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개 이야기
마크 트웨인 지음, 차영지 옮김 / 내로라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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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개 이야기

마크 트웨인 (지음) | 차영지 (옮김) | 내로라 (펴냄)

인면수심의 행동을 하는 사람을 두고 흔히들 "개만도 못하다"고 한다. 사람들의 충직한 친구로 일상을 함께하는 개들의 입장에선 가만히 있다가 욕을 먹는 어이없는 상황이다.

"인간을 알게 될수록, 내 개가 좋아진다"는 마크 트웨인의 말은 곱씹어 볼수록 인간성의 결여, 인간에 대한 실망이 비춰져 서글퍼지기까지 한다.

위기의 순간에 주인공인 개(에일린 마보닌)는 이성을 발휘해 불길 속에서 자신의 도피보단 아기를 구했고, 주인 남자(그레이 박사)는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채 본능적으로 개에게 위협을 가했다. 둘이 생각했던 위기는 달랐지만 위기에 대처하는 행동은 더욱 더 달랐다. 과연 누가 더 인간적이었을까?

많은 신약과 생필품들이 쥐, 토끼, 개 등의 동물실험을 거쳐 발명되고 발전되어 왔다. 보지 않았지만 알고 있던 사실이었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깊게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자의적인 희생이 아닌 타의적인 학살에 가까운 동물실험을 같은 인간에게 행해진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동안 가볍게 여기고 있었던가 보다. 도덕과 윤리의 기준과 가치는 불변하는 절대가치가 아니다. 시대와 문화의 차이에 따라 공공의 이익이 최선이 되는 것을 도덕적 가치의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동물실험으로 과학과 의학의 눈부신 발전을 가져온 과학자의 업적이 당대에는 칭송받다가 후대에는 생명의 존엄성을 이유로 그 업적이 퇴색하는 일도 시대가 원하는 윤리의 기준이 변화하는 것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거창한 단어를 수집하고 오남용하는 엄마를 보며 조지오웰의 <동물 농장>이 연상되었다면 지나친 확대일까? 뜻도 모르면서 유식해 보이고자 과시하기 위해 쓰는 단어는 진정한 가치도 모르면서 허세를 부리기 위해 수집하는 인간의 욕망과도 닮았다. 그런 엄마를 따르는 다른 개들과 허세로 자신을 부풀린 사람의 주위에 모이는 또 다른 사람들. 자신들이 열광하는 것의 참가치를 알고는 있을까? 때로는 껍데기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까?

씨앗을 심은 뒤 싹이 돋아난 것을 보았던 마보닌은 새끼의 무덤 앞에서 잘생긴 개로 다시 피어날 기대에 기뻐했다. 뒷장으로 넘어갈수록 예감되었던 결말이지만 슬픈 마음이 드는 것은 피할 도리가 없다.

개의 시점으로 진행되어 사람들의 이야기가 보다 더 객관적으로 보였다. 대의를 위한다며 소수와 약자의 원치않는 희생을 당연시 여기는 폭력을 지식인과 권력자의 고뇌로 여기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다수를 위한다면 소수의 희생은 감내해야만 하는걸까? 그런 권리는 누가 주었나?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을지 모를 소수의 희생이 대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신들의 윤리가 타당하다 외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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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연대
수잔 글래스펠 지음, 차영지 옮김 / 내로라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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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연대

수잔 글래스펠 (지음) | 차영지 (옮김) | 내로라 (펴냄)

가까이 살든 멀리 살든 사실은 우리 모두 알고 있어요. 다들 똑같으니까. 다들 겉에선 다르게 보이지만, 결국엔 똑같은 삶을 살아가니까.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당신과 내가 어떻게, 그 삶을 이해할 수 있었겠어요? 우리가 어떻게 지금, 이 순간에, 그 삶을 짐작할 수 있었겠어요.

-<마음의 연대> 본문 127페이지

사랑의 언어를 속삭이는 대다수의 연인들은 기쁠때나 슬플때나 변함없는 믿음과 존경, 사랑을 하겠다는 서약을 하고 많은 이들의 축복 속에 부부가 되어 살아간다.

그러나 일상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크고 작은 문제들로 티격태격하며 벌어진 마음의 거리는 식어버린 사랑으로 인해 메워지지 못하고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서로를 향해 날선 언어로 공격하며 상처를 내고, 자녀의 유무와 관계없이 이혼이라는 선택을 해 주위의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부부도 있다. 그리고 차마 해서는 안될 극단적인 강력범죄의 가해자와 피해자로 뉴스를 오르내리기도 한다.

아내를 살해한 남편, 남편을 살해한 아내.

세계를 들썩였던 O.J.심슨 사건과 계곡살인의 이은해가 주저없이 떠올랐다. 심슨은 법정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지만 대중의 심판에선 그러하질 못했고 이은해는 법과 대중 모두에게 용서받지 못했다.

그리고 여기, 기자로 활동하던 수잔 글래스펠이 조명한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야기가 있다. 바로 남편의 죽음에 강한 의심을 받고 있는 아내 '미니 포스터'다. 정황은 아내를 남편의 살해자로 의심하게 만들지만 증거는 없다. 오래전부터 미니 포스터를 알아왔던 헤일 부인과 보안관의 아내 피터스 부인은 자신들이 발견한 정황증거들을 감춘다. 그녀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에 대해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그녀들이 미니 포스터를 위해 감추기로 한 것들은 증거라고 하기엔 빈약하지만 이미 아내를 범인이라고 단정지은 헨더슨 검사에겐 증거 이상이 될 터였다.

법은 범죄가 일어나게 된 과정보다 결과를 심판한다.

짧지 않은 세월을 이웃으로 살면서도 미니의 불행을 모른척 해왔다는 헤일 부인의 자책감과 미니의 적막함을 이해하는 피터스 부인의 암묵적인 연대는 미니가 저질렀을지 모를 범죄의 결과보다 과정에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목이 비틀려 죽은 새의 주검이 단순히 '새'가 아니라 미나가 부여잡은 삶에 대한 마지막 한줄기 애착과 희망이었다면 오히려 남편보다 먼저 죽은 것은 미나일 것이다.

127p."나라면 과일잼 병이 모두 깨지고 말았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겠어요! 그냥 괜찮다고, 다 괜찮다고, 그렇게 말해줘요. 자, 이걸 가지고 가요. 증거로 보여줘요. 그러면, 그러면! 깨져버렸는지 아닌지 영영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잖아요." 정성들여 만든 잼의 병이 깨지며 쓸 수 없게 되버리고 오직 한병만 남은 것은 그래도 아직 미나에게 삶의 기회를 주고 싶은 작가의 의도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헤일 부인이 괜찮다고 말하고 싶은 것도 잼이 아니라 미나를 이해한다는 그 말이 아니었을까?

미나가 돌아온다면 이제는 외롭지 않을 수 있겠다. 그녀를 이해하는 여성들의 마음 속 연대가 더이상 무관심으로 고개돌리는 일은 없을 테니까.

이해한다는 것, 이해받고 있다는 것. 어쩌면 그 사실이 살아갈 힘을 주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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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철학자 - 키르케고르 평전
클레어 칼라일 지음, 임규정 옮김 / 사월의책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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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철학자, 키르케고르 평전

클레어 칼라일 (지음) | 임규정 (옮김) | 사월의책 (펴냄)

어떻게 해야 나는 세상에서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

-<마음의 철학자> 본문 중에서

실존주의 철학자, 키르케고르.

키르케고르 이전의 철학은 앎에 대한 추구, "인간은 무엇을 알 수 있는가?"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나 키르케고르 이후의 철학은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가?"로 전환을 맞이했다. 아주 의미있는 전환이지만 그의 생전보다는 사후에 인정받은 사상이라고 한다. 지금 보면 당연하고 중요한 사상이지만 당대에는 기독교의 신앙에 정면으로 맞서는 개념들이다 보니 자신의 철학을 관철시키고 인정받는데에 어려움이 컸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사랑했던 여인 레기네 올센과의 파혼도 그 연장선에 있다. 너무나 사랑했으나 자신의 우울증이 그녀마저 오염시킬까 두려웠고, 결혼 생활과 자신의 연구를 병행할 수 없으리라 여겼다. 무엇보다도 당대 교회의 적이 되리라는 사실이 불을 보듯 뻔했기에 사랑하는 마음을 숨겨가며 거짓된 냉정함으로 그녀를 놓아준 것이다.

본문에 소개된 그의 여러 저서를 통해 그가 가졌던 생각과 '실존'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공포와 전율>에서는 시류에 편승하는 학생들을 일컬어 대중마차에 무리지어 달려드는 것이라 비유했다. "남이 장에 가면 똥지게를 지고 따라간다."는 우리 속담이 생각났다. 옛말 뿐이랴! 지금도 남이 하니까 그저 따라하고 모방하기 바쁜 사람들은 셀 수 없이 많다. 1800년대의 철학자의 사상은 시대를 훌쩍 뛰어넘어서도 통하는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졌다.

<이것이냐 저것이냐>에서는 삶이란 돌발적인 비약과 질적변화로부터 비롯되는 불안의 심연에서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결정할 수 밖에 없는 절박한 것이라고 보았다.

<죽음에 이른 병>에서는 개인이 느끼는 우울과 불안을 시공간의 유한성 결핍에서 비롯된 무한성의 절망으로 보고, 절망은 정신의 병으로 보았다. 절망을 느끼는 그 자체는 죄가 아니지만 절망에서 벗어나려 애쓰지 않는 것은 죄라고 하였다. 절망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벗어나는 법을 알려주려 했던 그는 신 앞에 인간이 단독자로 서는 것이 진정한 종교라고 여겼다.

키르케고르 자신도 기독교적 세계관을 지녔지만 추구하는 이상은 기존의 종교인들과 달랐다. 세속적인 종교를 비판하며 개인을 구원하지 못하는 종교의 거대담론을 비판했다. 그러니 당대 교회들이 그를 적으로 대할 수 밖에.

신앙이 절망을 없애주지는 못한다. 다만, 살아가면서 계속될 절망을 견뎌낼 수 있는 용기와 확신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기존 종교의 거대담론이 무의미하다며 반기를 들고 거대담론에 묻혀있는 개인을 발굴해 삶 그 자체에 주목한 키르케고르. 개인은 인간이지만 인간이 모두 개인은 아니다. 인간은 인간이기 이전에 언제나 개인임을 말했던 키르케고르는 시대를 앞서갔던 철학자임에 틀림없다.

본질보다 실존을 중요시 했던 그의 철학이 새삼 놀랍다. 존재의 목적도 중요하지만 존재자 개인의 존재방식을 더 중요하게 여긴 그의 사상은 요즘 우리가 추구하는 삶 그 자체가 아닌가!

평전을 통해 알게 된 키르케고르의 사상을 그의 저서를 통해 더 깊이 알고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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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딕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4
허먼 멜빌 지음, 레이먼드 비숍 그림,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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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 딕

허먼 멜빌 (지음) |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펴냄)

가끔 커피를 마시기 위해 가곤 하는 스타벅스의 상호명이 <모비 딕>에 나오는 피퀴드 호의 일등항해사 스타벅에서 유래되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모비 딕을 쫒는 에이해브 선장과 그의 선동과 명령에 움직이는 선원들 중 유일하게 이성적인 사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스타벅 만큼이나 유명한 첫 문장. "나를 이슈메일이라 불러다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의 첫줄 "오늘, 엄마가 죽었다."만큼이나 강렬한 시작이다. 방랑자, 세상에서 추방당한 자라는 뜻의 이스마엘에서 유래된 이슈메일. 이름이 이슈메일이라고 밝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이슈메일이라고 불러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바다를 무대로 펼쳐지는 인간의 모험과 도전을 그려내는 몇 몇의 작품 중에 고기잡이를 통해 인생을 비유적으로 그려내었던 노인과 바다가 연상되었다. 노선장 에이해브가 집착하며 쫒는 모비 딕은 단순한 그냥 '흰고래'가 아니기 때문이다.

경주마의 발주악벽을 막기 위해 씌우는 눈가리개. 우승을 향한 인간의 이기심과 욕심이 말에게 주위를 둘러보지 못하게 하고 오로지 앞만 보게 만든 것이다. 에이해브는 복수라는 눈가리개로 이성을 가린 것은 아니었을까.

모비 딕을 가장 먼저 발견하고 외치는 자에게 주겠다며 돛대에 못박은 금화는 선원들을 동요시키며 에이해브의 명령에 하나가 되어갔다. 광기에 사로잡힌 지도자가 불러들이는 위험은 그 광기가 복수심이든 권력욕이든 그를 따르는 자와 따를 수 밖에 없는 이들 모두에게 비극이다. 에이해브의 반짝이는 금화는 현실의 우리에게 젊은 가슴에 불을 지피는 애국심이 될 수도 있고 선거를 앞두고 벌어지는 지역감정과 학연, 혈연, 지연 등 여러 모습으로 나타난다.

자신의 다리를 앗아가고 다른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모비 딕을 에이해브는 철천지 원수로 여긴다. 하지만 먹고 살기 위한 생계의 방법으로 포경업을 하는 뱃사람들 만큼이나 죽지 않기 위해 발악해야하는 고래 모비딕도 모비 딕의 입장에선 오히려 사람이 원수가 아닐까. 영역을 침범한 것은 고래가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이다.

복수에 눈 먼 에이해브는 두 아들을 모두 바다에 묻어야하는 위기에 처한 레이철 호 선장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하며 복수를 위한 광기를 지속했다. 바다위에서 만나는 모든 배에 흰 고래 모비 딕을 보았느냐 물으며 행적을 쫒던 그는 마침내 숙원하던 만남을 가졌다. 에이해브의 광기는 멈출 줄 몰랐고 에이해브와 피쿼드 호의 비극은 불을 보듯 뻔했다.

이슈메일이 퀴케그의 관으로 만들어진 구명부표에 올라타 바다 위를 표류하고, 그런 그를 건져 올린 것이 레이철 호 였다는 것은 드라마틱한 아이러니다.

우리는 우리 각자의 인생에서 끝내 놓지 못하는 자신만의 모비 딕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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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숲을 거닐다 - 장영희 문학 에세이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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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숲을 거닐다

장영희 (지음) | 샘터 (펴냄)

문학은 작가가 자신의 개인적 체험, 또는 상상력을 통해 하나의 허구적 세계를 창조하고 그 안에서 일어날 법한 얘기를 창조해서 말한다. (중략)그것은 내 이야기가 아니고 분명 남의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도 문학작품 속에서 우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문학의숲을거닐다> 작가의 말 중에서

한 번 읽고는 책장에서 잊혀지는 책이 있는가 하면, 남는 시간이 무료해 특정 장소에 비치되어 있는 도서를 우연히 읽게 되었다가 소장하기 위해 이미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구매로 이어지는 책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처음부터 소장을 목적으로 구매하는 책들은 대다수 고전문학이다. 가장 큰 이유는 재독을 하기 위해서다.

가깝게는 백년 전쯤을 시작으로 멀게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이르기까지 문학작품을 통해 배우고 느끼게 되는 감동은 매번 다르다. 때로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시대와 문화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마치 나의 이야기인 듯한 마음 깊은 곳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에게 오랜시간 사랑받으며 읽혀지는 이유이기도 할것이다.

아주 널리 알려진 고전문학의 경우에는 출판사별로 소장하고 있다. 번역에 따라 달라지는 감동의 미세한 차이에 시각의 차이도 비교하며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특별하게 특정 출판사를 선호하지는 않는다. A라는 책의 번역은 b가 좋고 B작품은 c가 좋기도 하니까. 이건 그저 개인의 취향일 수 있다.

<문학의 숲을 거닐다> 작가의 말에서 장영희 교수는 말하고 있다. "문학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너와 내가 같고, 다른 사람도 나와 똑같이 인간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고뇌와 상처를 이해하는 능력을 기르는 일이다." 라고.

겉표지에 보이는 숲 사이에 나열된 작품들 이외에도 많은 문학작품에 대한 소개가 되어있다.

"걷다", "달리다"가 아니라 정말 "거닐다"라는 표현이 딱 맞게 찬찬히 호흡하듯, 휴식하듯이 읽혔다. 개인적인 얘기를 조금만 줄이시고 작품에 대한 얘기가 조금만 더 많았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은 있다. 읽었던 문학작품이지만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넘겼던 부분이나 가까운 시일 안에 읽으려고 준비중인 도서에 대한 소개는 숲에서 길을 잃지 않는 이정표가 되어 주었다. 마치 헨델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숲길에 떨어뜨려 두었던 조약돌들이 달빛에 반짝이는 것처럼, 장영희 교수의 작품 해설은 짧지만 쉽고 강렬했다.

같은 책을 5년, 10년 후 재독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때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그간의 경험과 축척된 독서량을 바탕으로 마치 새로 눈 뜬것처럼 보여질 때가 있다. 매번 다른 교훈과 다른 감동을 느끼게 되는 문학의 매력이 아닌가 한다.

두껍고 어려워 미뤄두었던 <모비 딕>을 시작으로 장영희 교수의 길 안내를 받으며 문학의 숲을 거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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