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의 여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5
아베 코보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8월 어느날 한 남자가 행방불명된다. 사람들이 북적대는 세상에서 한 남자의 실종은 그리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시끄럽게 신문 1면을 장식했던 사건이라도 약간의 시간만 지나면 사람들에게 그 일은 금방 잊혀지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사건의 당사자에겐 억울한 일이 아닐까. 하지만 그도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당사자도 그 이후의 생활에 적응해나가기 때문이다.

투철한 애향심으로 똘똘 뭉친 조합사람들이 남자를 모래 구멍 속에 빠뜨렸다. 구멍 속의 모래를 파내지 않으면 남자와 여자는 영원히 모래 속에 갇혀버린다. 남자는 자신이 모래 구멍속에서 모래를 파내야하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 남자에겐 자신의 능력에 맞는 일을 할 권리가 있다. 어느 누구도 그런 남자의 권리를 박탈할 수는 없는 것이다. 세상의 어느 누구도.

자신을 함정에 빠뜨린 노인은 남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어차피 2박 3일의 실종을 원하지 않았느냐. 당신 스스로 세상에서 없어지길 원했다." 하지만 남자에게 있어 노인의 이런 말들은 억지일 뿐이다. 남자의 노동력을 착취하려는, 부락의 생존을 위한다는 명목 아래 부락 사람들의 의지와 자유를 박탈하는 터무니없는 음모일뿐이다. 함정과 음모에서 벗어나려는 남자의 시도들은 영화 속의 주인공들처럼 철저하지도 그렇다고 운도 따라주지 않는다. 남자의 모든 시도들의 끝은 언제나 모래 구멍 속이다.

남자는 인내를 선택한다. 인내는 패배가 아니다. 오히려 인내를 패배라고 느끼는 순간부터가 진정한 패배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남자의 인내가 적응처럼 느껴지는 것은 무엇인가. 남자의 인내는 새로운 현실에 대한 적응이고 위안이자 생활의 시작이 되어 버렸다.

사람은 자신들의 생활에 적응하면 곧 새로운 현실을 꿈꾼다. 그러면서 또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고 또 그 현실에 만족하지 못한 체 또다른 현실을 꿈꾼다. 내 몸에 소금기 가득한 모래가 붙는다면 그 모래들을 깨끗하게 털어내는 일은 그리 쉽지 않은 것처럼 나의 현재가 어딘가 떨떠름해도 그것은 내가 만들어 온 현재이기에 나는 결코 그 현재에서 자유롭지 못함은 당연하다. 깨끗하게 모든 걸 털어내버리고 내가 동경하던 미래에 있더라도 그 미래속에서 나는 또 석연치 않은 까슬함을 느낄 것이며 또다른 것을 동경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