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리의 크레이터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정남일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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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선정작] 세리의 크레이터

정남일 (지음) | 교유서가 (펴냄)

나는 수많은 우연이 겹쳐서 태어날 수 있었던 거야

[경기문화재단 선정작] 세리의 크레이터 표지글 중에서

삶의 많은 부분에서 운명을 얘기한다. 좋은 일에도 슬픈 일에도, 모든 희노애락에.

<세리의 크레이터>에서 자신이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은 떨어지는 운석 덕분이었다 말하는 세리는 뱃속의 아이의 운명을 다시 보기 드문 운석 대신 크레이터를 보러가는 것으로 정한다. 정한다는 말은 사실 틀렸다. 답을 정해놓고 떠난 여행이었으니까.

하지만 자신이 정한 운명을 남에게 함께 하자고 하는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기심...왜 딱히 더 떠오르는 단어가 없을까. 자신의 엄마가 걸어온 미혼모라는 길, 그 길 위에서 사는 인생이 결코 쉽지 않음을 알기에 그러기라도 하는 것인지, 자신과 아이의 운명에 동행하기를 부탁하듯 강요한다. 혼자서 온전히 끌어안을 자신이 없다면 누구의 운명도 자신이 결정지어서는 안되는 게 아닐까? 별똥별은 그것을 보게된 사람에게는 행운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크레이터라는 거대한 구멍으로 남게 되는 소멸이나 상처일 뿐이다.

너, 나, 우리.

우리 나라, 우리 동네, 우리 아파트, 우리집, 우리 엄마, 우리 아빠, 우리 남편. 남과 나누어 가질 수 없는 것 마저도 우리라고 표현하며 정서적 연대를 갖는 '우리'만의 고유한 정서가 있다. '우리'가 주는 연대감은 우리 안에 들어오지 못한 이들에게는 차별과 냉대가 가득한 경계선이다.

외국의 동포들이 당하는 인종차별에는 격분하면서 이 땅에선 또다른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이 공공연하고, 경제적인 능력으로 사람을 재고 판단하며 끼리끼리의 문화를 이룬다.

<옆집에 행크가 산다>에서 초라해져가는 행크를 보며 과거에 눈물짓던 아내는 우리라는 울타리에 행크로 의심되는 남자를 들여놓지 않았다. 마음의 관계보다 경제적 실리로 구분짓는 우리라는 경계선에서 안과 밖, 나의 위치는 어디쯤인지 자신할 수 있을까? 누군가를 밀어낸 '우리'라는 안은 또다른 '우리'에서 밀어낸 밖일 수도 있다. 영원한 우리도 영원한 타인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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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표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이대연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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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선정작] 부표

이대연 (지음) | 교유서가 (펴냄)

삶과 죽음, 침묵과 고요 사이

세상에 꺼지지 않을 불빛 하나를 띄우다.

[경기문화재단 선정작] 부표 표지글 중에서

부표는 배의 안전 항행을 위해 설치하는 항로 표지다.

그 쓰임이 다하면 본연의 색도 퇴색하고 온갖 이물질이 붙어 쓰레기가 되고 만다. 인양 크레인에 의해 건져 올려지는 부표의 처지가 수명을 다한 사람의 생애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부표가 건져 올려진 자리에는 곧 새로운 부표가, 사람이 난 자리는 새로운 사람으로 또다시 채워진다는 것도.

자신을 위한 개인적인 욕심이든 조금 더 넓게 보아 가족이나 나라를 위한 욕심이든 한탕을 꿈꿔보고 새 시대 새 세상을 꿈꿔보지 않은 자 얼마나 될까.

같은 동기를 가지고 같은 과정을 거쳤더라도 성공과 실패라는 확연히 다른 결과는 스스로가 감당해야 하는 책임과 세상의 평가가 그야말로 천지차이다. 주식투자에 성공한 이는 투자가로 불리우고 실패한 자는 투기꾼, 도박꾼으로 분류된다. 왕을 바꾸어 세상을 바꿔 보겠다는 맹세와 행동들은 가족의 목숨까지도 걸어야하는 도박 중의 도박이지만 성공하면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혁명가가 되고 실패하면 역적이 되어 참수를 면키 어려운 도박인 것이다.

<부표>의 주인공 아버지가 한 탕을 꿈꾸며 띄운 자신의 부표에는 가족과의 단절, 되풀이되는 실패가 이물질처럼 엉겨 붙었다.

죽음을 맞은 이에게는 실패에 대한 비난이 줄어들고 너그러워진다. 매를 맞고 남편이 벌어다 준 돈을 써보지도 못하고 보기만 했던 어머니가 아버지의 삼우제날 홍합 미역국을 끓인 심중에는 아버지의 마지막 끼니였던 홍합 국물을 한 끼 더 먹이고 싶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전>에서 시방의 졸기를 써야하는 배대유가 곽재우의 졸기를 다시 고쳐 쓰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삶과 죽음, 그 사이의 인생은 부표 아래 엉기는 것들이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담치를 키울 수도, 엉키고 설킨 쓰레기 뿐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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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섯 개의 돌로 남은 미래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박초이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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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선정작] 스물여섯 개의 돌로 남은 미래

박초이 (지음) | 교유서가 (펴냄)

정말 무서운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경기문화재단 선정작] 스물여섯 개의 돌로 남은 미래 표지글 중에서

다홍이라는 이름의 반려묘를 기르는 방송인 박수홍 씨가 방송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내가 다홍이를 돌본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다홍이가 나를 돌보고 있었다" 라고.

<스물여섯 개의 돌로 남은 미래>에서 구는 정말 미래를 돌본게 맞을까? 미래를 혼자 둘 수 없어 여자친구를 사귀었다는 구에게선 왠지 미래를 향한 애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미래 뿐만 아니라 그 누구를 향해서도 진정한 애정은 볼 수 없었다. 미래의 위험을 알면서도 침묵하던 구는 자신의 관심과 애정을 기다리는 여자들을 이용했을 뿐이었다. 믿음을 가지고 과거를 털어놓은 '나'의 얘기를 타인에게서 다시 듣게 만든 참담함, 미래를 화장하고 스물여섯 개의 돌로 만들어 미래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던 지안에게까지 나누는 모습 등 구의 행동들은 자상함을 가장한 폭력이었다.

떠난다는 것은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일테다.

돌아올 곳이 없는 떠남은 떠돈다는 말이 더 어울리니 말이다. 그 목적지가 공간적인 장소일 수도, 인생의 목표일 수도 있겠지만 지치고 힘들때 최후의 보루처럼 몸과 마음을 뉘일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은 넘어져도 일어설 힘을 내도록 만든다.

떠나고 싶다는 바램을 가져보면서도 마음만큼 쉽게 떠나지 못하는 것은 늘 핑계대었던 돈과 시간의 여유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결단과 용기가 부족한 이유가 더 크지 않았을까. 방향이나 목적지가 같은 동행자를 만나면 고난의 경험도 때로는 즐거운 추억이 되듯이 인생의 굴곡에서 공통점을 가진 이를 만나게 되면 고행같은 그 길이 외롭진 않다. 그 동행자는 친구일 수도 있고 반려자일 수도 있고 새롭게 시작하는 인연이 될 수도 있다. <사소한 사실들>의 '나'에게 셰어하우스의 두 동거인이 그러하듯이.

떠나고 싶지만 떠나지 못하고, 떠난 이를 기다리고, 떠나기 위해 용기를 내는 세상의 수많은 나를 응원하고 싶게 만든 두 단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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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송지현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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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선정작] 김장

송지현 (지음) | 교유서가 (펴냄)

아주 작은 슬픔들의 결정체가 인간이다.

작은 슬픔들이 모여서 나를 만들고 있다.

작은 슬픔이 모인 것이 나다.

나는 작은 슬픔이다.

-[경기문화재단 선정작] 김장 본문 중에서

김장철이 되면 김치소에 넣을 무를 채썰던 일과 묵은 김치로 만들어 먹던 만두피 두껍던 투박한 김치만두가 생각난다. 어른이 되어 맞는 김장이라는 연례 행사는 이벤트 같았던 어린시절과 달리 노동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일이 되어버렸다. 들인 노고에 비해 대접 받지 못하는 김치라는 존재처럼 나의 존재도 그러했을까.

<김장>과 <난쟁이 그리고 에어컨 없는 여름에 관하여> 두 단편을 읽으며 개인적인 기억들이 조각조각 부서진 파편처럼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집집마다 김장하는 날을 다르게 잡아 서로 도와가며 하던 김장은 이젠 옛일이 되고 음식을 나누는 일도 드문 일이 되었다. 따뜻함은 기억에 있고 현실에는 그 계절의 차가움만 남은 느낌이랄까.

<난쟁이 그리고 에어컨 없는 여름에 관하여>에서 아이를 키우는 이혼녀 g는 반려묘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이유로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했지만 그 자신은 반려묘를 유기하고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인물이다. 그 죄책감을 아이에게 투사하며 폭력적인 언어를 일삼지만 훗날 아이에 대한 죄책감은 또 어디에 투사하게 될까.

첫 줄 "아주 작은 슬픔들의 결정체가 인간이다"라는 문장에서 숨이 턱 막히며 시선을 한참동안 뗄 수 없었다.

다이아몬드의 원소는 탄소, 흑연의 원소도 탄소. 원자의 배열 방법이 달라 결과물도 달라진 탄소는 그 쓰임과 가격도 큰 차이를 보인다.

내게 모인 슬픔과 g의 슬픔과 그리고 또다른 수많은 '너'의 슬픔은 모이고 모여 어떤 결정체가 될까, 어떤 인간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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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메인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유재영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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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선정작] 도메인

유재영 (지음) | 교유서가 (펴냄)

매듭지어지지 못한 이야기, 이야기꾼의 실종

반복되고 중첩되는 기묘한 사건들의 잔영

-[경기문화재단 선정작] 도메인 표지글 중에서

자연스러운 죽음이든, 타의에 의한 억울한 죽음이든 생명을 가진 존재라면 죽음을 거부할 도리는 없다.

때와 장소를 알 수 없을 뿐 죽음은 정해진 운명임에도 되도록이면 피하고 싶은 것이기에 그 공포와 호기심은 추측과 상상으로 더 큰 두려움을 불러온다.

조그만 불길한 징조에도 '혹시?'하며 죽음의 그림자라도 닿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을 미신으로만 치부하는 이들도 있지만 사망에 이르게 하는 전조를 1:29:300의 비율로 설명한 하인리히 법칙을 떠올려본다면...글쎄...무시하던 징조가 저 300의 어디쯤 일 수도?

<도메인>의 앞 수록 단편 <영>에서는 공포영화에서라면 긴장감을 줄 전조가 여러차례 등장한다. 아영장으로 가던 길에 일어난 불가사의한 사고, 사고 길건너편 동물의 사체, 동반자살로 보이는 시체의 발견, 그 주위에 떨어진 다이아몬드 등 일련의 사건들이 어떤 연관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머리 속을 바쁘게 한다.

뒤이어 수록된 <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라 윈체스터 성의 미스터리'를 풀기위해 그곳으로 초청되어 떠난 유투버 영역마저 생사를 알 수 없게 되며 행적이 묘연해진다.

귀신이 나타나 자신의 한을 풀었다든지, 억울한 죽음의 원인이 밝혀져 범인을 잡았다던지 하는 소설스러운 결론은 없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더 공포스럽지 아니한가!

숱하게 많은 미제 사건들. 목격자가 없어 난항을 겪는 미제 사건들은 직접적인 관계도 없는 사건에 얽혀 귀찮아지는게 싫은 캠핑장 관리인이나 혹시 모를 보복이 두려운 <역>의 화자 '나'처럼, 목격했으나 침묵하는 이들이 이 땅 어디엔가 실제하리라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큰 현실 공포다. 미완처럼 보이는 이야기가 사실은 현실에서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 이보다 더 큰 공포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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