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내는 용기 - 불합리한 세상에 대처하는 철학자 기시미 이치로의 가르침
기시미 이치로 지음, 김윤경 옮김 / 타인의사유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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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내는 용기

기시미 이치로 (지음) | 김윤경 (옮김) | 타인의사유 (펴냄)

지금 우리에겐 지성적인 분노가 필요하다!

-<화내는 용기> 표지글에서

몇 해전 오프라인 독서모임에서 <미움받을 용기>를 접해 감명깊게 읽었었다.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받을 용기>를 통해 아들러 심리학을 알게 되었고, 이후 얼마간 아들러 심리학에 관한 책들을 연달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제목도 비슷한 <화내는 용기>가 친근하게 다가왔는지 모르겠다.

화내는 용기. 그래, 화를 내는데 용기가 필요하지. 참고 참고 또 참아 홧병이 나고 스트레스가 극에 달아 공황장애도 생긴다. 그런데도 화를 낸 후에 감당해야 할 현실적인 일들이 눈앞을 스쳐 또 다시 이런저런 이유로 많은 것을 참고 또 참는다. 무엇이 그토록 화가 나도록 만드는 것일까? 기시미 이치로는 '불합리한 일'을 그 원인이라고 말한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나 세월호 침몰 등과 같은 대형 사고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던 이유도 따지고보면 불합리한 일들 때문이었다. 부정부패와 비리로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고가 일어나고, 사후 대책과 수습에서도 정말 책임져야 할 사람은 빠져나가고 꼬리자르기만 하는 관행도 모두 불합리한 일들이었다.

부당한 일을 당하거나 목격했을 때, 분위기에 휩쓸려 침묵하는 방관자가 되거나 압력에 굴복하는 비겁자가 되기도 한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 염려해서 '나'를 낮추고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오히려 '남의 시선을 신경쓰는 나가 너무 많아서'라는 대목에서는 완전 허를 찔린 느낌이다.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일을 '선'이라고 생각한다는 대목도 마찬가지다. 타인이 볼때는 이기심이지만 자신에게는 '선'인 것이다. 악을 추구하고 악을 원해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이익을 쫒다보니 그리되었다는 것이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먼저 챙기다보니 생기는 불합리한 일들. 인위적인 분위기를 이용해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분위기나 대화를 끌어오기도 한다. 결국 불합리한 일들은 모두 사람이 만든 것이다. 약자끼리 분쟁을 하도록 만들어 분열을 조장해 엉뚱한 곳으로 눈을 돌려버리는 속임수도 익숙하다. 그러나 그런 속임수와 거짓말에 길들여져가고 있는 듯한 느낌은 정말 느낌 뿐인걸까.

"진정한 분노는 감정이라기보다 지성에 속한다"는 말에 잠시 호흡을 가다듬어 본다. 불합리한 현실을 맞닥뜨렸을 때 감정에 휩쓸려 마구잡이식 화를 내기보다는 지성적인 분노를 표출해 이성적인 대화로 문제 해결을 해야한다고 기시미 이치로는 말한다.

씁쓸하다. 서로가 추구하는 선악이 다른데 대화하는 서로의 언어가 같을까? 그러나 포기할 수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절망하기 보다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봐야 한다. 어쩌면 그것은 화내는 용기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일지 모른다. 세상을 바꿔 가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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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분 이해하는 사이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김주원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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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선정작] 십분 이해하는 사이

김주원 (지음) | 교유서가 (펴냄)

마이너한 존재들이 서로에게 건네는 지극한 위로

-[경기문화재단 선정작] 십분 이해하는 사이 표지글 중에서

김은숙 작가님의 드라마 "더 글로리"가 폭발적인 인기다.

주조연 할 것 없는 모든 배우들의 열연과 탄탄한 대본의 힘도 크겠지만 학교폭력이라는 주제가 남다르게 다가1오는 이유도 클 것이다.

'맞은 놈은 발 뻗고 자고 때린 놈은 오그리고 잔다'는 말도 옛말이 된지 오래다. '무전유죄 유전무죄'는 아이들의 세계에서도 다르지 않다. 학교 폭력에 시달리다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했던 어느 집 귀한 아이가 옥상에 오르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쪼그려앉아 울던 뉴스 속 cctv의 장면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떠나는 마지막 그 길이 얼마나 외롭고 슬펐을까?

자살과 범죄, 선택한 죽음과 피하고 싶은 타의에 의한 죽음. 어찌되었든 제3자의 입장에서는 피하고 싶은 일이지만 언제나 타인의 얘기이기만 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십분 이해하는 사이>에서 이름도 모르는 두 아이가 농담섞어 나누는 대화는 시덥잖은 소리처럼 들리지만 벌어진 상황을 안다면 농담으로만 가볍게 넘길 수 없다. 주인을 잃은 신발 구멍과 진실을 알면서도 모른척 되풀이하는 마지막. 열일곱 번을 반복하고 나서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던...<우주맨의 우주맨에 의한 우주맨을 위한 자기소개서>에서 처럼 비극에 대처하는 방법이 비현실적인 것들의 도움없이 이뤄진다면 좋겠지만 삼촌 세종 씨가 조카 한솔을 위해서 했던 행동들은 영웅에 다름없다.

내가 없는 세상과 나를 모르는 세상. 그래도 세상은 돌아가고 또 다른 수많은 '나'는 세상을 살아간다. 생각지도 못했다가 마주하게 된 반전에 다시 읽은 <십분 이해하는 사이>는 처음은 재미를 두번째는 숙연함을 주었다. 타인에 대한 이해와 나에 대한 이해, 그 차이는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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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세기가 지나도 싱싱했다 : 오늘의 시인 13인 앤솔러지 시집 - 교유서가 시인선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공광규 외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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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선정작] 몇 세기가 지나도 싱싱했다

오늘의 시인 13인 앤솔러지 시집 | 교유서가 (펴냄)

싱싱한 언어, 빛나는 정점!

기억의 적층을 투과한 섬광의 순간들

-[경기문화재단 선정작] 몇 세기가 지나도 싱싱했다. 표지글에서

작가의 메세지나 생각을 독자에게 전하는데 있어 활자가 되어 나오는 글자의 수가 많다고 고뇌가 긴 것도 아니요, 반대로 글자수가 적다고 해서 창작의 고통이 작은 것은 아닐테다.

시라는 문학이 가지는 힘은 함축되다 못해 압축된 언어의 결정체가 그 진가를 알아주는 이를 만날때 더 찬란한 빛을 발한다. 시의 소재도 개인적인 경험이나 역사적인 사실과 상상력, 일상의 사물이나 사회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른 장르의 문학과 예술처럼 다양하다.

현대시의 형태는 학창시절 배웠던 시의 운율과 구조에서 많이 자유로워진 모습을 가졌다. <몇 세기가 지나도 싱싱했다>의 마지막 수록 시인 조성국 님의 차례에는 유일하게 '시조'로 표기되어 가장 먼저 펼쳐보게 되는 호기심을 이끌었다. 시조하면 정몽주와 이방원이 주고 받았다던 '하여가'와 '단심가'가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떠오르는 사람이 나 뿐은 아니겠지? 조성국 님의 시조는 정형화된 형식에서 많이 탈피한 모습이다.

시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사랑을 떠올리던 사춘기 소녀는 이제 한글을 배워 삐뚤빼뚤한 손글씨로 자신의 삶을 꾹꾹 눌러쓴 어느 할머니의 시에 눈물짓는 나이가 되었다.

작가의 독백이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읽는 이 모두가 자신의 독백처럼 들리는 것은 단어와 단어 사이, 행과 행 사이에 숨은 인생의 쓴 맛을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맛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글자로 표현된 것보다 여백에서 주는 사색의 언어가 더 깊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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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산부 로봇이 낳아드립니다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정은영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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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선정작] 임산부 로봇이 낳아드립니다

정은영 (지음) | 교유서가 (펴냄)

-일기장의 첫 장을 잘 못 썼다면? 일기를 새로 쓰고 싶다면?

[경기문화재단 선정작] 임산부 로봇이 낳아드립니다. 본문 51페이지

<임산부 로봇이 낳아드립니다>, <소년과 소년> 두 단편이 주는 감상은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대리모 출산과 입양아를 두고 모성애를 논할때 낳은정과 기른정 중 어느 사랑에 더 무게를 두어야 하는가에 뜨거운 여론이 있던 때가 있었다. 어느 사랑이 더 무겁고 깊이 있는가 보다는 그 사랑을 하는 주체의 모성이 얼마나 진정성이 있는지를 더 눈여겨볼 일이다. 튀르키예의 지진에서 탯줄을 달고 살아남은 아이의 엄마와 선천적인 질병을 가진 아이를 입양하여 헌신하며 기른 엄마의 모성을 두고 감히 비교할 수 없으니.

<임산부 로봇이 낳아드립니다>의 로봇 헐스의 삭제된 강제 유산의 기억은 모성을 지우지 못하고 체제를 붕괴시킬 정도의 버그를 일으켰으니 아이의 장애가 모성을 포기하게 만드는 장애는 되지 못한다. 그러나 <소년과 소년>의 선호의 아빠가 보이는 부성애는 다르다. 선호에게 일어난 사고를 계기로 행해지는 두 번의 뇌이식은 선호의 정신과 육체를 모두 빼앗는 결과를 가져온다. 일탈만을 해온 아들이 '새로 쓰는 일기', '첫 장을 잘 못 쓴 일기'에 다름없을 뿐이다.

장애를 지녔다고 해서 삭제되고 대체되는 일들이 행해진다면 진짜 장애는 누가 가진 것일까? 과학의 발전이 언제나 눈부시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 눈부심에 눈이 멀지 않도록 옅어지는 인간성을 놓치지 말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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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라이터
앨러산드라 토레 지음, 김진희 옮김 / 미래지향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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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라이터

앨러산드라 토레 (지음) | 김진희 (옮김) | 미래지향 (펴냄)

거짓말을 많이 하면 진실을 말했을 때 아무도 그 말을 믿어주지 않게 된다.

-<고스트 라이터> 본문 82페이지

평소 착하게 살아온 것도 아니면서, 오히려 주위에 민폐가 되고 범죄를 저질러 온 사람들이 죽음을 코앞에 두고 갑자기 죄를 뉘우치며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일을 보고 듣게 되는 일이 있다. 다른 사람의 가슴에는 지워지지 않을 상처와 고통을 남겼으면서 정작 자신은 그 죄를 몇 마디 반성의 말과 몇 방울 참회의 눈물로 모두 지워버리고 가벼워지려는 듯이.

유족과 피해자들은 용서하지 않았는데 스스로를 용서하고 신에게 용서받았다며 처음부터 죄를 짓지 않았던 것처럼 행동하는 모습에 피해자의 상처는 아물기는 커녕 곪고 썩어들어간다.

뇌종양으로 3개월 시한부를 선고받은 헬레나 로스가 마지막 소설에 범죄의 고백을 담으려는 의도 또한 그러한 것이지 않을까란 생각에 이 까칠한 여자에게 조금도 정이나 연민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가 비밀을 꺼내놓기 전까지는.

로맨스 소설의 여왕으로 불리며 연이은 흥행 성공으로 명성과 부를 가졌으나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는 여자, 헬레나 로스. 그녀는 다정한 남편과 사랑스러운 딸을 가진 여자이지만 사랑하는 법도 누릴 줄도 몰랐던 여자이기도 했다. 그러나 딸의 안전을 위해 살인도 불사하는 그녀는 그저 '엄마'였다.

헬레나의 죄책감은 자신이 저지른 범죄 '살인'으로 인한 것이 아니다. 녹화된 비디오 테이프에 적힌 이름들을 침묵하고, 베서니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다.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왜 죄를 지은 자가 아니라 양심을 가진 자여야만 하는걸까? 헬레나의 신경질적인 까칠함과 예민함이 죄책감과 자기혐오에서 나온 행동이었다니 스스로를 벌주는 시간에 외롭고 괴로웠을 그녀가 가엽다.

그녀의 마지막에 그녀를 이해해줄 수 있었던, 그녀에게 잠깐의 행복을 맛보여줄 수 있었던 친구 마크 포춘이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다.

※출판사 미래지향의 지원도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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