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윤정 옮김, 무라카미 요오코 사진 / 문학사상사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테마여행 위스키의 고향 아일랜드를 향해

 무라카미 하루키의 테마가 있는 여행.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로의 그의 테마는 바로 위스키다. 아일랜드인들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위스키. 섬을 떠났어도 언젠가는 위스키를 찾아 다시 돌아오는 아일랜드인. 그들에게 위스키는 조상이며 그들의 현 삶 자체이다.

 

 

                                                                          
스트레이트 위스키로 축배를

아일랜드는 사람을 느긋하게 만든다. 급할 것이 없는 세상살이다. 내 고향의 하늘을 한번 더 보는 것이 행복이고 내 고향의 바다와 들의 냄새를 맡는 것이 기쁨이며 나의 단골 바에서 나만의 위스키를 음미하듯 마시며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것이 인생이다.

한 사람이 가면 위스키로 먼 길 떠나는 이를 배웅하고 한 생명이 태어나면 위스키 한잔으로 축배를 든다. 위스키는 아일랜드인들의 춥고 허전한 마음엔 따뜻한 온기를 불러일으키고 기쁨과 은혜로 가득찬 마음엔 진정과 감사의 꽃을 심어준다.

결코 하루키는 아일랜드 여행지에서 서두름을 보이지 않는다. 빨간색 오픈카가 천천히 해안도로를 달리듯 하루키는 아일랜드의 느림과 여유로움을 아낌없이 풀어놓는다. 하루키가 위스키를 홀짝이면 술을 먹지 않는 사람들도 그 위스키의 맛이 궁금해지고 아일랜드풍의 바에 있기를 간절히 원하게 된다.
 



하루키와 떠나는 아일랜드 여행에 결코 후회는 없을 것이다. 코 끝을 톡하고 건드리는 위스키의 손길은 아일랜드의 매력에 푹 빠뜨릴 것이고 섬을 둘러싸고 있는 갯냄새나는 바다 바람은 여행자들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줄 것이다.

눈을 감으면 이 여행은 바로 시작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래의 여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5
아베 코보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8월 어느날 한 남자가 행방불명된다. 사람들이 북적대는 세상에서 한 남자의 실종은 그리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시끄럽게 신문 1면을 장식했던 사건이라도 약간의 시간만 지나면 사람들에게 그 일은 금방 잊혀지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사건의 당사자에겐 억울한 일이 아닐까. 하지만 그도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당사자도 그 이후의 생활에 적응해나가기 때문이다.

투철한 애향심으로 똘똘 뭉친 조합사람들이 남자를 모래 구멍 속에 빠뜨렸다. 구멍 속의 모래를 파내지 않으면 남자와 여자는 영원히 모래 속에 갇혀버린다. 남자는 자신이 모래 구멍속에서 모래를 파내야하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 남자에겐 자신의 능력에 맞는 일을 할 권리가 있다. 어느 누구도 그런 남자의 권리를 박탈할 수는 없는 것이다. 세상의 어느 누구도.

자신을 함정에 빠뜨린 노인은 남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어차피 2박 3일의 실종을 원하지 않았느냐. 당신 스스로 세상에서 없어지길 원했다." 하지만 남자에게 있어 노인의 이런 말들은 억지일 뿐이다. 남자의 노동력을 착취하려는, 부락의 생존을 위한다는 명목 아래 부락 사람들의 의지와 자유를 박탈하는 터무니없는 음모일뿐이다. 함정과 음모에서 벗어나려는 남자의 시도들은 영화 속의 주인공들처럼 철저하지도 그렇다고 운도 따라주지 않는다. 남자의 모든 시도들의 끝은 언제나 모래 구멍 속이다.

남자는 인내를 선택한다. 인내는 패배가 아니다. 오히려 인내를 패배라고 느끼는 순간부터가 진정한 패배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남자의 인내가 적응처럼 느껴지는 것은 무엇인가. 남자의 인내는 새로운 현실에 대한 적응이고 위안이자 생활의 시작이 되어 버렸다.

사람은 자신들의 생활에 적응하면 곧 새로운 현실을 꿈꾼다. 그러면서 또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고 또 그 현실에 만족하지 못한 체 또다른 현실을 꿈꾼다. 내 몸에 소금기 가득한 모래가 붙는다면 그 모래들을 깨끗하게 털어내는 일은 그리 쉽지 않은 것처럼 나의 현재가 어딘가 떨떠름해도 그것은 내가 만들어 온 현재이기에 나는 결코 그 현재에서 자유롭지 못함은 당연하다. 깨끗하게 모든 걸 털어내버리고 내가 동경하던 미래에 있더라도 그 미래속에서 나는 또 석연치 않은 까슬함을 느낄 것이며 또다른 것을 동경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일인의 사랑 Classics in Love (푸른나무) 1
막스 뮐러 지음, 윤경훈 옮김 / 푸른나무 / 2000년 7월
평점 :
절판


'나'의 기억은 여덟편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 여덟편의 기억중에서 '마리아'에 대한 기억이 '내'사랑의 전부이다. 어린시절 '나'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처음 성에 갔으며 그곳에서 '나'는 후작부인의 딸 '마리아'를 만난다. 병에 걸린 '마리아'의 생명은 바람 앞의 촛불같다.

'나'와 '마리아'는 서로에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게 된다. 이 두 사람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기에 그 사랑의 감정은 더 애잔하고 숭고하기만 한데 더욱이 '마리아'의 짧은 유한적 생명때문에 이 둘의 사랑은 더욱 아름답게만 느껴진다. 결국 '마리아'는 세상을 떠나게 되지만 '나'의 가슴속엔 '마리아'와의 사랑이 영원처럼 남게된다.

이 이야기의 기둥은 아주 굵직하고 간단하다. '신분차이, 시한부 여자와의 사랑' '하늘이 두쪽나도 맺어질 수 없는 사랑' 어찌보면 너무나도 판에 박힌 쉽게 예상 가능한 설정이다. 하지만 '독일인의 사랑'을 읽고 어느 누구도 '나'와 '마리아'의 사랑이 유치하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그들이 자신의 사랑의 감정을 깨닫고 키우고 확인하고 믿는 과정이 순수하고 전혀 다른 이유가 없기에 그들의 사랑이 유치함보다는 낭만적으로 다가온다.

요즘의 초물질, 스피드시대에 어쩌면 '낭만'이라는 단어는 사치며 단순히 악세사리 정도로 치부해버리는 것이 편할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자신의 사랑이 순수하고 영원하길 바라면서도 그 사랑이 이익을 낳지 못하면 사랑보단 현실을 먼저 찾는 우리에게 '독일인의 사랑'의 '나'와 '마리아'는 현실에서 '내'가 이루어 볼 수 없는 사랑의 위로가 되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제의 세계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곽복록 옮김 / 지식공작소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순전히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기억력에 의존하여 씌여진 글이다. 자연스레 어느새 유럽의 촉망받는 작가라는 이름을 얻은 츠바이크는  가장 비인간적이고 폭력적인 시대를 살아야 했다.  철저한 자유주의자이자 평화주의자였던 츠바이크는 이 무질서하고 난폭한 세상의 칼날을 피할 수도 없었으며 세상의 서릿발 같은 칼을 받아치기에 그 자신의 방패는 너무나 약했다.

문단에 츠바이크 자신의 이름을 올린 후 수많은 예술가, 철학자들과 교류하면서 때론 그들에게서 자신의 미래의 모습을 찾기도 하고 그들의 숭고한 예술에 대한 열정을 배우기도 하였다. 자신의 그들과의 교감에 대한 추억 저편을 여행하면서 남긴 이 글은 지금의 독자들에게 그 당시의 정열적인 예술가, 철학자들과 관계를 맺을 기회와 그들 옆으로 한걸음 다가서는 것을 가능케 하였다.

놀라운 것은 이 책의 방대한 분량의 글들이 참고할 수 있는 자료 없이 순전히 츠바이크의 기억력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츠바이크 자신이 누구를 만났으며 만난 시기는 언제이며 그때의 느낌은 어땠는지 아주 상세히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어 이러한 글들이 과연 그의 기억력의 승리라는 것이 쉽게 믿어지지 않는다. 이런 생각들을 하다보면 그당시 작가의 심정이 약간은 이해가 된다. 돌아가려해도 돌아갈 수 없는 추억의 장소를 먼 타국의 땅에서 자신의 옛 시절, 친구, 가족들을 생각하는 가슴 저린 작가를 느낄 수 있다. 그렇기에 작가는 좀 더 자신의 기억이 세밀하길 바랐을 것이다.

츠바이크 자신은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글이 완성되길 원한것이 아니라 한 시대가 주인공인 시대의 전기가 완성되길 바랬다.  그 시대의 時生이 너무나 사연이 많고 기구했기에 작가의 기교가 없더라도 그 시대의 아픔과 시대속의 지성인들의 아픔이 전해진다.

내가 살았던, 살아가고 있는, 살아갈 나의 시대는 과연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더 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 낼 것인가. 나의 세월, 시대가 가슴아픈 추억이 아닌 아름다운 추억을 가지길 바란다. 또한 이 시대의 사람들 또한 그러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입니다 삶과 전설 1
부사령관 마르코스 지음, 주제 사라마구 서문, 후아나 폰세 데 레온 엮음, 윤길순 옮김 / 해냄 / 2002년 3월
평점 :
품절


하지만 난 당신이 누구인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얼굴을 본 적이 없습니다. 괜찮습니까? 당신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괜찮단 말씀입니까? 귀기울이고 눈으로 당신의 말을 읽으면 된다고 하시니..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나는 사파티스타 부사령관 마르코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를 혁명가라고 하지만 난 혁명가가 아닙니다. 난 당신이 보고 있는것처럼 스키마스크를 쓴, 양어깨엔 총알띠를 멘, 손엔 총을 든,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반란자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들, 즉 치아파스 원주민들의 저항사를 들어보시겠습니까? 잘 들어주십시요. 자 이제부터 그들, 굴욕과 멸시를 당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아! 하지만 이건 잊지 마십시요. 이세상에서 굴욕과 멸시를 당하는 사람들이 단지 치아파스 원주민만이 아니라는 것을요. 치아파스 한편엔 멕시코 정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가면을 쓴 세계 전체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요."

.

.

.

.

.

"제 나이는 518살입니다. 아! 지금은 세월이 흘러 몇 살 더 먹었지만... 후후~~ 제 이야기를 잘 들으셨다면 제가 말한 문제들이 한 집단이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란걸 아시겠지요. 제 앞에 있는, 치아파스 원주민의, 굴욕과 멸시를 당하는 이들의 문제는 바로 나의, 당신의, 우리의, 세계의 문제들입니다. 내가, 당신이, 우리가, 세계가 함께 관심을 기울여 헤쳐나가야 합니다."

"나의 멕시코가, 당신이 사는 곳이, 세계 어느 곳이든 해방되는 날 나는 당신에게 나의 얼굴을 보일 것입니다. 일반시민은 안중에도 없고 이윤만을 추구하는 정부들이 그들의 가면을 벗는 날 나의 가면도 벗겨질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