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음의 연대
수잔 글래스펠 지음, 차영지 옮김 / 내로라 / 2021년 11월
평점 :
마음의 연대
수잔 글래스펠 (지음) | 차영지 (옮김) | 내로라 (펴냄)
가까이 살든 멀리 살든 사실은 우리 모두 알고 있어요. 다들 똑같으니까. 다들 겉에선 다르게 보이지만, 결국엔 똑같은 삶을 살아가니까.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당신과 내가 어떻게, 그 삶을 이해할 수 있었겠어요? 우리가 어떻게 지금, 이 순간에, 그 삶을 짐작할 수 있었겠어요.
-<마음의 연대> 본문 127페이지
사랑의 언어를 속삭이는 대다수의 연인들은 기쁠때나 슬플때나 변함없는 믿음과 존경, 사랑을 하겠다는 서약을 하고 많은 이들의 축복 속에 부부가 되어 살아간다.
그러나 일상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크고 작은 문제들로 티격태격하며 벌어진 마음의 거리는 식어버린 사랑으로 인해 메워지지 못하고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서로를 향해 날선 언어로 공격하며 상처를 내고, 자녀의 유무와 관계없이 이혼이라는 선택을 해 주위의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부부도 있다. 그리고 차마 해서는 안될 극단적인 강력범죄의 가해자와 피해자로 뉴스를 오르내리기도 한다.
아내를 살해한 남편, 남편을 살해한 아내.
세계를 들썩였던 O.J.심슨 사건과 계곡살인의 이은해가 주저없이 떠올랐다. 심슨은 법정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지만 대중의 심판에선 그러하질 못했고 이은해는 법과 대중 모두에게 용서받지 못했다.
그리고 여기, 기자로 활동하던 수잔 글래스펠이 조명한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야기가 있다. 바로 남편의 죽음에 강한 의심을 받고 있는 아내 '미니 포스터'다. 정황은 아내를 남편의 살해자로 의심하게 만들지만 증거는 없다. 오래전부터 미니 포스터를 알아왔던 헤일 부인과 보안관의 아내 피터스 부인은 자신들이 발견한 정황증거들을 감춘다. 그녀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에 대해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그녀들이 미니 포스터를 위해 감추기로 한 것들은 증거라고 하기엔 빈약하지만 이미 아내를 범인이라고 단정지은 헨더슨 검사에겐 증거 이상이 될 터였다.
법은 범죄가 일어나게 된 과정보다 결과를 심판한다.
짧지 않은 세월을 이웃으로 살면서도 미니의 불행을 모른척 해왔다는 헤일 부인의 자책감과 미니의 적막함을 이해하는 피터스 부인의 암묵적인 연대는 미니가 저질렀을지 모를 범죄의 결과보다 과정에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목이 비틀려 죽은 새의 주검이 단순히 '새'가 아니라 미나가 부여잡은 삶에 대한 마지막 한줄기 애착과 희망이었다면 오히려 남편보다 먼저 죽은 것은 미나일 것이다.
127p."나라면 과일잼 병이 모두 깨지고 말았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겠어요! 그냥 괜찮다고, 다 괜찮다고, 그렇게 말해줘요. 자, 이걸 가지고 가요. 증거로 보여줘요. 그러면, 그러면! 깨져버렸는지 아닌지 영영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잖아요." 정성들여 만든 잼의 병이 깨지며 쓸 수 없게 되버리고 오직 한병만 남은 것은 그래도 아직 미나에게 삶의 기회를 주고 싶은 작가의 의도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헤일 부인이 괜찮다고 말하고 싶은 것도 잼이 아니라 미나를 이해한다는 그 말이 아니었을까?
미나가 돌아온다면 이제는 외롭지 않을 수 있겠다. 그녀를 이해하는 여성들의 마음 속 연대가 더이상 무관심으로 고개돌리는 일은 없을 테니까.
이해한다는 것, 이해받고 있다는 것. 어쩌면 그 사실이 살아갈 힘을 주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