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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 단편집 - 스켈레톤 크루 - 하 ㅣ 밀리언셀러 클럽 43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5월
평점 :
어린 시절 무서워 할 걸 뻔히 알면서도 "전설의 고향"을 보기 위해 TV앞에 모여 앉아 미리 준비한 이불을 뒤집어쓰고, 그것도 모자라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까지 열심히 보았던 것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다. 꿈에 볼까 두렵고 무섭지만 실눈을 뜨고서라도 살짝 엿보고 싶은 마음. 개인적인 차이는 있겠지만 사람들에게 공포를 즐기는 심리가 있기 때문에 공포(호러) 영화가 만들어지고 공포 소설이 출간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럼 머리끝이 쭈뼛쭈뼛 서고 무엇인가가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듯한 느낌과 함께 찾아오는 공포의 근원은 과연 무엇일까? 공포는 어디에서 오는 것이고 그 실체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살아오면서 쌓여 온 고정관념과 상식들로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대할 때 심리적인 충격과 공포가 찾아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므로 작가는 사람들의 뇌리에 박힌 인식으로는 납득하지 못할 것들로 독자에게 공포를 선사하는 것이다.
스티븐 킹의 단편집인 <스켈레톤 크루>에서는 비정상적으로 커진 동물이나 곤충들, 기다란 촉수, 체액을 빨아먹는 괴물, 죽음을 몰고 다니는 인형이나 사람 등등을 만날 수 있다. 상권의 첫 번째 작품 <안개>는 중편에 가까운 분량으로 죽음을 내포한 안개에 둘려 싸인 폐쇄된 공간에 갇힌 인간들이 드러내는 절망과 광기를 그린 작품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기에 일어날리 없는 일들이 눈앞에서 벌어질 때 인간은 당황하고, 공포를 느끼고, 서서히 이성을 잃어간다.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절망적인 상황은 이성보다 본능을 자극하게 되는데 어떤 이는 현실을 회피하기 위해 술을 마시고, 부부관계가 아닌 사람과 성관계를 맺기도 한다.
자신의 존재를 미약하게 만드는 거대한 존재를 앞에 두고 느끼는 본능적인 공포보다는 타인을 재물로 하여 자신들의 목숨을 보전하려 하는 광기에 물든 사람들이 주는 공포가 더 끔찍하게 여겨진다. 저자의 작품 중 <토미노커>란 책에 주인공이 반핵주의자로 나오는데 그 작품을 읽으면서 스티븐 킹이 핵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가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안개>에서도 소문으로 들리는 이야기일 뿐이지만 정부의 주도로 은밀하게 진행되는 프로젝트로 인해 안개를 생겨난 것이라는 배경이 깔려 있다. 인간의 무모한 실험이나 계획이 인류를 위협하는 불행한 사태를 초래할 수 있음을 계속 경고하고 있는 것 같다.
<신들의 워드프로세서>는 상당히 매력적인 단편으로 인생이 바뀌길 바라는 마음으로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기계 앞에서 절박한 심정으로 자판을 두드리고 버튼을 누르는 주인공의 심리가 잘 표현된 작품이다. 내가 만약 그런 기계를 가지고 있다면 과연 내 인생의 어떤 부분(또는 사람)을 사라지게 만들거나 바꿀 수 있을지 생각해 보게 하고 있다. <고무 탄환의 발라드>는 화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중심인물이 작가여서 그런지 혹 스티븐 킹 자신이 타자기에 무엇인가 살고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어서 그 경험을 바탕으로 씌어진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 상상이거나 말거나 요정을 등장시킨 작품치고는 결말이 비극적이어서 역시 스티븐 킹은 동화작가가 아닌 공포소설 작가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단편 중에 신화 속의 인물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 있었는데 우선<악수하지 않는 남자>는 만지는 것은 무엇이든 금으로 변하게 한 미다스 왕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으로, 악수를 하는 대상은-동물도 포함해서- 곧 죽음을 맞이한다고 여기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서바이버 타입>은 신에게 바쳐진 나무들을 벤 벌을 받아 채워지지 않는 굶주림으로 자기 자신마저 먹어치워 버린 신화 속의 인물 ''에리식톤''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배가 난파되어 무인도에 갇힌 한 남자가 드러내는 살고자 하는 본능을 극명하게 드러낸 작품이다. 생존 본능만큼이나 본능적인 욕구가 식욕으로, 인간도 살기 위해서 무엇이든 먹어야 하는데 음식을 구할 수 없을 때 과연 무엇으로 극에 치달은 허기를 면할 수 있을까? 과연 내가 그런 상황에 쳐했다면 살기 위해 그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하고 상상을 해보다 소름이 돋고 만다.
이번 단편집에 실린 작품들 중 그다지 흡족하지 않는(<결혼 축하 연주>, <오웬을 위하여> 같이 조금은 생뚱맞은) 글도 있었고, 공포물에 속하지 않는 단편(<토드 부인의 지름길>, <리치>)도 있었다. 그렇지만 <안개>나 <원숭이>, <할머니>, <뗏목>처럼 서서히 목을 조여드는 공포가 한밤에 찾아드는 적막감과 어우러져 바깥에서 불어오는 한줄기 서늘한 바람과 함께 온 몸에 소름이 돋아 오르게 만드는 작품들도 만날 수 있었다. 작품의 편차가 있긴 해도 그 이름만으로도 관심이 가게 하는 작가, 스티븐 킹의 작품이니만치 그의 매니아를 자처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은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