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쉽 - 잠들어 있는 내 안의 검은 양을 일깨워라
브랜트 멘스워 지음, 최이현 옮김 / 필름(Feelm)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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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쉽

브랜트 멘스워 (지음) | 최이현 (옮김) | 필름 (펴냄)

목적을 이룰 수 있다고 해서 우리가 그 목적을 뚜렷이 자각하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블랙 쉽> 본문 75페이지

"바쁘다 바빠"를 입에 달고 살면서 그 바쁨의 목적을 알고나 달려나가고 있는 걸까? 잠시 숨고르듯 쉬어갈 때,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때, 건강상의 이유로 원치 않는 멈춤을 할 때 갑자기 목적을 잃은 듯 허전하고 혼란스럽지 않은 이는 얼마나 될까?

다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든지, 어떤 영향을 주려 하든 상관없이, 절대 변하거나 물들지 않는 핵심 가치를 가지고 있는 이는 또 얼마나 될까? 융통성 없는 아집과 불통들과 혼동해서는 안된다. 중심없는 흔들림으로 팔랑거리는 나팔귀를 소통이라고 하지 않듯이 말이다.

흔히들 바쁘게 질주하는 삶을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정말 그 목적을 뚜렷이 자각하고 있을까? 그렇다면 목적을 이루고 난 뒤 느끼는 헛헛함의 이유는 무엇일까? 목적이라고 착각해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목적을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만큼이나 목적없이 사는 사람들도 있다. 하루하루 사는게 바빠서 그렇다고도 하고, 이루고 싶은 것이 많아서 라고도 한다.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도 몰라 그 막연함에 무엇을 찾아봐야 하는지 혼란스러운 사람들도 있다. 이런 모습이 스스로 수치스러워 진짜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자신이 바라는 모습을 실제 자신의 모습인 양 꾸며내 허세를 부리기도 한다. 꿈을 꾸는 것과 허세는 다르다. 허세를 믿는 순간 리플리 증후군과 달라질 게 없다.

자신만의 대체불가한 중심가치를 가지고 목적을 향하는 여로는 과정도 빛난다. 그러나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만큼 간과할 수 없는 한가지는 바로 누구와 함께 하느냐일 것이다.

※출판사의 지원도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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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다의 발톱, 캐나다에 침투한 중국 공산당 미디어워치 세계 자유·보수의 소리 총서 4
조너선 맨소프 지음, 김동규 옮김 / 미디어워치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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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다의 발톱, 캐나다에 침투한 중국 공산당

조너선 맨소프 (지음) | 김동규 (옮김) | 미디어워치 (펴냄)

중국은 우호적인 외교를 맺고 싶은 국가에 한 쌍의 판다를 선물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철저하게 국가차원에서 관리하는 판다는 국가간 선물이 아니라면 (이제는 기증과 선물도 금지되어 임대만 가능하다고 한다)중국 이외의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동물이다. 눈에 선글라스를 낀 것 같은 귀여운 얼굴의 판다는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으며 판다외교라 불리울 만큼 외교 사절의 큰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판다의 발톱이라니...? 귀여운 외모와 상반되는 발톱이라는 상징성은 경제 대국으로 급부상 중인 중국의 속내를 빗대어 겨냥하고 있다.

우호적인 관계를 말할때 흔히 '친구'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이 누군가에게 '중국의 친구'라고 얘기할 때는 그 의도를 의심해 보아야 한다. 이들이 얘기하는 친구는 일종의 직무 기술이기 때문이다. 순수한 의도가 아니라 중국의 이익에 이용하고 그 기대에 부합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큰 손해마저 보게 만든다.

사탕나무 수액으로 만든 메이플시럽은 캐나다의 대표 상품이기도 하다.

판다와 메이플시럽. 이 귀여운 동물과 달달한 시럽을 품은 두 나라의 속사정은 생각보다 끔찍하고 씁쓸하기 이루말할 수 없다. 선교를 위해 중국으로 향했던 캐나다인 선교사들은 중국인들을 개종시킬 수 있다는 꿈을 안고 건너갔다. 순진했다고 해야할까, 오만했다고 해야할까? 의식 깊은 곳에서는 아마도 그들보다는 자신들이 더 낫다는 우월의식이 중국을 얕잡아보는 마음도 없진 않았을 것이다. 결과는 캐나다인 선교사들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세대를 거치며 현지화된 선교사의 자녀들이 오히려 장제스와 마오쩌둥 사이에서 이용당하는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돈으로 포섭한 중공의 비밀공작원들의 활동은 중공과 다른 나라와의 외교관계 수립에도 영향을 미쳤다. 마오쩌둥은 미국과 동맹관계인 캐나다과 외교관계를 수립하며 미국의 뒷마당에 친구가 생겼다고 말했다고 한다. 친구, 중국의 친구. 그들이 얘기하는 친구는 일종의 직무기술이라는 것과 연결해서 생각해본다면 중국의 입장에서는 도랑치고 가재잡는 일타이피의 성공이었을 것이다. 국제 관계에서는 이상과 현실의 차이가 고스란히 꿈꾼자의 피해로 돌아온다.

홍콩의 영국령이 끝나고 중국으로 반환되었을 때, 홍콩에 거주하던 많은 중국인들은 캐나다로 이주했다. 어찌보면 분할된 조국이 합쳐지는 일인데 많은 이들이 도피하듯 홍콩을 떠났다. 캐나다에서는 이 홍콩 이민자들을 유치하기 위해 꽤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 과정에서 부패가 만연했고, 중국 본토에서 보기엔 뇌물을 써서라도 홍콩을 떠나려는 사람들이 탐탁치 않았을 것이다.

중화사상이 골수 깊이 각인된 중국과의 관계는 캐나다 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도 쉽지 않다. 캐나다처럼 선교사 마인드나 편향된 시각으로는 원하는 관계가 어렵다. 관계를 맺는 것보다 그 관계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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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스윙 - 나 홀로 사회인가 우리 함께 사회인가
로버트 D. 퍼트넘.셰일린 롬니 가렛 지음, 이종인 옮김 / 페이퍼로드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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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스윙

로버트 D 퍼트넘, 셰일린 롬니 가렛 (지음) | 이종인 (옮김) | 페이퍼로드 (펴냄)

우리는 전체적으로 또 장기적인 관점에서 상승할 때든, 하락할 때든, 반드시 함께 가야만 한다.

업스윙 본문 505페이지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현재에 이르기까지 본다면 분명 업스윙을 해온 역사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란 말이 있듯이 인류의 역사도 전체적으로 보면 업스윙만 해 온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러 장애와 후퇴도 있어왔다. 나아가기 위한 숨고르기와 후퇴도 있겠지만 개인과 집단의 이익과 이기심을 위한 퇴보도 있었다. 사회라는 거대한 집단의 일원으로 살아가며 숱하게 듣는 권리와 책임, 어떤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순 없겠지만 시대와 상황에 따라 우선 순위는 변하기도 했다. 개인이 공동체보다 우선시 될때는 권리가, 공동체가 더 중요시 될때는 책임이 강조되었다. 요즘은 너나없이 권리를 주장하며 권리가 아닌 것에도 권리를 부르짖고 책임은 다하지 않는 모순적인 행태를 보이는 이들도 있다.

'나'라는 개인이 '우리'라는 공동체에 속하게 되면 우리의 발전을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 경우가 생긴다. 살신성인하는 모범적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내가 속한 집단을 위해 너가 속한 집단의 희생을 강제로 제물삼는 경우가 허다하다. 눈물과 피로 쓰여진 여성과 유색인종의 차별과 핍박의 역사가 그러했다. 교육의 기회를 균등하게 제공받지 못했고 삶의 터전도 자의보다는 타의에 의해 결정되었다. 아직도 남녀평등과 인종차별철폐를 외치는 곳이 많다. 노동현장에서도 이러한 현실을 마주하기는 어렵지 않다. 같은 강도의 노동을 하고도 임금은 백인 성인 남자에 미치지 못하는 유색인종과 여성, 아동들이 있다. 이들의 인권을 위해 노동조합이 결성되고 페미니스트 세대가 여성 참정 운동을 해왔다. (페미니즘이 요근래 많이 변질된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도 있다)

사회 전반적인 분야에서 개인보다 우리일때 발전하고 도약하는 업스윙의 곡선을 그려왔다. 그렇게 이루어낸 발전은 물질적 풍요를 가져왔고, 물질의 풍요는 젊은 세대로 하여금 자아실현으로 나아가도륵 이끌었다. 이제 다시 '나'를 주목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나 - 우리 - 나"로 이어지는 변화의 바람은 대중문화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 책에서는 미국의 경우만을 그 예로 들고 있지만 우리나라를 대입해 보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흐름이었다. 대중문화를 통한 흐름도 그렇지만 '나'에서 '우리'로 이어지는 역사적인 사건들에서도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연상되며 수긍하게 되는 지점들이 있었다. 산업현장의 일꾼이라며 작게는 가정 크게는 나라를 위해 희생한 수많은 '나'들. 분명히 '나'일때 보다 '우리'일때 업스윙을 해온 것은 맞지만 '우리'를 구성하고 있는 그 수많은 '나'를 등한시하고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너희'들의 희생을 담보로 한 '우리'의 업스윙이 아닌 모두가 함께 가는 업스윙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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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인생 열린책들 세계문학 275
카렐 차페크 지음, 송순섭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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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인생

카렐 차페크 (지음) | 송순섭 (옮김) | 열린책들 (펴냄)

평범하게 사는 것이 소원이던 때가 있었다.

'남들은 평범하게 모나지 않게 잘들 살아가는데 왜 나는 겪지 않아도 될 일들을 겪으며 살아야 하나' 하고.

그러나 이제는 안다.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에는 내 삶도 평범하기 이를데 없는 인생이라는 것을.

인생이라는 열차에 탑승한 자신에게는 롤러코스터지만 타인에게는 순환열차일 뿐이라는 것을.

서로 일면식도 없는 나의 지인들이 어쩌다 통성명을 하며 알게 되는 수가 있다. 공통 화제로 나에 대해 얘기하며 깜짝깜짝 놀라는 경우를 가끔 보게 된다. 자신이 알고 있는 나와 상대가 말하는 내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는 결코 가식적으로 대하지 않았는데 상황과 시기에 따라 보여지는 나의 모습이 달랐던가 보다. 돌아보면 십대, 이십대, 삼십대, 사십대의 내가 다른 모습이긴 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나에게 얹혀지는 역할과 이름도 하나씩 늘어갔다. '나'라는 기둥에 딸이라는 위치와 학생이라는 신분이 전부였던 십대에서 직장인이라는 역할이 더해졌던 이십대,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아내와 며느리, 엄마라는 의무와 책임이 한꺼번에 늘어났던 삼십대를 지나 부모에서 학부모로 기능의 변환도 필요했던 사십대를 거치고 있다. 상황과 위기에 따라 대처하는 처세들은 성격의 변화를 이끌어 냈다. 아니, 그랬다고 생각해왔다.

카렐 차페크의 <평범한 인생>에 등장하는 철도 공무원의 일기는 그의 삶에 비추어 내 삶도 돌아보게 했다.

죽음이 가까워 옴을 느낀 그는 자신이 살아온 날들을 일기로 남기며 그 인생을 살아온 자신의 인격들을 구분해낸다.

소목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의 기대 속에 공부 잘 하는 아들이었던 그는 아버지의 기대를 채워주지 못하고 반항심에 취직을 했다. 계획했던 직업은 아니었지만 그 곳에서의 인연으로 결혼도 하고 아내의 내조를 받으며 승진도 하는 등 평범한 인생을 산다. 평범한 인생을 살아온 행복한 사람이었으며, 출세를 위해 몸부림치던 억척이이기도 했고, 우울증 환자이기도 했다. 전쟁이 있던 시기에는 영웅의 모습도 비춰지고, 시를 쓰는 낭만가적인 시절의 그도 있었다. 순간 영화 아이덴티티가 떠올랐지만 영화 속에 등장하는 각각의 인격과는 매우 다르다. 영화 속 인격들은 약육강식처럼 다른 인격 위에 군림하는 모습이지만 '카렐 차페크'의 <평범한 인생>에서 철도 공무원이 구분해 낸 8개의 인격은 경쟁자라기 보다는 상호보완적이면서도 각자의 영역을 넘지는 않는다.

"성격은 변하지만 기질은 변하지 않는다"던 어느 심리학자의 말이 생각난다. 평범하게 살기를 소망하면서도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나를 보호하기 위해 새로운 인격을 만들어 대처해나가며 살아가는 게 아닐까. 타인이 보는 나의 모습이 각기 다를지라도 나는 나 이듯이 평범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여러 인격들이 고군분투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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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전 시집‘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양장) - 서거 77주년, 탄생 105주년 기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뉴 에디션
윤동주 지음, 윤동주 100년 포럼 엮음 / 스타북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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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전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윤동주 (지음) | 스타북스 (펴냄)

'시'는 언어의 함축적 마술이다.

아무리 길게 늘여쓰고 설명을 붙여보아도 다 담지 못하는 마음을 가슴으로 읽게 하는 힘이 있다. 사람을 이성보다는 감성적으로 만들고 지나치는 사물이나 사소함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시상을 떠올리고 옷자락을 스치는 바람에 센티멘탈해지기도 한다.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의인화하기도 하고 별에도 의미를 담아 시를 짓게 한다. '시'하면 이토록 감성적인 사랑의 언어를 떠올리기 쉽지만 조용조용한 혼잣말의 뉘앙스로 고민과 번뇌, 자책과 양심을 호소하며 저항의 시를 쓴 이도 있다. 학창시절 저항시인이라고 배운 윤동주처럼.

겉멋이 들어 시를 외우고 시험에 나오니 시를 분석하던 시기를 지나고 보니 소설과 에세이는 꾸준히 읽어왔음에도 시는 그렇지를 못했다. 모든 문학은 작가의 의도가 있지만 특히 시는 작가의 의중을 헤아리기 더더욱 어렵거나 함축적으로 축약된 절제된 표현들은 핵폭탄을 도시락에 담아 놓은 것처럼 가슴에서 터지는 폭발력이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주요 시험에 출제되는 지문으로써가 아니라 빼앗긴 조국을 위해 무엇을 어찌 적극적으로 해볼 수 없는 한 젊은 이의 고통에 찬 번민이 비명처럼 한 행 한 행에 스며있었다. 이 단어가 이렇게 깊은 단어였나, 이 행이 이렇게 아픈 행이었나, 이 시를 왜 이제서야 이렇게 읽을 수 있게 된 것일까..

지금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이란 제목으로 알려진 윤동주 님의 시집의 원제목은 "병원"이었다고 한다. 일제 치하의 서러운 조국의 동포들 처지가 아픈 환자 같았을까.

그의 대표 시 서시, 자화상, 별 헤는 밤 등을 시작으로 교과서 밖에서는 쉽게 접해보기 어려운 다른 시들과 산문들까지 뜻깊게 곱씹어 읽어보았다. 그가 느꼈을 아픔을 다 헤아릴 수 없지만 그 아픔의 흔적인 시들만 읽어 보아도 윤동주가 느꼈을 자책이 내게는 송구스러움과 감사함, 연민이 버무려진 복잡한 심경이 되었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쉽게 씌여진 시> 중에서

피를 토하는 심경으로 써내려갔을 시를 이렇게 쉽게 읽어도 되는걸까.

한국의 문화가 춤, 노래, 영화, 드라마 등 여러 형태로 세계로 뻗어나가는 요즘이다. 문학으로는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백희나 작가의 구름빵이 인정받았다. 언어의 운율이 중요시 되는 시는 번역이라는 과정을 거치면 운율의 미학이 사라지고 만다. 영시가 한국어로 번역되어도, 한국의 시가 영어로 번역되어도 마찬가지다. 윤동주 님의 시를 영어로 옮겨 놓으면 마치 시 속의 영혼은 사라지고 마는 느낌이랄까. 많은 사람들이 알고 읽고 느끼기를 바라지만 시의 본질, 그가 시 속에 녹여낸 마음만은 바래지지 않기를 바래본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별 헤는 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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