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큰고니들이 호수에 무리 지어 있는 모습이나 힘차게 비상하는 모습 등을 표현한 판화 그림이 인상적으로, 화려한 색감은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런 부분이 백색의 큰고니의 모습을 더 두드러지게 해주며 판화의 매력을 한껏 발산하는 그림책이다.
표지에서부터 판화의 굵은 선으로도 자연의 풍광과 새들의 모습을 잘 묘사해 놓은 점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차가운 겨울의 느낌을 풍기는 옅은 푸른색, 황혼으로 물든 주황색 하늘, 밤이 깃든 호수의 물결에 일렁이는 노란 달빛 등 색감도 적절하게 사용하여 본문과 잘 어우러지고 있다. 학교에서 판화를 만들어 본 적이 있는 큰 아이는 조각칼로 선 하나하나를 파내야 하는 어려움을 직접 경험해 봐서인지 이 책의 그림이 판화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니 그 섬세함에 놀라워하였다.
홋까이도오 호수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멀고 먼 북쪽나라에서 날아온 큰고니 무리들. 봄이 가까워지자 산에 쌓인 눈도 반짝반짝 빛이 나고,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날아 오른 큰고니들의 하얀 날개도 반짝거린다. 오래 전 철새들이 한꺼번에 날아오르는 장관을 지켜본 적이 있다. 힘찬 날갯짓으로 물을 차오르며 비상하는 모습. 나름의 질서에 따라 열을 지어 나는 무리들이 일사 분란하게 방향을 틀어 이쪽저쪽으로 비행하는 모습은 자연에서나 볼 수 있는 장엄한 아름다움이었다.
겨울을 난 철새들은 때가 되면 다시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귀향길은 머나먼 항로이기에 목적지까지 도착할 수 있는 강인한 체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아이가 병이 나서 날 수가 없는 탓에 아직 출발하지 못한 큰고니 식구가 있다. 아이가 건강을 찾을 때까지 북쪽으로 가는 것을 미루지만 점점 나빠져만 가는 아이... 결국 아빠는 병든 아이를 두고 떠나는 것을 선택한다. 한 마리쯤은 남아서 아픈 아이를 돌볼 법도 한데 그리하지 않는다. 냉정한 결정이지만 다른 가족들의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왜 꼭 떠나야 하는 건지, 그럼 혼자 남은 아이는 어떻게 하느냐는 아이의 질문에 어떤 말로 큰고니 가족의 이별에 대한 근거를 설명해줄 지 난감해진다. 나 또한 이들이 그럴 수밖에 없고, 그래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 선택에 순응하는 가족이 야속하고 슬픈 것을... 그러나 인간의 기준으로 그들을 잔인하다 매도할 수 없지 않겠는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이는 숨을 거둔다. 회복하여 함께 떠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가없이 슬펐으나 가족이 있어 외롭지 않은 죽음이었음에 위안을 얻는다. 애도하듯이 고개를 숙인 큰고니 가족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잔잔하게 일렁이는 호수의 달빛처럼 슬픔도 잔잔하게 잦아든다.
다음날부터 밤낮없이 쉬지 않고 날아간 큰고니 가족은 마침내 북쪽 나라에 도착한다. 함께 오지 못한 아이는 그 곳에서 광활한 북극 하늘을 가득 메운 오로라처럼, 따뜻한 봄 햇살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을 드러낸다. 이별도, 죽음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는 이 책처럼 자연은 한 생명을 자신의 품 안으로 되돌리고 또 다른 생명을 잉태시키며 말없이 새로운 여정을 준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