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이며 절대적인 고양이 백과사전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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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이며 절대적인 고양이 백과사전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펴냄)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열광하며 탐구한

고양이의 모든 것!

길을 지나다보면 적지 않은 길고양이들을 마주하게 된다. 길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도 있지만 사람의 품에서 사랑받던 아이들도 있다. 쉽게 사랑하고 쉽게 헤어지는 일이 사람 사이에만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사랑으로 포장된 소유욕이 싫증으로 대체되면 가치를 잃은 거짓 사랑은 그렇게 버려지기도 한다.

개는 친숙함으로 고양이는 도도함으로 대표되는 이미지는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에게만 특별하게 (주객이 전도된 표현으로) 집사라는 별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지금이야 고양이가 단순 쥐잡이를 뛰어넘어 반려동물로 친숙해졌지만 과거에는 불길함의 징조로 여겨지기도 했다. 에드가 엘런 포우의 단편 소설 '검은 고양이'나 우리나라의 전설에 고양이가 복수의 화신으로 자주 등장했던 이유다.

인스타와 유투브의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은 고양이 동영상으로 자주 이끈다. 보다보면 어느새 미소를 띈 채 무아지경에 빠진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길러볼까?'하는 유혹이 슬며시 고개를 들기도 한다. 기분 좋을때 내는 가르릉 소리나 꾹꾹이, 개냥이라고도 불리는 친근함의 표시가 그 유혹에 더 더욱 불을 지핀다. 아마도 베르나르 베르베르도 고양이의 그런 매력에 빠져 기르고 관찰하며 사랑에 빠지지 않았을까? 덕분에 이토록 매력적인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고양이 백과사전>도 세상에 나오게 되었고 말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베스트셀러인 고양이 시리즈의 등장묘 피타고라스의 친절한 설명은 이 천재묘 피타고라스를 한 번 만나고 싶어질 정도로 재미있다. 늦은 밤 가볍게 시작한 독서는 2시간 만에 완독하며 참 행복한 여운을 주었다. 중간중간 삽입된 고양이들의 사진은 "아고고 귀여워라"와 "꺄아아~"의 감탄사를 연발하지 않을 수 없는 귀여움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고양이에 대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애정이 매 페이지에서 느껴진다.

피타고라스의 설명으로 알게 된 역사는 고양이의 시점이어서 더욱 흥미롭고 새롭다. 딱딱했던 역사와 일반 상식들이 고양이 발바닥 젤리처럼 말랑말랑하게 쏙쏙 읽혔다. 검은 고양이가 무정부주의 운동의 대표 이미지란 것도, 고양이의 여러 종이 근친 교배로 생겨난 것이란 것도, 한배에서 나온 새끼들이라도 어미의 난자가 수컷 여러 마리의 정자들과 결합해 수정이 이루어진 경우가 흔하다는 것도 이 책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고양이 백과사전>을 통해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이다. 호기심에 읽었지만 생각보다 훨씬 더 좋았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고양이 백과사전>. 고양이를 기르고 있는 집사도, 고양이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사람도, 고양이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는 나 같은 사람도 읽어보면 좋을 거라고 장담한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걸~

"베르나르 베르베르 씨! 다음에는 어떤 백과사전으로 새로운 상식들을 채워주실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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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처 마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19
윌리엄 골딩 지음, 백지민 옮김 / 민음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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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처 마틴

윌리엄 골딩 (지음) | 백지민 (옮김) | 민음사 (펴냄)

죽음을 목전에 두고 기적같은 생환을 했던 사람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지나온 과거가 파노라마처럼 혹은 주마등처럼 머리속을 스쳤다'는 것이다. '찰나'라고 표현되기도 하는 짧은 시간에 그동안 살아오며 겪은 무수히 많은 경험의 기억들이 무의식적으로 떠올려진다는 건 이성적으로 생각해봤을때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처럼 보인다.

죽음을 바로 코 앞에 직면했을때 떠올리게 되는 과거의 기억은 저질렀던 잘못들에 대한 후회와 반성도 뒤따르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지 않을까. 그러나 이런 인간적인 고뇌와 후회를 핀처 마틴에게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난 살아남을거야", "난 오늘 구조될거야", "난 지성적이다", "난 너무 외로워". 망망대해에서 바위로 된 무인도에 표류해 기억과 상상을 오가는 날들에도 크리스토퍼 해들리 마틴, 핀처 마틴이라고도 불리는 이 사내에게는 오로지 자기 중심적인 생각 뿐이며 지난 과오에도 무엇이 그리 떳떳한지 뻔뻔하기 이를데 없다.

총 14장으로 구성된 핀처 마틴의 이야기는 "살려 줘"로 시작되어 13장에 이르기까지 홀로 살아남은 핀처 마틴의 외로움과 지난날의 기억, 끝까지 살아남기 위한 강한 집착을 보여준다. 핀처 마틴의 시선에서 이루어지는 이야기의 서술은 마지막 14장에서 시점의 전환과 더불어 소름끼지는 반전으로 할 말을 잃게 만든다.

개봉 직후 보았던 톰 행크스 주연의 <캐스트 어웨이>와 포스터가 강렬했던 영화 <127시간>이 떠올랐던 <핀처 마틴>. <캐스트 어웨이>에서 톰 행크스의 외로움을 달래주었던 윌슨이 <핀처 마틴>에서는 돌로 만든 난쟁이가 대신하고 있다.

남의 여자를 탐하는 핀처 마틴의 비뚫어진 인간성을 작가 윌리엄 골딩은 시작부터 그의 턱관절을 경첩이라 칭하면서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어쩌면 미처 눈치채지 못하고 핀처 마틴이 처한 조난에 독자가 보낼 안타까움과 위로를 차단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엘프리드의 여자인 시빌을 탐하고, 연출가 피트의 아내인 헬렌과 놀아나고, 거부하는 메리를 강제로 욕보이며 너새니얼에 대한 질투는 실수를 가장한 살해 욕구로 불태우는 핀처 마틴에게 과연 동정받을 가치가 있을까. 단 한가지 후회가 있다면 너새니얼을 죽음으로 완벽하게 몰아넣지 못한 10초 늦은 타이밍 뿐이랄까.

살아온 날들에 대한 반성과 참회보다는 다가오는 죽음이 두려워 망상을 시작한 핀처 마틴에게서 현실을 부정하며 현실에는 없는 사이버 공간으로 도피해버리고 마는 사람들을 겹쳐본다. 끝없는 자기합리화가 우겨댄다고 해서 진실이 되고 정의가 될 리 없다.

"마틴은 심지어 방수 장화를 벗어 던질 짬도 없었습니다."(본문 287페이지) 그럴 짬도 없었던 그 급박한 순간에 그가 느꼈던 외로움과 구조에 대한 갈망은 삶에 대한 집착 그 자체다. 그러나 결코 자신의 뜻대로 움켜쥘 수는 없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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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의 눈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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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의 눈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 이정서 (옮김) | 새움 (펴냄)

"바른 번역"이라는 슬로건으로 고전 문학의 직역에 힘주는 새움에서 이번에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단편들을 묶어 내놓았다.

"엷게 펼쳐놓기보다는, 항상 졸인다.", "내용의 8분의 1만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헤밍웨이의 말은 단어 하나하나에 함축되고 은유하는 것들이 많음을 시사하고 있다. 수록된 6편의 단편 중 5번째 단편 <혁명가>는 3페이지 분량으로 가장 짧다. 그래서인지 가장 이해가 어려운 단편이었다. 인상깊게 남은 것은 책제목으로도 쓰인 <킬리만자로의 눈>과 <빗속의 고양이>다. 수록 단편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허무와 외로움이었다.

<킬리만자로의 눈>에 등장하는 해리의 인생은 목적없는 허무가 짙게 깔려있다. 돈 많은 여자들을 유혹해 얹혀살며 인생을 즐기던 그의 삶은 제대로 소독하지 않은 작은 상처가 덧나며 죽음에 이르는 허무 그 자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많은 경험을 하고 살아온 해리는 언젠가는 쓰게 될 소설의 글감으로 그 경험들을 모아두지만 결국 쓰지 못했다. 진실보다 거짓말로 여자들을 유혹하며 살아온 삶이, 쓰고 있지 않은 매일 매일이 안락했기에 다시 쓰고자하는 의지를 꺾고 스스로를 경멸하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왜 악마가 되려 하냐'는 헬렌의 질문에 해리는 대답했다. "나는 어떤 것도 남겨두고 싶지 않아. 뒤에 남겨두고 싶지 않다고. (본문26페이지)"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찾은 아프리카에서 썩어가는 다리로 인해 다가오는 죽음을 대하는 해리의 태도는 연인 헬렌을 향해 "나는 오늘 죽을 거야."라고 말하며 무심한 듯 가벼워 보인다. 침대 발치에 내려 앉았다가 가슴 위에 얹혀져 숨 쉴 수 없도록 조여오는 무게감으로 죽음을 묘사한 헤밍웨이의 표현은 압권이다.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는다면 밤사이 해리는 죽음을 맞았고, 콤프턴의 방문은 죽음 이후의 해리의 상상인 듯 하다. 그 상상속에서 보게 된 킬리만자로의 눈 덮인 정상, 자신이 가고 있는 곳이라 깨달은 그 곳에 소설의 시작에서 언급된 표범의 설명할 수 없었던 죽음과 목적없던 삶을 살았던 해리의 죽음이 교차된다.

<빗속의 고양이>에 등장하는 여자는 미국인 아내로만 지칭될 뿐 그녀의 남편 조지처럼 이름도 주어지지 않는다.

머리를 기르고, 가르랑거리는 새끼 고양이를 갖고 싶고, 자신만의 은식기로 밥을 먹고 싶은 그녀의 바램은 한 곳에 정착하고 싶은 마음과 남편 조지에게 관심받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의 표현일 것이다. 바램을 얘기하는 아내에게 '입 다물고 뭐라도 읽으라'는 남편의 무관심에 그녀가 느꼈을 외로움이 전해졌다. 비가 내리는 밖으로 새끼 고양이를 데리러 가는 그녀에게 우산을 씌워줄 생각을 한 것도, (소통의 문제로 원했던 새끼 고양이 대신 커다란) 고양이를 안겨준 것도 남편 조지가 아닌 호텔 주인이었다. 그녀가 느꼈을 외로움은 <빗속의 고양이> 뿐만 아니라 <흰 코끼리 같은 산등성이>의 지그에게서도, <미시간 북부에서>의 리즈에게서도 느껴졌다.

장편 못지않게 헤밍웨이스러움이 진하게 느껴지는 단편들이었다. 읽을 때마다 "아하~!!"하는 포인트가 새로 늘어갈 것 같은 작품들이다. 작가의 힘은 글의 길이에 비례하는 것이 아님을 확신하게 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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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 : 인간혐오자 미래와사람 시카고플랜 시리즈 5
몰리에르 지음, 김혜영 옮김 / 미래와사람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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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혐오자

몰리에르 (지음) | 김혜영 (옮김) | 미래와사람 (펴냄)

인간에 대한 혐오로 인한 묻지마 범죄가 기승이다. 그러나 이 혐오가 타인을 향한 것인지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인지 구분하지 못해 원인 없는 결과로 보여질 때가 많다.

"똥 묻은 개가 재 묻은 개를 나무란다"고 하고 "제 눈에 들보는 못 보면서 남의 눈에 티끌은 커보인다"고 했던가.

타인의 위선과 가식을 혐오하며 자신의 솔직함을 남다름으로 내세우는 인물 알세스트를 보며 그 안의 수많은 '나'와 '너'를 보았다. 흔히들 말하지 않는가. "난 너희와 달라."라고. 그러나 정말 다를까?

살롱의 여주인 셀리맨의 주위에는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구애자들이 넘쳐난다. 매력 넘치는 미모의 20대 미망인인 셀리맨에게 인성까지 바라면 큰 욕심이었을까? 여러 구애자들 중 그 어느 누구에게도 확답은 주지 않으면서 이른바 어장관리를 하는 이중성은 그녀가 쓴 비밀편지가 드러나며 폭로되고 만다. 이 사람에게는 저 사람의 험담을 하고, 저 사람에게는 이 사람의 험담을 하며 험담 돌려막기로 떠나려는 남심을 붙잡고 모든 남자의 마음을 다 가지려는 셀리맨의 욕심은 같은 여자가 보기에도 '영 아니올시다'이다.

알세스트를 존경한다며 친구가 되고 싶다던 오롱트도 위선과 가식에서 자유롭지 않다. 왕에게 인정받는 자신이 알세스트에게는 인정받지 못하고 조롱당하자 존경한다며 추켜세우던 온갖 감언이설과 달리 그를 고소하기에 이른다. 진실이 무엇이든간에 듣고싶은 말만 듣겠다는 벽창호가 따로없다.

사람들의 가식과 위선을 혐오하며 자신의 솔직함을 강조하는 알세스트는 과연 다를까? 셀리맨의 젊음과 미모에 현혹되어 자신을 선택해달라며 사랑을 강요하는 알세스트는 셀리맨에 비해 나이도 많고 아름답지도 않은 아르지노에의 호감은 단칼에 쳐낸다.

솔직함은 단점보다 장점이 되는 경우가 많긴 하다. 하지만 솔직함과 말로 하는 폭행은 엄연히 다르다. 칼에 베인 상처는 아물지만 말에 베인 마음의 상처는 좀처럼 아물지를 않는다. 몸에 난 상처는 흉터를 남기지만 마음에 난 상처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다.

"난 뒤끝이 없어", "난 원래 이래", "난 쿨해" 라고 하면서 타인의 마음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말을 여과없이 내뱉는 사람들이 있다. 그게 진짜 솔직함일까? 알세스트는 솔직한 것이 아니라 단지 거만할 뿐이다. 알세스트의 곁에서 조언을 해주는 친구 필랭트의 말을 조금이라도 귀기울여 들어보았다면 어땠을까?

겉치레로 예의를 차려야 하는 일은 우리가 사회생활을 크고 작게 해나가면서 늘상 있는 일이다. 그런 사회적 관습에 분노하는 알세스트의 심중에는 '이상적인 나'와 '현실의 나'가 보이는 괴리에 대한 혐오가 있지는 않았을까. 바로 자신을 향한 험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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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 쾌락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7
에피쿠로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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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 쾌락

에피쿠로스 (지음) |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펴냄)

어떤 욕망에도 흔들림 없이 살게 하는 '아타락시아'를 누리는 길

-<에피쿠로스 쾌락> 앞 표지글 중에서

'쾌락'이라는 단어를 마주했을때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느낌이나 생각이 긍정적이지는 않다. 무분별, 무절제, 반이성적인 욕망을 한껏 머금은 냄새를 풍기기 때문이다.

'쾌락주의'하면 '에피쿠로스', '에피쿠로스'하면 '쾌락주의'로 직결되는 이 둘의 조합은 자칫 에피쿠로스에 대한 오해로 이어지기 쉽다.

에피쿠로스가 추구했던 쾌락은 이런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고통의 반대말일 뿐으로 오히려 그 안을 들여다보면 요즘 현대인들의 가치관인 무소유나 미니멀리즘, 내려놓음에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에피쿠로스가 활동했던 시기가 기원전임을 생각해보면 시대를 앞서가도 가히 혁명적으로 앞서갔다고 할 수 있다. 도시국가로서 안정된 번영기를 누리던 아테네가 쇠퇴하고 혼란기에 접어들면서 실존주의적인 철학이 필요했던 시기와 에피쿠로스의 활동기가 맞물린것도 신의 한 수라 할 수 있겠다.

에피쿠로스는 데모크리토스의 자연철학을 토대로 한 유물론자였기 때문에 인간의 영혼과 신도 물질적인 존재로 보았다. 인간이 느끼는 두려움 중에서 가장 큰 두려움인 죽음에 대해서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 하는 인간들이 종교에 의지하고 신을 숭배하는 모습은 식상하리만치 흔하다)

p109. 우리가 존재하는 동안에는 죽음은 우리에게 오지 않고, 죽음이 우리에게 왔을 때는 우리는 이미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저당잡히는 삶이 아닌 오늘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열심히 살자는 사고방식과도 통한다. 오늘의 행복이 쌓이면 어제의 내일이었던 오늘이 계속 행복할 것이니.

에피쿠로스는 모든 고통과 두려움에서 벗어난 상태를 최고의 쾌락이라 하고, 쾌락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아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추구하였으니 오늘날 우리가 쾌락이라고 부르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고통과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과연 가능할까? '아타락시아'(마음이 두려움에서 해방되어 평정한 상태)와 '아포니아'(몸 고통의 부재)를 위해서는 우선, 자유가 있어야 한다. 욕망으로부터의 자유가. 작은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마음, 이것이 현대인들이 추구하는 마음 비우기와 무소유, 내려놓음에 통한다.

몸의 고통은 현재적이지만 마음은 과거 일과 현재 일과 미래 일에서 고통을 느끼므로 마음의 쾌락이 몸의 쾌락보다 더 크다고 보았던 에피쿠로스의 쾌락은 우리가 요즘 시도때도없이 소망하는 '힐링'과도 유사하다.

읽어볼수록 요즘의 우리에게 필요한 철학이 아닌가 싶다.

가져도 더 가지려 하는데서 오는 마음의 고통과 그에 따르는 몸의 고통은 만족을 모르는 욕망에서 비롯된다.

쾌락은 자극적인 것이 아니라 작은 것에 만족하고 감사할 줄 아는 평정심에서 오는 것임을 기원전 철학자 에피쿠로스에게 배우는 뜻깊은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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