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킬리만자로의 눈 ㅣ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2년 11월
평점 :
킬리만자로의 눈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 이정서 (옮김) | 새움 (펴냄)
"바른 번역"이라는 슬로건으로 고전 문학의 직역에 힘주는 새움에서 이번에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단편들을 묶어 내놓았다.
"엷게 펼쳐놓기보다는, 항상 졸인다.", "내용의 8분의 1만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헤밍웨이의 말은 단어 하나하나에 함축되고 은유하는 것들이 많음을 시사하고 있다. 수록된 6편의 단편 중 5번째 단편 <혁명가>는 3페이지 분량으로 가장 짧다. 그래서인지 가장 이해가 어려운 단편이었다. 인상깊게 남은 것은 책제목으로도 쓰인 <킬리만자로의 눈>과 <빗속의 고양이>다. 수록 단편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허무와 외로움이었다.
<킬리만자로의 눈>에 등장하는 해리의 인생은 목적없는 허무가 짙게 깔려있다. 돈 많은 여자들을 유혹해 얹혀살며 인생을 즐기던 그의 삶은 제대로 소독하지 않은 작은 상처가 덧나며 죽음에 이르는 허무 그 자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많은 경험을 하고 살아온 해리는 언젠가는 쓰게 될 소설의 글감으로 그 경험들을 모아두지만 결국 쓰지 못했다. 진실보다 거짓말로 여자들을 유혹하며 살아온 삶이, 쓰고 있지 않은 매일 매일이 안락했기에 다시 쓰고자하는 의지를 꺾고 스스로를 경멸하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왜 악마가 되려 하냐'는 헬렌의 질문에 해리는 대답했다. "나는 어떤 것도 남겨두고 싶지 않아. 뒤에 남겨두고 싶지 않다고. (본문26페이지)"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찾은 아프리카에서 썩어가는 다리로 인해 다가오는 죽음을 대하는 해리의 태도는 연인 헬렌을 향해 "나는 오늘 죽을 거야."라고 말하며 무심한 듯 가벼워 보인다. 침대 발치에 내려 앉았다가 가슴 위에 얹혀져 숨 쉴 수 없도록 조여오는 무게감으로 죽음을 묘사한 헤밍웨이의 표현은 압권이다.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는다면 밤사이 해리는 죽음을 맞았고, 콤프턴의 방문은 죽음 이후의 해리의 상상인 듯 하다. 그 상상속에서 보게 된 킬리만자로의 눈 덮인 정상, 자신이 가고 있는 곳이라 깨달은 그 곳에 소설의 시작에서 언급된 표범의 설명할 수 없었던 죽음과 목적없던 삶을 살았던 해리의 죽음이 교차된다.
<빗속의 고양이>에 등장하는 여자는 미국인 아내로만 지칭될 뿐 그녀의 남편 조지처럼 이름도 주어지지 않는다.
머리를 기르고, 가르랑거리는 새끼 고양이를 갖고 싶고, 자신만의 은식기로 밥을 먹고 싶은 그녀의 바램은 한 곳에 정착하고 싶은 마음과 남편 조지에게 관심받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의 표현일 것이다. 바램을 얘기하는 아내에게 '입 다물고 뭐라도 읽으라'는 남편의 무관심에 그녀가 느꼈을 외로움이 전해졌다. 비가 내리는 밖으로 새끼 고양이를 데리러 가는 그녀에게 우산을 씌워줄 생각을 한 것도, (소통의 문제로 원했던 새끼 고양이 대신 커다란) 고양이를 안겨준 것도 남편 조지가 아닌 호텔 주인이었다. 그녀가 느꼈을 외로움은 <빗속의 고양이> 뿐만 아니라 <흰 코끼리 같은 산등성이>의 지그에게서도, <미시간 북부에서>의 리즈에게서도 느껴졌다.
장편 못지않게 헤밍웨이스러움이 진하게 느껴지는 단편들이었다. 읽을 때마다 "아하~!!"하는 포인트가 새로 늘어갈 것 같은 작품들이다. 작가의 힘은 글의 길이에 비례하는 것이 아님을 확신하게 된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