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알라딘 공지를 보니 기프트 코너는 완전 중단되고, 원클릭방문매입은 잠정 중단된다는데..


조금 불안하네요... 예전에 영화코너 없어졌을때도 굉장히 마니마니 서운했었는데 말이죠.


기프트 코너에서 사는 것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종종 다른 책 주문할때 직배송 껴서 주문하면 편했는데 말입니다. 


좀 먼가 아쉽... 


생각해보면 너무나 오프라인 중고샵에만 매달리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도 드네요. 


얼마전에 '크레마'광고를 보고 예약부터 손에 넣기까지 네다섯번의 멘붕을 겪긴 했지만, 크레마 무난히 잘 쓰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이북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일단 손에 들고 사용하다보니 이북시장의 치열함도 보이더군요. 물론 한쪽에서는 별로 관심없어라하는 곳도 있지만요. 


어쩄든.. 거의 알라딘만 이용하고 있는데(물론 책을 많이 사진 않지만..) 좀 씁쓸하기도 하고.. 먼가 획기적인 것이 나올것인가하는 기대감도 좁쌀만하게 들기도 합니다. 


참...크레마로 알라딘 서재글들을 보니 글 읽는 맛이 나더라구요. 크레마속 인터넷 브라우저로 들어가는 것 말고, 크레마의 (알라딘) 서점 메뉴로 들어가 보면 알라딘 서재글은 보기 편하게 되있더라구요. 예전에는 서재글도 대충 대충 읽었는데.. 역시나 전자잉크라 그런지 신문보는 느낌으로 다른 분들 글을 정독하게 되더라구요. 그런데..알라디너분들 그렇게 글잘쓰는줄 몰랐어요. 아니 알긴 알았지만.. 요즘 정독을 하며 느낀것이 다들 문예창작과 나온 느낌? 


제 블로그도 완전 가동 중지 되었었는데..요즘 알라딘 서재글들을 보니 다시한번 나도 뭔가를 올려 보고 싶다는 야망(?)이 불끈.. 


그래서 알라딘의 일부 서비스 중단으로 든 알량한 생각을 부풀려 이렇게 어거지로 글을 써보았습니다.


ps.. 1. 서점 문어발 고객은 귀찮아서 싫은데.. 일단 기프트 없어지면.. 다른곳도 더불어 이용할지도...

      2. 글쓰다 보니 아래..무슨 '투표넣기' 기능도 있군요. 이런거 언제 생겼지? 

      

      ** 기프트 코너 중단에 대한 투표..(하루간..별다른 의미는 없지만..기간을 약간 늘려 일요일(23일)까지) .. 

      


투표기간 : 2012-09-21~2012-09-24 (현재 투표인원 : 12명)

1.없어지면 절대 안돼~~ (ㅠㅠ)
100% (12명)

2.없어져도 크게 상관없음~~ (ㅡㅡ").. 쿨한데..
0% (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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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크 2012-09-25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투표해주신분들 감사드립니다...
 

  작년에 브라이언 그린의 신작이 아마존에서 소개된 것을 보고 오매불망하였으나 막상 우리말로 번역되어 책이 나오니 다른 책들에 밀려 구입이 계속 미루어진다.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몇 권의 우주론 관련 서적을 읽었기에 구입은 조금 뒤로 미뤄질 듯 하다. 

  신작 원제는「The Hidden Reality」이고 번역본 제목은「멀티 유니버스」. 번역서 제목이 조금 불만족스럽다. 영어에서 유니버스 단어 자체가 복수형을 인정하지 않을듯 하지만 유니버스는 복수형이 가능하고 코스모스가 복수형이 불가다. 따라서 '멀티 유니버시스'가 맞겠지만, 우리글로 그대로 옮기면 더욱 이상해져서 이것저것 절충을 하여 '멀티 유니버스'로 나온듯 하다. 사실 이보다는 '멀티버스 multiverse'를 더욱 많이들 쓰지만 일단 '유니'가 들어가야 우주론관련 서적인줄 알지 '멀티버스'라고만 한다면 자기계발서부터 컴퓨터 전공서적(-verse를 -bus로 읽는다면...)까지 추정 범위가 넓어질듯 하다. 아마 과학서적, 특히 우주론 관련 이야기를 많이 접해보지 않은 독자까지 고려하지 않았나 혼자 추정할 뿐이지만 조금 아쉽기도 하다(멀티버스와 같은 말로 메가버스나 멀티 유니버시스 등이 있다).

  책을 읽어보지 않아 Reality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언급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숨겨져 있다는 단서에서 몇 가지 것들을 떠오르게 한다. 일단 인간의 눈으로는 절대 볼 수 없는 것일테고, 또한 보이지 않는다고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마 이마저도 인간의 감각을 총동원한다 하더라도 알아채기 쉽지 않은 것일테다. 

 자연과학 책, 특히 우주론 관련 책은 읽어도 읽어도 별 진전이 없다. 몇 권을 보았든지간에 공간이 어쩌고 시간이 어쩌고 하면 머리가 팽팽 돈다. 글을 읽고 머리속에서 문맥을 이해하려 해보지만 쉽지 않다. 누군가는 과학을 그림으로 그려가면 (수식보다도) 이해하기 쉽다고는 하지만, (다이어그램으로 유명한) 파인만이나 펜로즈를 어찌 따라잡을 수 있겠는가. 그래도 다양한 책들을 보며 개념이 같은 부분을 이 책에서는 어떻게 썼고, 저 책에서는 어떻게 옮겼는지만 보는것으로 만족해야 할듯 싶다. 어쩌다 좋은 책 만나면 그 부분의 이해도가 약간은 진척이 있을 테고. 혹 없어도 무슨 상관?

'없음' 그리고 무(無), 진공

숨겨진 실체, 또는 보이지 않는 실체하면 가장 대표적인 것이 '없음'이다. 

_마커스 초운, 「현대과학의 열쇠, 퀀텀 유니버스」, 마티
 
* 74쪽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를 재구성해 보면 입자의 에너지와 그것이 존재했던 시간의 양을 동시에 측정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요컨대 우리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특정한 빈 공간에서 일어나는 사태에 주목한다면 그 공간의 에너지 내용에 커다란 불확실성이 존재할 것이다. 다시 말해 에너지가 무(無)에서 출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질량은 일종의 에너지이다. 그러니 질량 또한 무에서 출현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질량이 아주 짧은 시간 동안만 존재했다가 다시 사라진다는 단서가 붙기는 한다. 마치 사물이 무에서 출현하는 것을 막는 자연 법칙이 아주 빨리 잠깐 동안만 일어나는 사태는 못 본 체하는 것 같다.

비록 아무것도 없게만 보이는 공간이지만,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에 따라 순간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에너지 파동이 존재하고, E=mc^2에서 보여지듯이, 에너지는 질량의 또 다른 이름이므로 '없음'의 공간 밖으로 질량을 지닌 알갱이들이 튀어나온다는 얘기다. 이 얼마나 정갈하고 깔끔한 말인가. 우주의 근본이 무(無)의 상태에서 출발한다는 하나의 논리가 세워진 것이다. 이런 양자가 파동을 일으키는 상태, 그러니까 '양자 진공'에서 나타나는 에너지를 '진공에너지'라 한다. 

  현재의 기술로도 완벽한 진공은 어렵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입자의 수가 희박하다는 진공을 의미한다기 보다는 여기에서는 에너지가 깃들여있는 진공이라 여기면 된다.이를 검증한 것으로는 '카시미르 효과(혹은 힘) Casimir effect(force)'가 유명한데, 진공속에 두 개의 대전되지 않은 금속판을 아주 가까이 놓았더니 이 금속판들이 서로 끌어당기더라는 것이다. 1948년에 네덜란드 물리학자인 헨드리크 카시미르가 제안을 했지만 기술적 문제로 1997년에야 실험을 하였다 한다. 이 실험의 의미를 역으로 생각해보면, 우리가 아주 어렵사리 정말 텅 빈 공간, 진공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그 공간에는 숨겨진 에너지가 존재하며, 이는 양자적인 어떤 힘이 꾸준히 관여한다는 의미가 된다. 이 양자적 어떤 힘을 '양자 떨림 (혹은 요동) quantum jitter'라고 한다. 이 양자 떨림을 통해 튀어나오는 입자를  '가상 입자(virtual particle ;  생존기간lifetime이 아주 짧은 입자)'라 부른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끈이론은 어떤 진동은 A라는 입자를 만들고, 또 다른 진동은 B라는 입자를 만든다는 이론이다. 또 초끈이론은 A와 B가 대칭이되는 입자일 수 있는데, 여기에서 입자의 대칭이란 페르미온과 보존 입자들을 가리킨다. 즉 물질에 짝이 되는 물질이 있다는 의미이다. (여기에서는 초대칭은 넘어가겠다.)

 
 질량을 가진 입자가 생성되었다면, 이는 시공간이라는 자리를 깔았다는 뜻이다. 시간은 사실 인간의 관념이다. 왜냐하면 절대로 측정 불가하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지. "시계가 측정하는 것이 바로 시간이다"라고.) 태양과 지구의 거리가 다르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은 전혀 다른 관점으로 느껴질 것이다. 시간과 공간은 서로 상대적이라서 아인슈타인은 시간을 공간과 묶을 수 있었다. 시공간(spacetime)이라는 개념으로 퉁쳤다. 지구에 있는 우리는 그래서 시공간속에 있고, 이 시공간은 너와 나의 각자의 개념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 내 시간 다르고 니 시간 다르다는 의미. 내가 아주 빨리 이동한다면 공간은 단축되겠지만 그 보상으로 시간은 연장된다(같은 의미로 공간의 수축과 시간의 팽창이라고도 한다). 따라서 엄청 빨리 움직이면 시간이 더욱 늦어져 우리는 젊어지는 것이다. 아니 그만큼 천천히 시간은 흐른다. 그 예가 쌍둥이 패러독스이다. 어쨌든 시간과 공간은 한통속이라는 것.

인플레이션

  멀티버스는 사실 이론이 아니다. 그냥 추측이고 가설일 뿐이다. 따라서 이 개념에 대항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아까 진공에너지 이야기를 하였는데, 이 진공에너지는 사실 우주의 시작과 관련이 있다. 물질의 탄생, 그래서 질량에 대응하는 공간이 만들어지고, 시간이 만들어진 이러한 시작이라는 개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인플레이션 이론이다.  


 _마르틴 보요발트,「빅뱅 이전」, 김영사 

* 235쪽
처음에는 물질을 포함하지 않고 있던 진공상태가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는 동안 점점 더 많은 입자들로 채워지는 것이다. 

우주론에서 이것은 빅뱅의 완전한 진공상태가 인플레이션이 진행되는 동안 그대로 남아 있지 않고 물질로 채워지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중략)...


* 236쪽
입자의 창조는 다음과 같이 일어난다. 다른 상태와 마찬가지로 팽창하는 우주에서 물질의 진공상태도 요동을 친다. 모든 입자의 수는 평균적으로 0이지만-따라서 진공상태라고 할 수 있지만- 정확히 말하면 그렇지 않다. 요동은 전자의 파동함수 위치가 평균적으로만 정확하게 결정되는 것과 비슷하다. ...(중략)... 그러나 우주의 팽창은 역학에서의 유효 힘처럼 물질의 파동함수에 의해 결정되는 입자의 수에 양자 요동이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략)... 
초기 뜨거운 우주는 식어가기 시작하는데 온도가 낮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에너지가 떨어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그렇게 잘 떨어지다가 한 순간에 에너지가 요동을 친다. 언덕에서 돌을 굴렸는데 그대로 쭉 (최소에너지를 향해서) 미끄러져 내려와야한다. 그런데 잘 내려오다가 삐죽 나온 바위에 걸려 굴린 돌이 일순간에 튀어 오른다. 이때 에너지는 변화를 겪는다. 순간 인플라톤장(팽창할 수 있는 음압을 만들어낸다. 이땐 중력이 척력으로서 작용한다)이 그 작은 공간에 퍼지고 그러다가 우주가 인플레이션-단순히 팽창이라면 영어로 expansion이지만, 이때의 팽창은 우리말로는 급팽창이고, 영어로는 말 그대로 inflation이다-이라는 하나의 작용을 하기 시작하여 그 짧은 시간에 공간이 급격히 팽창이 되어 지금의 우주(물질로 채워진)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때 거의 진공상태이지만 돌부리에 걸려 에너지가 요동을 치게 한 그 상태를 '가짜진공'이라 말한다. 곧 이 가짜진공은 바닥상태의 진공상태로 떨어지지만, 가짜진공 상태의 시간이 얼마냐 길었느냐에 따라 지금의 우주를 만들게한 충분한 팽창이 있느냐로 수렴된다. 그 지연된 기간이 충분히 길었기에 지평선 문제, 평평성 문제, 자기홀극 문제를 극복했다고 본다. 

  _브라이언 그린,「우주의 구조」, 승산 

* 580쪽
정확한 관측데이터가 점차 많아지면서 관측결과와 일치하지 않는 이론들은 사라졌고, 지금은 인플레이션 우주론이 가장 유망한 후보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10장에서 지적한 대로 인플레이션이론은 단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우주론학자들은 다양한 형태의 인플레이션이론들을 제시해 왔는데(구형old 인플레이션, 신형new 인플레이션, 고온warm 인플레이션, 혼합hybrid 인플레이션, 하이퍼hyper 인플레이션, 원조assisted 인플레이션, 영구eternal 인플레이션, 확장extended 인플레이션, 혼돈chaotic 인플레이션, 이중double 인플레이션, 약한weak-scale 인플레이션, 초자연hypernatural 인플레이션 등), 우주가 초기에 급속한 팽창을 겪었다는 점에서는 모든 이론이 일치하고 있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많은 차이를 보인다.
 인플레이션 이론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여러개 있다. 따라서 어떤 인플레이션 이론을 채택하냐에 따라 수많은 우주를 만들어 낼 수 있고, 따라서 멀티버스 개념을 불러 올 수 있다. 특히 '혼돈chaotic 인플레이션'은 바닥상태로 붕괴되지 않는 진공(가짜진공)을 만들어 냄으로써 그 거품의 진공으로부터 수많은 우주를 자라게 한다는 이론이다. 그 거품 중 하나가 바로 우리의 우주이다. 또한 그렇게 생긴 우주는 또 다시 어느 공간에서 다시금 인플레이션을 진행시키는데 또 다른 자손우주들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영구히 증가하는 모델을 영구eternal 인플레이션이라고도 한다. 혼돈 인플레이션은 영구 인플레이션 중 하나이다.

 우주의 암흑 에너지는 하나의 예측이다. 그럼 이것을 기존에 알고 있는 무엇과 대응시키고 싶어할까. 그것은 앞서 말한 진공에너지이다. 그래서 주된 의견 중 하나가 진공에너지는 암흑에너지일 수 있다는 가설이다. 그런데 이 암흑에너지는 상당히 재미있다. 우주의 팽창을 야기한다고 그랬는데, 먼 물체일수록 더 빠른 속도로 가속한다는 것은 우리의 인식으로는 이해가 가질 않는다. 무슨 말이냐면, 내 1m앞에 A라는 물체가 있는데 1초 후에는 나를 기준으로 1m 더 멀어진다는 거다. 사실 나와 A라는 물체 기준으로 서로를 향해 1초당 0.5m씩 멀어지는 것이다. 우주의 팽창(expansion)은 고정된 기준점이 없고 각 기준으로 우주 곳곳에서 그냥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B라는 물체가 나보다 10km더 멀리 있다면 1초 후에 10km+1m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같은 비율로 1초 후에 10km로 벌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멀리 있는 물체일수록 단위 시간당 더 벌어진다. 이것이 팽창이론의 기본 개념이다.

  우주를 얘기할 때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관측 가능한 우주와 그렇지 않은 우주. 관측 가능한 우주의 끝을 지평선이라 부른다. 이 지평선 너머는 도저히 관측할 수 없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다시 어린애들과 같은 유치한 상상력을 부여한다. 지평선 너머의 우주는 우리의 우주와 같이 동작할까?

  그렇다고 보는 과학자들은 멀티버스를 얘기하고, 그렇지 않다고 보는 과학자들은 멀티버스 같은 것은 없고 똑같이 우리 우주 법칙을 따른다고 반박한다. 물론 나는 지금 멀티버스를 얘기하므로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얘기해야 한다. 이제부터는 말 그대로 상상이다.  


  파동함수

 
  죽었니? 살았니? 라는 슈뢰딩거의 고양이에 대한 개념은 양자역학의 가장 기본이 되는 'AND'로직이다. 물론 이 경우에는 '살았고, 죽었고'로 대변되지만. 굉장히 번뜩이는 아이디어인데 문제는 고양이에게만 초점이 맞춰진다는 것이다. 고양이의 상태를 본다는 관찰자의 관찰자체가 살아있다와 죽었다의 최종 상태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인데, 관찰자의 존재는 또 다른 관찰을 불러일으킨다. 따라서 관찰자를 본 제2의 관찰자, 또 그 관찰자를 본 제3의 관찰자가 계속 다단계처럼 나와주어야한다. 물론 샘솟듯 나오는 것도 괴로운일이다. 따라서 고양이에 대한 파동함수의 붕괴(죽었다는 파동함수가 붕괴되면 고양이는 살아있고, 살아있는 파동함수가 붕괴되면 고양이는 죽어있다라는...)를 고려하면 관측자의 붕괴도 같이 고려되어져야 하는(왜냐하면 물리법칙은 고양이든 관찰자든 같아야 하므로 다른 관찰자가 보면 그 전의 관찰자의 파동함수도 붕괴되어야 한다) 문제에 이르는 것이다. 그래서 이 문제를 우회하려는 하나의 해법으로 휴 에버렛 3세는 파동함수가 붕괴하지 않고 갈라진다는 역발상을 편다. 이게 바로 SF의 흔한 떡밥으로 우리에게는 다른 멀티버스 이론보다 매력적으로 들린다. 즉 내가 대통령인 우주도 있고, 또 거지인 우주도 존재한다는 내용이다. 물론 나의 우주에서는 안타깝게도 거지에 가깝지만. 상자를 열어 관찰자가 고양이가 죽어있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파동함수는 갈라져 살아있는 고양이는 알 수 없는 우주에서 잘먹고 잘살수 있다는 얘기다(이와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이 휴 에버렛 3세의 '다중세계해석'이다. 이때 갈라진 세계는 원래 진행하고 있는 세계 옆에 존재하게 되는데, 이때의 세계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진동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와는 전혀 다른 세계로 인식하여 바로 옆에 그 세계가 있어도 서로 간섭을 하지 못한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M이론과 닮아 있다. 과학자들은 우리의 우주를 '3-브레인'이라 추정을 한다.


  이런 갈라지는 세계에 대한 해석은 사실 닐스 보어를 주축으로 한 코펜하겐 해석과는 전혀 다른 것인데, 사실 파동함수가 붕괴된다는 법칙은 없다. 슈뢰딩거는 파동함수만을 선 보였지만 이것이 붕괴된다는 어떠한 주장도 펴지 않았다. 다중세계해석이나 파동함수가 붕괴된다는 얘기의 바탕에는 관찰의 처리 문제가 깔려있다. 관찰자. 이것이 우리에게는 문제다.

  결국에는 관찰자를 어떻게 처리하냐에 따라 다중세계해석과 코펜하겐 해석으로 나눌 수 있다. 물론 또 다른 의견들도 있지만 책에서도 나머지 의견에 대해서 그렇게 잘 다루지 않으므로 나 또한 모른다. 앞서 우주의 지평선 얘기를 했지만, 이 지평선 밖은 우리가 관찰자의 입장에서 벗어나게 한다. 그러므로 이 우주는 이제 지멋대로 뻗어 나갈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관찰하지 못했고 그래서 검증하지 않았기에 그렇다. 

  우주는 인플레이션으로 지금과 같은 우주를 형성했는데, 이 인플레이션이 지평선 너머의 우주에서는 또 다르게 급격히 팽창시킨다면, 그리고 전혀 다른 에너지 레벨에서 이루어진다면? 갈수록 복잡해지는데, 어쨌든 뭔가 넘치거나 모자른 우주가 생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우주의 토대가 되는 네가지 힘, 강한 핵력, 약한 핵력, 전자기력, 중력 이것들이 우리의 우주가 가지는 값(상수)들과 다른 범위의 값을 가진다면? 혹은 이들중 하나가 빠져있다면? 이것이 멀티버스의 기본이다. 결국 다른 값들이 가지는 우주의 풍경(landscape)에 따라서 전혀 다른 우주의 풍경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방금 말한 풍경은 두 가지 개념이 있다. 미시적인 풍경과 거시적인 풍경. 미시적인 풍경은 양자 떨림이 보이는 세계에서 이뤄지는 산과 계곡이다. 무슨 말이냐면 입자의 존재 확률이 커질수록 파동은 보강이 되고 이것은 산처럼 삐죽 솟아난다. 하지만 확률이 조금 더 떨어지면 확률의 세기(magnitude)는 약해지고 앞서 말한 산보다는 작아진다. 이런 서로 다른 확률들이 모여있으면 그것은 산맥과 같은 풍경을 이루고 확률이 없는 순간, 그러니까 어찌어찌해서 에너지 혹은 입자들이 상쇄되는 경우는 그냥 평평한 바닥이 되다. 미시적인 양자의 레벨에서 보면 이렇게 하나의 풍경으로 보여진다. 거시적인 경우는 앞서 말한 우주의 기본적인 힘들이 우리의 우주와는 전혀 다를 경우 그 우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이되고, 그렇게 우주는 또 다른 풍경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레너드 서스킨드가 주장하는 풍경은 이렇게 해서 나왔다. 그 시작은 화학의 분자 레벨에서 본 분자들의 생김새에서 따오긴 했지만 말이다.


빅뱅, 빅크런치, 빅립
 

  정리해보자면, 다중 우주, 멀티버스라고 부르는 것은 대충 두 가지 개념으로 볼 수 있다. 하나는 파동함수가 붕괴되지 않고 분기되어 진행할 때, 다른 하나는 우주의 힘이 우리의 것과는 다를때. 대충 이렇게 보면 된다. 따라서 이런 멀티버스 개념을 레벨로 나눈 사람이 있다. Max Tegmark라는 과학자인데 크게 멀티버스를 레벨 1에서 레벨 4까지로 나누었다. 따로 설명하자니 또 길어지므로 링크와 연결 시키려 한다. 어쨌든 이론적으로 정립된 것은 없고, 각자 상상한대로 주장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검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우주가 확률로 이루어졌다면, 여러번 주사위를 던져 많이 나오는 것으로 그려낼 수 있지만, 우주는 딱 한 번 주사위를 던져진 것과 같다. 물론 우리의 인식에서 그렇다. 빅뱅이 한 번 이루어졌고, 그래서 지금의 우주가 만들어졌다는 것.

  그렇다면 과연 빅뱅은 한 번 이루어졌을까? 그렇지 않다는 이론도 있다. 따라서 이 우주는 생성과 소멸을 주기적으로 한다.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인간 세계를 구원할 유일한 존재인가?와 같은 물음이다. 영화에서 네오는 7번째 네오다. 다만 앞선 네오들은 실패를 해서 우주를 싸그리 말아먹은 존재이긴 하지만. 어쨌든 오라클의 예언은 네오가 인간들을 기계에서 해방시킬 수 있다는것. 물론 여기에서 해방은 감독탓이긴 하지만 어쨌든 휴전을 의미한다. 영화 속 아키텍처가 레지스트리 정리할 필요가 있어서 싸그리 하드를 밀어버리려 하는 찰나에 네오가 잠깐! 우리가 알아서 조각모음 하겠다고 나서며 일단 붕괴를 막았다. 간략히 말하면 이렇게 없어질 우주를 '빅크런치'와 대응시킬 수 있고, 막판에 다시금 우주를 거주할 수 있는 환경으로 변모하기 시작하는 것을 '빅바운스'로 대응시킬 수 있다. 우리의 다양한 우주이론 중 하나가 그렇다. 그것은 우주는 수시로 빅뱅과 빅크런치가 반복하고 있다는 것. 빅크런치는 한마디로 우주의 수축이고 소멸이다. 이런 빅크런치는 우주의 임계밀도와 관련되어 있다. 우주의 평균밀도가 임계밀도보다 작다면 질량에서 야기되는 중력이 약하기 때문에 인력은 척력의 힘에 미치지 않아 팽창을 지속한다. 하지만 그보다 크다면 우주는 인력이 강해져 한 점(특이점)으로 수렴하려 할 것이다. 결국 이런 종말을 '빅크런치big crunch' 라한다. 그렇다면 우주의 밀도에 영향을 주는 것은 무엇일까? 이것을 '암흑 물질dark matter'이라 한다. 어쨌든, 보이지 않는(관찰이 불가능한) 우주에는 암흑 물질이 존재할 것이라고 추측한다. 다시 팽창하는 우주를 그려보자. 지속적인 팽창은 물질을 서로 더 멀리 공간속으로 떨어칠 것이고, 이는 중력의 세기가 너무 약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우주는 또 다른 시나리오로 종말을 맞는다. 중력의 세기가 약해서 모든 물질과 공간, 그래서 시간마저 찢어져 버리는 현상, 이것을 '빅립big rip'이라 한다. 그렇다면 평균밀도와 임계밀도가 같다면? 이런 팽창은 급격한 변화없는 평탄한 무한의 우주로 보이게 한다.


양자중력


  _ 브라이언 그린,「우주의 구조」, 승산 

* 658쪽 

끈이론과 루프-양자중력이론은 각기 다른 방법으로 양자적 중력이론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사실, 끈이론은 전통적인 입자물리학의 성공사레를 등에 업고 발전한 측면이 크다. 그래서 초기의 끈이론학자들은 중력을 부수적인 문제로 취급했었다. 그러나 루프-양자중력은 일반상대성이론에 뿌리를 둔 이론이었으므로 처음부터 중력을 중요하게 다루어 왔다. 이들을 한 문장으로 비교한다면 끈이론은 작은 영역(양자역학)에서 출발하여 큰 영역(중력)으로 진화해 온 반면에 루프-양자중력은 큰 영역(중력)에서 출발하여 작은 영역(양자역학)으로 진화해 왔다고 할 수 있다.

  빅뱅, 빅크런치, 빅립 등을 보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중력'이다. 우주의 생성과 소멸은 임계밀도와 중력과의 관련이 있다. 따라서 중력을 보다 양자적 입장에서 쳐다봐야한다는 이론이 등장할법 하다. 이런 하나의 덩어리 이론이 '양자중력'이다. 그리고 이것을 기술하는 하위 이론들이 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루프양자중력'이다. 이 이론의 특징은 시공간을 원자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마치 공간의 디지털화라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디지털화 시킨 것이 아닌 양자화이지만. 그리고 이 공간원자를 1차원 루프형태로 매치시킨다. 이런 루프의 모임을 망사스타킹으로 보면 된다. 루프양자중력 이론이 나오게 된 이유는 기존의 양자역학으로는 거시 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중력을 양자화하기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대 과학이 우주를 기하학적인 배열로 놓았듯이 양자중력 이론에서도 시공간을 구조가 있는 배열로 본다. 쉽지는 않지만 노드와 링크가 있는 토폴로지로 보면 되겠다. 가령 정보통신의 그물형, 스타형, 버스형과 같은 구조로 말이다. 결국 루프양자중력이론(이하 '루프중력론'이라 하겠다)에서의 특징은 '구조'이다. 이런 구조들의 집합체는 하나의 네트워크로서 작동한다. 이를 '스핀-네트워크'라 하는데, 노드와 링크에 숫자(양의 정수)로 라벨을 붙인다. 

_마르틴 보요발트,「빅뱅 이전」, 김영사 

* 15쪽
특히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이론의 결합 방법의 하나로 최근에 관심을 끌고 있는 루프 양자중력은 특이점이 없는 빅뱅과 관련된 결과를 제공했다. 이 이론에 의하면 우주는 빅뱅 이전에도 존재했다. 그러한 우주는 현재 우주와 어떻게 다른지도 대략 추정해냈다. 그것이 이후 우주 팽창 단계에 미치는 영향을 근거로 빅뱅 이전의 우주도 탐사할 수 있다.

* 170~171쪽
빅뱅 이전의 우주는 일반상대성이론 방정식이 아니라 루프양자우주론 방정식들로만 들여다 볼 수 있는 베일로 가려져 있다. 빅뱅 이전에 우주는 수축되고 있었다. 스스로의 무게에 의해서 작은 크기로 붕괴되어 결국에는 빅뱅의 뜨겁고 밀도가 높은 상태가 만들어졌다. 이러한 전환 자체도 중력의 양자이론으로만 분석할 수 있다. 고전이론의 한계는 양자이론적 성질을 고려한 좀더 포괄적인 이론들로 극복할 수 있었다. 빅뱅의 특이점은 빅뱅을 만들어낸 언어의 한계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것은 세상의 한계가 아니었다. ...(중략)...

... 양자역학에 의해 해결된 원자의 안정성 문제와 마찬가지로, 빅뱅의 특이점은 항상 인력으로만 작용하여 붕괴를 초래한 고전적 중력에 맞서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는 루프양자우주론의 새로운 반발력으로 막을 수 있다. ...(중략)... 빅뱅 이전에는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우주와는 반대로 수축하고 있었다. 붕괴에 의해 더 작아지고 뜨거워져 빅뱅 상태로 들어갔다. 그다음에는 양자 효과가 지배했다. 그리고 수축 속도가 줄어들다가 다시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팽창하는 우주가 나타났다. ...
루프중력론은 시공간원자의 구조를 매우 높은 밀도의 중력을 가진 성질로 바꿔놓는다. 여기에서 반발력이 뿜어져나온다. 가령 스펀지에 물을 먹인다고 생각해보자. 처음엔 물을 잘 빨아들이다 어느 시점에서는 더 이상 수용을 하지 못하고 물을 뱉어낸다. 마찬가지로 루프중력론에서도 시공간원자는 어떤 한계의 밀도를 넘어가면 반발력을 가진다(반대로 일반상대성이론에서는 계속 에너지를 먹어치우고 밀도는 무한히 증가한다). 보통의 밀도에서는 중력은 여전히 인력을 가진다. 어쨌든 밀도의 한계점 때문에 루프중력론에서는 특이점이 만들어지지 않으며, 이는 빅뱅의 이전 시간까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다. 어쨌든, 빅뱅 이전의 세계는 우리가 거울로 보는 세상과 같은 반사된 세상이라 하는데, 루프중력론이 맞는다면,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세상이 다른 우주 어딘가에서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와 모든 것이 반대인 세상이. 또 이 우주는 선순환을 하고 있다는 믿어지지 않는 얘기를 한다.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멀티버스를 왜 연구할까. 우리가 결코 볼 수도 없고 느낄수도 없는 우주인데 말이다. 사실 거의 모든 멀티버스이론은 인류원리(인본원리)로 수렴한다. 결국 상상속에서나마 우리가 살 수 있는 또 다른 우주를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물론 매트릭스에서의 보이는 인류원리는 누군가(아키텍쳐)의 설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우리가 살 수 있는 환경이 다른 우주에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혹은 다른 생명체이 있다면 어떻게 살아가고들 있는지, 거주하고 거주할 수 있는 환경을 그려내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 와중에 세상의 시작과 종말을 다루어야 한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이런 판타지와도 같은 것들은 사실 수학적 해로 존재하는 것이고, 수학적 기술의 오류를 발견한다면 바로 수정되어질 것이고, 그렇다면 우주는 또 다시 그 모습을 바꾸게 될 것이다. 



PS.   (많은 부분에서 비문이 보이므로 차츰 고쳐나가려 함..)

1. 처음에는 브라이언 그린의 새책을 구매하기 전에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짧은 글로 정리를 하려 하였으나 점점 더 길어지더니 정말 읽어보기 싫을 정도로 늘어났다. 그래도 우주론 관련 책들은 많이 읽었음에도 정리를 해본적이 없는데,  지금이라도 이렇게 정리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여러 책을 읽어가면서, 이 글을 뼈대 삼아 살은 살대로 붙이려고 노력해야겠다. 

2. 이 글을 쓰면서 책들을 다시금 뒤척이기도 하고 인터넷으로 찾아보기도 했는데, 어쨌든 오류가 있을 듯도 싶다. 사실 우주론책들마다 나오는 얘기들이지만 막상 내 머리로 정리하며 적어나가는데 쉽지는 않았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대충대충 책을 읽었는가 싶다. 그런데 또 죽으라고 읽을 필요도 없지 않은가. 어쨌든 이렇게 글이라도 써야 뭔가 남겠구나 하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3. 앞의 내용중, '빅뱅, 빅크런치, 빅립'에 대한 내용 안에 한가지가 더 들어가는데 너무 길어질까봐 뺐다. 그것은 '빅 스플랫'이다. 이것은 브레인 우주에서 두 브레인끼리 충돌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충돌후 두 우주는 밀려난 뒤 다시금 진화한다고 한다.

4. 양자중력이론에 대해서 좀 알기 위해 인터넷을 좀 보았는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래서 일부 내용은 영어로 해석한 것 몇가지를 조합해서 올렸다. 나중에 기회되면 이쪽 책도 좀 보고 싶다. 
「우주의 구조」에서 브라이언 그린은 앞으로는 양자중력과 초끈이론이 통합되어 우주를 풀 실마리를 얻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그랬다. 

5. 이 글을 쓰며 참조한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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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2-02-19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 좀 만 더 일찍 써 주시지, 그러면 쿼크님께 tt 했을텐데요. 오늘 아침에 LHC 물리학의 최전선이 중고샵에 나왔길래 황급히 주문하면서 멀티유니버스도 주문했거든요.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잘 하세요. 이해가 안 간 부분이 있었는데 이 페이퍼 읽으니 이해가 될 듯 해요. 부럽습니다.
저도 우주의 풍경 조금 아주 조금 읽었는데,, 거기선 멀티버스라고 하겠다고 하더라구요. 메가버스보다. 근데 저도 그 책 조금 읽으면서 멀티버스에 회의가 들긴 해요. 정말 맞는 추측일까?하고요.

브라이언 그린은 빅뱅이론에 나왔다고 해서 흥미로워서 사 봤는데,,, 머리가 딸려서 이해 못 할 것 같아요. 저는 왜 그렇게 우주나 다윈책에 이끌릴까요?

퀴크님 이런 글 자주 올려 주세요. 한달에 한번 올리시는 것 같아요. 퀴크님의 과학책 리뷰나 페이퍼 기다리는 일인입니다. 이 페이퍼 읽으면서 퀴크님처럼 과학 전공자도 약간 어려워 하신다는 말에 왠지 위안이~

쿼크 2012-02-19 23:08   좋아요 0 | URL
아..'LHC 물리학의 최전선' 사셨군요. 저는 작년에 읽었는데..좋았습니다. 리뷰를 쓰긴 써야 하는데..읽고 나서 바로 안쓰면 그게 어렵더라구요. 이 페이퍼를 쓰고 이젠 'LHC 물리학의 최전선'이나 리뷰를 써볼까?라고 속으로 생각했었는데..조만간 뭔가라도 적어둬야겠네요..~~ (위의 '빅뱅이전'은 추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참...레너드 서스킨드는 메가버스라는 단어를 즐겨쓰죠. '우주의 풍경'이란 단어도 고집스럽게 쓰는것 보면 단어에 좀 집착이 있는 것 같아요. 멀티버스든 메가버스든 일단 관측불가영역에 대한 추측이므로 멀티버스 반대하는 사람들은 인류가 멸망할때까지 보지도 못할것(오히려 우주는 팽창하므로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보지 못하죠..) 뭐하러 상상이나 해댈까라고 주장도 하지만, 옹호자들은 일단 우리 우주에 대한 이해를 하기 위한 과정속의 부수적 산물이기도 하기에 멀티버스로 확장할 수 있다고도 하죠. 멀티버스 목차만 보더라도 사실 멀티버스에 관한 내용이라기 보다는, 매번 했던 블랙홀, 시간의 화살(시간의 비대칭성), 빅뱅, 인플레이션, M이론 등등 반복적으로 나오는듯 합니다. 이번 '멀티 유니버스'에서는 특히 홀로그래픽 우주에 대해 다루는 것 같기도 하구요.. 그런데 사실 이해 하나도 못하고 있어요. 이게 다 수학적 기술 방식이나 해이기 때문에 더 그런것 같아요..

저도 과학책 리뷰나 뭐 이런거 좋아하는데 사실 과학쪽은 글들이 많이 없어서 나라도 뭔가 쓰자 해서 쓰게 되었습니다. 과학쪽에는 좀 신경을 쓰려고 노력하는데, 오히려 역사(혹은 철학)를 모르면 안되겠더라구요. 그래서 역사를 읽으면 과학쪽에는 좀 소홀해지고..뭐 그렇게 되더라구요.

아무튼...한참 모자란 제 글을 좋아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우연히 책들을 검색하다 작년 이맘때쯤 읽었던 [사회과학자의 글쓰기]라는 책이 품절 상태임을 알게 되었다. 이미 구해서 읽은 책이기에 나중에 필요하면 다시금 떠들어 보겠지만, 이제라도 흔적을 남겨놓고 싶다는 갑작스러운 생각에 다른 책 몇 권을 더 엮어서 몇 자 적어본다.


이 책 [사회과학자의 글쓰기]의 부제는 '책이나 논물을 쓸 때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끝낼 것인가?'이다. 제목이나 부제에서 무게감이 느껴진다. 이런 무게감은 저자가 정해놓은 독자층에 내가 과연 끼일까라는 의문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회학과는 전혀 관계가 없고, 과학자는 더군다나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일반인인 나와 같은 사람에게 이 책이 유효한 이유는
글쓰기 전과 글 쓴 후에 대한 이야기를 적절히 펼쳐 놓기 때문이다.



1. 글쓰기 전...

관심을 두고 둘러보면 글쓰기 관련 책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가만, 글쓰기라고? 도대체 무슨 글쓰기지? 사실 다수의 책 제목들에서 보이는 '글쓰기'라는 것은 상당히 두리뭉실하다.(제목이 정말 '글쓰기'인 책들도 의외로 눈에 띈다. 왜 제목을 딱 세 자로 그렇게 지었는지는 정말 알 수가 없다.) 물론 두리뭉실하긴 하지만 다 맞는 말들이다. 대표적인 예가 일단 궁둥이를 붙이고 아무 글이나 막 던져보라는 거다. 사실 이 경우 글보다는 단어의 나열이라 볼 수 있지만, 어쨌든 복권을 사야 당첨이 되든 되지 않든 하지 않겠는가. 이런 것을 흔히 '브레인스토밍'이라고 하는데 브레인스토밍에서 중시하는 것은 질보다는 양이다. 뭔가 하나 건져보자는 의도이다.

사실 글을 쓰고 싶다는 사람은 일단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갑자기 문득 글을 쓰고 싶다는 사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읽을거리들을 흡수하고 내보내는 과정을 즐기는 사람이다. 즉 글쓰기는 뭔가를 즐겨 읽는 사람들의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피어나는 궁극적 욕망이다.

[사회과학자의 글쓰기]는 욕망이 아닌 의무의 해소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의 대상은 글쓰기를 가끔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이다. 그것도 논리관계가 일목요연하니 구축된 그런 글쓰기를 말이다. 물론 이런 사람들은 글쓰기도 중요하지만 어떤 글감이냐 또한 중요하다. 따라서 글을 쓰는 행위 이전의 글감을 모으는 행위 또한 중요하다. 사실 이것은 논문을 써대는 과학자뿐만 아니라 대중적 장르의 글쓰기를 하는 소설가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그들은 많은 시간을 들여가며 자료를 조사하고 그들의 글을 완성한다.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쓴다'는 막연한 행위보다는 무엇을 사고하고 그것을 어떤 식으로 버무릴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우선 당신이 써 온 것에 관한 메모를 하고, 각각의 생각을 카드에 적는 것부터 시작하라. 원고에 적혀 있는 생각도 없애버리지 말라. 그런 생각들은, 그 순간에는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없을지라도, 여러 가지로 유용하다. 잠재의식은 당신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다. 이제 그 카드 뭉치를 파일별로 분류해라. 함께 묶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카드들은 같은 파일에 집어 넣어라. "함께 묶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구?" 그렇다. 당분간은 그 카드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를 너무 세심하게 찾으려고 하지 말아라. 당신의 직감에 따르라. 파일들을 모두 모아 놓은 다음 각 파일의 모든 카드 내용을 요약하는 카드를 만들어 각 파일 맨 앞에 놓아라. 맨 앞에 놓인 요약카드의 내용은 각 파일의 모든 카드에 적혀 있는 구체적인 내용을 일반화시킨 것이다. 이제 당신은 처음으로 자신이 해놓은 작업에 대해 비평을 시작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파일의 모든 카드 내용을 포괄하는 진술을 생각해 낼 수 없다면, 내용이 잘 맞지 않는 카드들을 골라내고, 골라낸 카드들을 가지고 새로운 파일과 새로운 파일에 대한 요약카드를 만들어라. 그리고 나서 일반화된 카드들을 탁자나 마루바닥에 늘어놓거나, 벽에 핀으로 꽂아두어라...(중략)... 카드들을 어떤 순서, 아니면 아무 순서대로나 늘어 놓아라. 아마 당신은 한 생각이 다른 생각을 이끌어 내는 일련의 순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한  세로줄에서 어떤 카드를 다른 카드 밑에 놓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좀더 일반적인 진술과 구체적인 사례 또는 하위 논의와의 관계를 물리적을 나타내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중략)... 이러한 방식으로 아이디어들의 조직화를 실험하는 것은 흐름도에 의한 사고에서 어느 정도 정형화된다.

                          _하워드 S. 베커, [사회과학자의 글쓰기], 일신사, 103 ~ 105쪽

이 방식을 좀 더 확장하면 공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물론 일종의 공부법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런 카드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대표적인 예로 외울 거 많은 법대 쪽이나 의대와 연계된 사람들이 많이 하는 공부법으로 알고 있다. 즉 '플레시카드'를 통한 암기쯤 되겠다.

어쨌든 이런 카드 모음 가지고 글을 쓴 대표적 작품이 그 유명한 '로버트 M. 피어시그'의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이라는 작품이다. 이 책도 작년 이맘때쯤 읽었는데 리뷰를 너무나도 쓰고 싶었지만 도저히 쓸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철학 쪽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또 이 책이 어렵기도 하고 매력적이기도 한 이유가 각도만 달리하면 다양한 장르가 담겨 있다는 것도 한몫한다.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을 크게 보면 하나는 철학이고 다른 하나는 과학기술이다. 단순히 철학과 과학기술이라는 이분법의 틀로 나눈 것은 내 지식의 부족함 때문이고, 이 책은 저자 경험의 응축이다. 이 책이 어렵기도 하고 훌륭하기도 한 이유는 자신이 생각하고 경험했던 것들을 질Quality로 녹여버리는데 사실 질과 선, 철학과 과학기술은 명확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계층적이고 패턴적이다. 깨지지 않는 패턴, 원자성이라 해도 좋다. 그 본질의 개념을 질로 표현했고, 이 질로 향하는 계단은 바로 내적 탐구에 기반을 둔 '선'을 말한다. 아니 말하는 듯하다. 그러니까 계층의 체계로 사상과 기술을 논의하고, 물체를 구성하는 패턴을 하나씩 제거함으로써 최종의 '나사'를 만난다는 것. 그리고 나사의 쓰임에 대해 이리저리 머리 굴려본다는 것. 이것이 책에서 에둘러 설명하는 질Quality의 하나이다. 아무튼 이 책은 굉장히 흥미로운 책이다. 가격이 어마어마한 모터사이클을 멈추게 한 것이 작은 하나의 나사였다면, 그래서 이 모터사이클을 움직이게 하기 위한 사고의 영역은 더는 모터사이클이라는 매크로 영역에 있지 않고 나사에 집중되는 마이크로 영역으로 넘어가게 된다. 결국 나사를 풀어 제대로 고치는 것이 바로 질Quality이 되는 것이다.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나사에 대한 본질적 의미와 그 의미를 잘 모르고 거시 영역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삶의 허식을 말하고자 하려는 것이 아니라 저자인 '로버트 M. 피어시그'는 이런 추상적이면서 객체화시킨 글(엄밀히 말해 저자는 이 책에서 주체와 객체가 융합된 상태를 질의 하나로 보고 있긴 하다)을 인덱스카드로 묶어 내용을 적어나갔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서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현재로서는 글을 쓰는 일 이외의 모든 난관이 극복된 셈입니다. 책의 전체적 윤곽은 가로 10센티미터 세로 15센티미터 크기의 인덱스 카드 약 3천 매를 사용하여 지난 12월에 완성해놓은 상태입니다. 문단 단위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세세하고 철저하게 작업을 해놓은 상태지요. 구체적으로는 다섯 개의 개별적 윤곽을 잡아 놓은 상태인데, "사건," "인물," "관리 측면에서의 폭넓은 논의," "선 측면에서의 폭넓은 논의," "고원 지대"가 그것입니다. 이 다섯 요소들을 상당히 신중하게 서로 엮어나가고자 하는데, 이는 각 요소 상호간의 의미 강화 및 책 전체의 통일성 확보를 위한 것입니다.

                _로버트 M. 피어시그,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문학과지성사, 758쪽

이 내용은 저자가 출판사 편집장과 책으로 내기 위해 서로 편지로 이야기한 부분이다. 거의 이런 식으로 4년 동안 편지를 교환했다고 한다. 감은 잘 오지 않지만 12만 단어로 이루어진 초고를 완성했다.

2. 글은 어떻게 쓸까?

앞에서도 일종의 '브레인스토밍'을 통한 무작위적 글쓰기에 대해 잠시 언급했지만, 일단 글을 쓰고자 할 때 가장 당혹스러운 것은 서문(혹은 글의 첫 부분)에서 막히는 부분이다. 브레인스토밍을 했든 어쨌든 여러 가지 글감은 마련되었지만 눈에 띄는 시작을 하고 싶은 것은 대부분의 사람이 바라는 것이다. 그런데 처음만 잘 뽑아 나와준다면 고맙겠지만 그렇지 않고 쭉 글을 써내려가는 도중에도 글 자체에 드러난 시각이 좀처럼 마음에 와 닿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닌 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꽉 채우게 될 것이다. 계속 무시하고 쓰다 보면 자신이 쓰고자 했던 원 궤도에서 상당히 벗어나게 됨을 알 것이다. [사회과학자의 글쓰기]에서 저자는 그렇다면 서론을 나중에 쓰라고 권한다.

서론은 특별히 까다로운 방식으로 의도하지 않은 함축의 문제를 발생시킨다. 에버렛 휴즈Everett Hughes는 내가 대학원에 다닐 때 서론을 마지막에 쓰라고 말한 적이 있다. "서론은 글을 소개하기로 되어 있다. 아직 쓰지 않은 것을 어떻게 소개할 수 있단 말인가? 너는 소개할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소개할 것을 먼저 쓴 다음에야 소개할 수 있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나는 여러 개의 다양한 서론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중략)...  또한 사람들은 최초의 형식화가 함축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학문적 저술에서 흔히 보이는 무의미한 문장과 단락으로 글을 시작한다. ...(중략)...  하지만 많은 사회과학자들은 애매모호한 글로 시작하는 것이 사실상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탐정소설에서 실마리를 하나씩 풀어 나가는 것처럼 사회과학자들은 증거가 되는 항목을 한 번에 하나씩 보여줌으로써 주장과 증거를 한꺼번에 요약해 주는 드라마틱한 결론 단락을 의기양양하게 제시할 때까지 독자의 관심이 지속되기를 바란다. 사회과학자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모든 증거를 제시하기도 전에 결론을 내리는 것을 금하는 과학적 신중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중략)...  나는 종종 코난 도일Conan Doyles과 같은 방식을 제안한다. 이 방식은 사회과학자들의 의기양양한 마지막 단락을 먼저 간단히 적는 것이다. 즉 독자에게 논의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고 모든 자료들이 최종적으로 설명할 것은 무엇인가를 먼저 말해 주는 것이다. ...(중략)...

                   _하워드 S. 베커, [사회과학자의 글쓰기], 일신사, 89 ~ 90쪽


본론부터 글을 써 내려가고 결론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마무리 짓고 그렇게 쓰면서 들었던 생각의 단편들, 정리된 파편들을 모아 글의 첫 부분을 장식한다는 말이다. 모든 글이 이런 식으로 할 수도 할 필요도도 없겠지만, 나름 장문의 글이나, 논리관계가 들어가는 글들 예를 들어 정치, 역사, 과학 쪽의 글쓰기는 아마 도움이 많이 될 듯싶다. 그런 글쓰기 하는 사람은 참조해도 좋을 부분이라 생각한다.

글감이 정해졌다고 술술 써지는 것은 아니다. 흔히 자신의 글은 독창적이고 싶은 심리적 재제 요인이 있게 마련이다. 이런 심리적 요인은 우리와 같은 범인에게는 흔히 문체나 단어 구사력에서 독창성을 보이지는 않고 한마디로 자신만의 에피소드에서 독특함을 뽐내려 한다. 경험이 많으면 좋겠지만, 혹 경험이 없거나 도저히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글로 쓸 때는 오로지 상상의 나래를 펴고 글을 써야 하는데 사물이나 현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능력이 필요하다. 물론 훈련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런 학생들 가운데 도수 높은 안경을 쓴 여학생이 하나 있었는데 그녀는 미국에 관해 5백 단어 길이의 에세이를 쓰고자 했다. 그는 여학생이 쓸 법한 이 같은 글들이 발산하는 무기력한 느낌에 익숙해 있던 터여서, 아무런 시비도 걸지 않은 채 주제를 보즈먼으로 좁히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그녀에게 했다. 과제물 제출 기한이 되었지만 그녀는 에세이를 쓸 수 없었고, 그것 때문에 상당히 좌절한 상태였다. ...(중략)... 그는 난처해하는 것 이외에 달리 방도를 찾지 못했다. 이제 그 자신이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을 해낼 수 없는 처지에 이르게 되었다. 침묵이 흐른 다음 기묘한 해결책이 그의 입에서 흘러 나왔다. "주제를 좀더 좁혀 보즈먼의 중심가에 대해 글을 써보는 것이 어떻겠냐?" 이는 번개 같은 통찰력의 발동에서 나온 제안이었다. 그녀는 공손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갔다. 하지만 다음번 수업이 시작되기 바로 전에 그녀는 정말로 비탄에 잠겨 그를 찾았다. 이번에는 눈물을 눈에 가득 담은 채, 오랫동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던 것임이 명백해 보이는 비탄을 눈에 가득 담은 채, 그를 찾았다. 그녀는 여전히 이야기할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생각해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중략)... 화가 나서 그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주제를 좁혀 보즈먼의 중심가에 있는 한 건물의 앞면에 대해 글을 써보도록 하게. 예컨대, 오페라 하우스의 앞면에 대해 글을 써보는 것이 어떻겠냐? 건물 위쪽의 좌측에 있는 벽돌에 대한 이야기로 글을 시작해보도록 하게." ...(중략)... 그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다음 수업 시간에 출석해서는 몬태나주 소재 보즈먼 시의 중심가에 있는 오페라 하우스의 앞면에 관한 5백 단어 분량 에세이를 그에게 제출했다. "길 건너편 햄버거 가게에 앉아서는 첫번째 벽돌에 대해 쓸 때쯤 글이 저절로 나오기 시작하여 글쓰기를 멈출 수가 없었어요. 사람들은 내가 미쳤다고 생각했을 거에요. 사람들이 계속 나를 놀려댔지요. 아무튼, 여기 이게 제가 쓴 거에요. 어떻게 된 건지 이해할 수가 없네요." ...(중략)...  그녀가 보즈먼에 대해 쓰고자 했을 때 아무것도 생각해낼 수가 없었던 것은 그녀가 들었던 것 가운데 되풀이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을 아무것도 기억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묘하게도 그녀는 자기 스스로 참신한 눈길을 주고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그녀가 글을 통해 보인 것처럼 전에 사람들이 말한 것에 우선적으로 관심을 보이지 않은 채 자기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주제를 벽돌 하나로 좁히는 순간 심리적 제재 요인이 사라지게 되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무언가 독창적이고도 직접적인 눈길 주기의 작업을 해야 한다는 점이 너무도 명백해졌기 때문이었다.

       _로버트 M. 피어시그,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문학과지성사, 341~343쪽

인용문 속 안경 낀 여학생이 글을 못 쓰고 헤매고 있을 때, 저자는 사물에 눈길을 주지 않고 있다고 화를 냈다. 모든 사실 하나에는 무한수의 가정이 있는데, 눈길을 주면 줄수록 그만큼 더 많은 것이 눈에 띈다는 의미이다. 그 후 벽돌로 시각을 좀 더 좁히라고 조언을 했고, 그제야 그녀는 글을 쓴 것이다. 저자는 다른 강의실에서도 엄지손가락이나 동전과 같은 주제로 글을 써서 제출하게 했고, 이런 작은 실험을 통해 학생들이 글을 쓸 수 있는 글의 양의 한계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즉, 사소하지만 학생들 자신들은 이런 글은 남의 것을 도저히 모방할 수 없는 그들만의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 일화는 예전에 읽었던 책을 떠오르게 한다. '브라이언 피터슨'의 [창조적으로 이미지를 보는 법]이라는 책이다.

창조적으로 보는 법을 배우는 일은 또한 당신의 카메라와 렌즈가 볼 수 있는 것과 볼 수 없는 것에 따라서 '크게' 좌우된다. 배의 선장은 세계를 항해할 때 배를 올바른 방향으로 순항하도록 만들려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도에 아주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당신이 사용하는 렌즈는 당신을 새롭고 매혹적인 땅으로 인도해줄 수 있는 지도와 같다. 사물을 볼 때 카메라와 렌즈를 통해서 바라보는 지속적인 훈련으로 당신은 각 렌즈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시각을 시각적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렌즈를 통해서 사물을 보는 일에는 더 멀리 보는 것과 더 가까이 보는 것 모두가 해당한다. 이런 훈련을 많이 하면 할수록, 당신은 점점 더 세계를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보게 될 것이다. ...(중략)...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 장면 한 장면 사진을 찍어나가면서 장면에 따라서 어떤 렌즈를 사용할 것인가를 전혀 망설이지 않고 알게 될 것이다....(중략)... 숲을 두꺼비의 시각으로 보는 것에 도전하기도 하고, 혹은 도심지 거리를 보도블록의 관점에서 보기도 하고, 당신네 집 뒷마당을 붉은가슴새 둥지의 시각으로 보려고 시도하기 시작할 것이다. 커다란 전나무 아래 누워서 방금 나무 위로 올라간 다람쥐의 시각으로 보라. ...(중략)... 이와 같은 구성은 봄이면 시의회가 차량통행이 잦은 길밑에 오리들이 이동할 수 있도록 작은 생태통로를 건설하는 것이 왜 중요한 일인가를 아주 극적으로 분명하게 말해줄 것이다.

     _브라이언 피터슨, [창조적으로 이미지를 보는 법], 청어람 미디어, 11쪽


 글쓰기를 할 때는 대상을 특별한 각도로 보려는 노력 하지 않는 데에 비해 사진을 찍을 때는 다르다. 본능적으로 좀 더 자신만의 프레임을 만들려고 애를 쓴다. 말 그대로 누워서 찍기도 하고 높은 곳에 올라 좀 더 시야를 확보하려고도 애를 쓴다. 이 차이는 아마 도구가 있고 없음 때문일 듯싶다. 카메라라는 도구는 제한적이기에 부족함을 이기고자 하기 위함일 듯싶다. 물론 글쓰기 때에도 똑같이 누워서 대상을 보라는 것은 아니지만, 의식적으로 대상의 이면을 보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위의 인용문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마치 기계적인 방식을 습득하라고 하는 것과 같다. 어떤 장면에서는 어떤 렌즈가 필요하듯이 직감적으로 렌즈를 바꾸는 절묘함이 몸에 붙어 있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즉, 창조성 이면에는 습득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습득은 모방과는 다르다. 앞서 엄지손가락이나 동전의 주제로 학생들은 자신만의 글임을 확신했다고 나와 있다.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기계적 훈련에 따른 습득은 글쓰기에서 자신의 문체로 나온다는 것이다. 이리저리 대상을 틀어보면서 바뀌는 것은 대상이 아니라 대상을 둘러싼 환경과 대상 간의 연결고리가 된다. 이런 연결고리들이 그대로 문장에 드러나면 그것이 문체가 아닐까 한다.



흔히 문체관련 이야기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작가는 '김훈'이다. 김훈의 책 [바다의 기별]에서는 김훈의 장편소설 [칼의 노래]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문장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내가 쓴 장편소설 [칼의 노래] 첫 문장은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입니다. 이순신이 백의종군해서 남해안으로 내려왔더니 그 두달 전에 원균의 함대가 칠천량에서 대패해서 조선 수군은 전멸하고 남해에서 조선 수군의 깨진 배와 송장이 떠돌아다니고 그 쓰레기로 덮인 바다에 봄이 오는 풍경을 묘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중략)... 나는 처음에 이것을 "꽃은 피었다"라고 썼습니다. 그리고 며칠 있다가 담배를 한 갑 피면서 고민고민 끝에 "꽃이 피었다"라고 고쳐놨어요. 그러면 "꽃은 피었다"와 "꽃이 피었다"는 어떻게 다른가. 이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습니다. "꽃이 피었다"는 꽃이 핀 물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진술한 언어입니다. "꽃은 피었다"는 꽃이 피었다는 객관적 사실에 그것을 들여다보는 자의 주관적 정서를 섞어 놓은 것이죠. "꽃이 피었다"는 사실의 세계를 진술한 언어이고 "꽃은 피었다"는 의견과 정서의 세계를 진술한 언어입니다. 이것을 구별하지 못하면 나의 문장과 소설은 몽매해집니다. 문장 하나하나마다 의미의 세계와 사실의 세계를 구별해서 끌고 나가는 그런 전략이 있어야만 내가 원하고자 하는 문장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_김훈, [바다의 기별] 중 '회상', 생각의 나무, 140 ~ 141쪽

 저자는 사실 꽃을 정말로 바라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머릿속에서 무한수의 가정을 시도했다. 여기에서 그의 대상은 꽃이 아니라 '은'과 '이'라는 조사이다. 그는 이 둘의 조사를 놓고 각 음절이 가지는 심상의 깊이를 재었다. 그의 문체는 사진 찍을 때 쉽게 카메라 렌즈를 바꾸는 것과는 다르지만, 어쨌든 렌즈를 갈아 끼우려는 본능적인 언어 감각은 이미 그의 안에 쟁여져 있을 것이다. 감성을 담아내려는 그의 시각은 머릿속에서 이 렌즈 저 렌즈를 끼워 보고 있는 것이다.







3. 글을 쓴 후...

[사회과학자의 글쓰기]에서 글감 찾기와 더불어 가장 중요하게 말하는 것은 '퇴고'이다. 이 책의 시작은 글쓰기에 관한 세미나 수업에서부터였다. 저자는 학생들에게 수업시간은 글쓰기 대신에 편집과 퇴고를 강조할 것이라고 언급한 부분도 있다. 사실 책에서도 퇴고와 관련된 부분이 부지기수다.
대학원 시절의 몇 년 동안, 나는 초기 원고들에 대한 우호적인 비평에 기반하여 퇴고를 일상화하는 매우 효율적인 글쓰기 습관을 형성했다. 그 결과 퇴고를 약점을 필연적으로 드러내게 하는 당황스런 작업이 아니라, 재미있는 낱말 맞추기 게임으로 여기게 되었다. 글쓰기에 대해 생각하고, 나만의 문체를 실험하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의 글을 서투르게나마 고치는 것도 역시 재미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_하워드 S. 베커, [사회과학자의 글쓰기], 일신사, 150쪽

퇴고는 말 그 자체로서도 흥미를 떨어뜨리게 들리다. 어렵게 들리기도 하고. 퇴고 자체도 글쓰기에 포함되지만 전문적으로 글 쓰는 사람 아니고서야 퇴고는 단순한 선택사항일 뿐이다. 눈에 확 들어오는 오탈자나 검토할 뿐이지. 띄어쓰기조차도 찾아보자니 귀찮기는 마찬가지다. 저자는 퇴고는 단순한 타이핑이지 글쓰기와는 다른 단순한 육체노동이라며 오히려 글쓰기가 더 미칠 일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1986년에 이 책을 썼는데, 퇴고 부분의 글은 컴퓨터를 이제 막 다루기 시작한 당시 시대적 환경을 담고 있어서 지금과는 거리가 있다. 그렇지만 퇴고를 습관화 해야 한다는 저자의 충고는 새겨들어야 할 듯.

퇴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반복의 제거이다.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하고 합칠 수 있는 것은 압축해서 표현하는 것이 퇴고의 뼈대이다. 쉽지는 않다. 퇴고는 글쓰기가 이루어져야 될 수 있는 부분이므로 글쓰기에 없는 에너지까지 집중해야 할 판에 이미 고갈 되어버린 에너지를 쥐어짜며 퇴고에 또다시 눈을 돌리기란 쉽지 않다. 또한 퇴고는 일종의 '미니멀리즘'을 지향한다. 예전에 유명 영화 포스트를 미니멀리즘으로 각색하여 올린 것들을 보았다. 깎아내는 것은 내용이 아니다. 내용은 그대로 있다. 다만 용기 자체를 깎는 것이다. 본질은 변하지 않되, 구성을 보면 참신하다. 하지만 잘못하면 단조로울 수 있다. 아는 사람 눈에는 대단하게끔 보이지만 관심 없는 사람이 보면 단조롭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프로의 몫이고, 일반인들은 중복되거나 맞춤법, 띄어쓰기와 같은 것들을 다듬으면 된다. 중요한 것은 내용이 바뀌면 안 된다. 내용이 바뀌면 다시 새로운 글쓰기가 되는 것이다. 물론 훌륭한 퇴고는 새로운 작품을 하나 만들어낼 수 있겠다 싶지만, 어디까지나 우리같은 일반인에겐 마감의 영역일 뿐이다.


4. 궁극의 지적생활...


 이 글의 제목은 '글쓰기, 궁극의 지적생활'이다. 사실 모든 지적생활의 종착역은 글쓰기 내지 책 쓰기이다. 어떤 전문적인 일을 하여도 지적생활이라는 간판을 달기는 어렵다. 가령 변호사나 의사의 직업은 지적이긴 하지만 지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일종의 기술(혹은 기예) 개념이기 때문인듯하다.

글쓰기와 지적생활을 묶은 이유 또 한가지는 얼마전에 읽었던 책 때문이다. '와타나베 쇼이치'의 [지적생활의 발견]이라는 책인데, 나에겐 별 감흥이 오지 않는 것이 내가 기대했던 내용과는 차이가 있거나 저자가 말하는 '지적생활'이 나와는 어울리지 않아서일 것이다. 어쨌든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 글 앞부분의 내용과 상당히 일치한다. 글감을 모으는 생활이 바로 저자가 말하는 지적생활인 것이다. 일단 글감을 모으기에 앞서 책을 사라고 한다. 책을 가지고 있어야만 바로바로 현재 쓰는 글의 참고 자료를 쉽게 얻을 수 있고, 이것이 작품의 질과도 관계있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이 책이 쓰인 때가 1976년이고(비록 2011년에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나왔지만...) 책 속에 등장하는 환경은 영국의 제국시대 때에나 들어맞을 법하다. 식민지 건설과 강탈 무역으로 세계가 핍박하거나 받거나로 온통 바쁠 때이다. 제3계급이 전문적 지식과 부로 무장하여, 지위를 보장받고, 점차 엘리트층으로 부각되니, 넘쳐나는 돈으로 하루하루의 삶을 호기심 충족으로 때울 때이다. 지들끼리 모여 각자 임무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세계 곳곳의 여러 동,식물을 포함하여 미스테리한 것들과 사건을 수집할 때이다. 그러니까 이 책에서 말하는 '지적생활'은 마치 수입은 부모 재산과 채권을 통해 얻어 생활하며, 통신이 생략된 시기, 스마트하지 않은 세상 때의 이야기를 하는듯 하다. 사실 내용은 그렇게 부정적이지 않은데, 어쨌든 저자의 성향이 일본의 극우세력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책에 쓰여져 있는 분위기가 그렇게 풍긴다. 이 책에서도 저자는 지적생산을 위한 효과적인 수단으로 '기록카드 상자 활용법'등을 얘기하고 있는데, 앞서 말한 인덱스 카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저자인 '와타나베
쇼이치'는 일제때의 위안부 자체를 부인한다는 인물이라는데 이 책이 나오기까지 역사적 맥락을 무시하고 저자의 화려한 이력만을 앞세우지 않았나 싶다.


오히려 직접적으로 대놓고 지적생활을 언급하진 않지만, 한겨레 '구본준' 기자가 쓴 [한국의 글쟁이들]을 보면 글쟁이들이 어떻게 글감을 모으고 책을 쓰는 등 지적생활(?)을 영유하는지 잘 나와 있다. 여기에 나오는 글쟁이들, 정민, 이주헌, 이덕일, 김용옥, 이인식, 정재승, 주경철 등등 개인의 공부와 자료 수집, 글쓰기는 어떤 치열한 고생과 고민 끝에 나오는지 읽어둘 만 하다.









 요즘 구매해서 읽고 있는 책은 '윌리엄 암스트롱'의 [단단한 공부]이다. 처음에 이 책과 관련하여 관심 있는 키워드가 눈에 띄었으니 강유원과 인문학 공부법이 그것이었다. 그런데 역사야 그렇다 치지만 수학과 과학, 외국어 공부는 또 뭐지? 이건 뭐 의심이 가긴 했지만 일단 구매를 하였고 조금 훑어본 정도이다. 마침 '글 쓰는 법'이란 장도 있고 해서 이 글 맨 마지막에 이렇게 넣어본다. 내용에서는 글쓰기보다는 작문이라고 나오는데 좀 더 학구적인 표현이랄까? 의무적인 냄새가 배어있다. 글쓰기와 작문의 차이는 시간의 쓰임이랄까? 배분이랄까? 일단 글쓰기는 배정된 시간이 무제한이다. 한마디로 안 써도 된다. 하지만 작문은 마감이 있다. 그 마감도 하루, 이틀도 될 수 있지만 1시간 내지 2시간 짧게는 30분도 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글은 논리적 사고 전개와 더불어 일종의 글쓰기 규약으로 처리해야 한다. 그런데 읽어보면 딱히 작문이라기보다는 논문이나 과제와 같은 학교에서 필요한 글쓰기다. 보편적인 글쓰기 내용이 들어 있지만 그렇게 와 닿는 내용은 없다. 그래도 글 쓸 때의 필수적인 요건은 맞긴 하다. 학생들에게는 어쩌면 필히 사봐야 할지 모를 그런 책이지만, 오히려 어디 만화방 같은데 가서 예전에 KBS에서 했던 드라마 '공부의 신'의 원작인 [꼴찌, 동경대 가다!]가 재미와 동기부여 면에서 더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강유원 박사는 일종의 스파르타식 교육을 지향하는 것 같은데, 이 책은 그런 것과 관련되어서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부모나, 학생, 혹은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동기부여가 약한 것이 흠이다.


( * 단순 학습관련이라면 예전 페이퍼 참조...) -->클릭 : [공부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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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0 2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20 2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2-01-21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몇 권 담아갑니다. 아주 유익한 페이퍼 감사합니다. ^^

쿼크 2012-01-21 14:50   좋아요 0 | URL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2012-01-25 2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25 2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가수'보는 것이 즐겁다. 기다려지고, 또 기다려진다.

이번주의 경연으로 아쉽게도 김연우가 떨어졌으며, 병환으로 인해 임재범은 한동안 나오지 못할 거라는 기사를 읽었다. 

대신에 새로 합류할 멤버로는 JK김동욱과 옥주현이라 한다. 음...

첫 방송 하기전부터 '나가수'에 박정현이 나온다는 예고를 보고 얼마나 기다렸었는지. 야무진 박정현은 여전히 당당하게 무대를 드나든다. 비록 이번에 7위를 했지만, 아쉬움보다는 좋지 않은 등수를 받아든 박정현이 어떻게 내심 7위 자리라는 부담감을 떨쳐버릴지 기대감만 더욱 증폭된다.

이제 '나가수'는 단순히 노래를 부르는 무대가 아닌, 꿈틀거리는 하나의 생물처럼 보인다. 몇 년전부터 예능 프로그램은 '리얼'이 대세였다.  예능에서 '리얼'은 본 모습을 보여준다는 의미를 뜻하기도 하지만, 시청자들에게는 '예측 불가한 상황'이 펼쳐진다는 의미로 더욱 와 닿는다.

예측 불가함에 있어서 '나가수'는 정말로 '리얼'이다. 단 세 곡으로 대한민국을 떠들석하게 들었다 놨다 한 임재범이 맹장 수술로 기약없는 하차를 하게 된 것도 결국 예측 불가함의 일부이다. '나가수'가 지금의 인기를 이어가려면 언제나 예측 하려고 드는 악의 세력과 싸워 이겨야 한다. 방송 되기 전부터 말이 많던 경연의 첫 탈락자가 김연우였다는 것은 아쉬운 것은 확실하지만, 어쨌든 악의 세력과 싸워서 이긴 것이다.

옥주현의 노래는 잘 모르지만, 예전에 김건모의 '아름다운 이별'을 리메이크한 적이 있었는데, 노래가 좋은 것도 있지만, 김건모가 부른 남성 버전과 대비되는 여성 버전으로서 좋았다. 이왕 참여하게 된 이상, 나가수에 맞는 기량을 펼쳐주었으면 한다.

처음 나가수에 박정현이 나온다는 것을 들었을때, 기회되면 내가 뽑은 '쓰리박'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이 '쓰리박'은 박정현, 박혜경, 그리고 박강수이다. 박혜경이야 언급하지 않아도 다들 알겠지만, 박강수는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듯 싶다.

예전에 다양한 분야의 가수를 초대하고 싶다고 '나가수' 연출진이 밝혔었는데, 개인적으로 박강수야 말로, '나가수'가 선보일 다양성에 적합한 가수라는 생각이다. 박강수의 노래를 들으면 양희은이 떠오른다. 양희은의 명성에는 한참 못 미치겠지만(그래도 언더쪽에서는 알아주는듯... 다양한 행사에 참여하는 것만 봐도..), 만약 출연이라도 한다면 사오십대 남성 뿐만 아니라, 이 시간에도 거리를 활보하고 있을 수많은 택시, 트럭 운전기사 아저씨들의 마음에 불을 지피리라. 박강수는 예전에 개그맨 표영호가 교통방송에서 진행하던 '브라보 마이웨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 격주간이던가 어쨌든 띄엄띄엄 나와 청취자들이 듣고 싶어하는 노래등을 포크 기타로 그 새벽에 청량한 목소리로 들려주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특히나 비오는 새벽에 들으면 정말 노래소리에 취할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당시 너무좋아 음반을 살까 하다 리핑 시키는 것이 귀찮아 스무곡 이상이나 되는 노래를 구매했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나가수 제작진이 '포크 요정' 박강수를 한 번 불러주었으면 한다.

박혜경도 꼭 불렀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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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5 17: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25 18: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신지 2012-02-20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려주신 동영상 잘 봤습니다. 참 좋은데요 +.+

쿼크 2012-02-20 19:28   좋아요 0 | URL
박강수 노래는 좋은것 같아요.. 조용한데서 들으면 더 좋구요. ~~

신지 2012-02-22 03:14   좋아요 0 | URL

박강수라는 이름 어째 저는 처음 들어봤는지요. 양희은이 떠오른다고 하셔서 안 들을려고 했는데;;
들어보니 왠지 예전 노찾사 노래 듣던 정서가 생각나서, 소리바다에서 어제 하루종일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쿼크 2012-02-22 23:12   좋아요 0 | URL
목소리가 좋아서(노래도 좋지만....) 한때는 박강수 노래만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좋으시다니 제가 기분이 좋군요.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물론 포털만 보더라도 스포일러로 넘치긴 하지만요...

쌀집 아저씨 김영희 PD의 굳은 표정과 단호한 말투와는 다르게 MBC의 '나는 가수다'는 흐물흐물 녹아내리고 있다. 오늘 세 번째 방송분을 보고 든 생각이다.

프로 가수라는 간판을 떠나 가창력을 지닌 실력파 가수를 데리고 순위를 매긴다는 발상은 양날의 검이다. 한쪽의 날이 적을 향해있다면, 다른 한쪽은 나를 향해있다. 그럼에도 양날의 검은 역시나 날을 두 개나 가지고 있다. '나는 가수다' 프로그램을 공격적으로 홍보하고 진행한다면 효과는 배가되었을 것이다. 비록 일부에서 비판을 내놓긴 했지만, 참여자들이 즐긴다면 그리고 이런 쇼를 보는 청중이나 시청자들이 호응한다면 비판은 묻히기 마련이다.

문제는 역시나 양날의 검이다. 막상 전쟁이 터지자 병사가 칼을 무서워하는 꼴이다. 연습용 목검을 쥐여줘야 안심을 할까? 오늘 방송분에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관심을 뒀을 것이다. 이 프로그램의 뼈대라 할 수 있는 '서바이벌'이 처음으로 드러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7명의 실력파 가수 중 한 명은 떨어지고, 그 자리를 다른 가수 한 명이 메운다. 이것이 뼈대다. 나머지, 그러니까 긴장하고, 슬퍼하고, 불안해하는 심지어 좋은 노래를 부르는 것, 이 모두는 살덩어리에 불과하다.

좋은 노래를 훌륭한 가수를 통해 듣는다는 것. 이것은 프로그램이 말한 보편적인 의도지만 결국은 누가 떨어지고 또 누가 들어오느냐야말로 가장 큰 관심사이다. 어떤 노래를 부르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러야 하는 어떤 노래야말로 이 프로그램의 변수이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제작진의 의도이다. 그래야만 탈락한 가수의 자존심을 뭉개지 않고 다음 주자에게 배턴을 건네줄 수 있다.

오늘 방송에서 이 변수를 바꾸어 버렸다. 어떤 노래가 아니라 어떤 퍼포먼스로 말미암아 떨어졌다는 것이다. 7위를 한 김건모가 립스틱을 '짙게' 바른 행위가 평가단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자체' 평가를 했다. 반면에 1위를 한 윤도현의 '지휘자' 퍼포먼스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방송을 봤던 사람들은 누구든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여기에서 이상한 결론을 내릴 수 있는데 , 7위를 한 김건모의 퍼포먼스는 순위에 악영향을 미쳤으므로, 마땅히 그 순위를 재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1위를 한 윤도현의 퍼포먼스는 순위에 순영향을 끼쳤으므로 마땅히 윤도현의 '스마트'한 전략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김건모는 다시금 재도전이라는 매우 '용기있는' 결단을 내렸다.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은 바로 제작진이 프로그램의 어디까지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냐이다. 김건모의 재도전에는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재도전이라는 새로운 규칙을 그 자리에서 뚝딱 만들어버리는 제작진에게는 공감이 가질 않는다. 더구나 이젠 청중 평가단이 무색할 지경이다. 그들은 무엇 때문에 점수를 매기는 것일까? 청중 평가단은 꼴등을 한 가수는 다른 가수로 교체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사실을 직시하면서 1등 가수를 뽑은 것이다. 그런데 제작진은 마치 없던 일로 돌려놓았다. 재밌는 것은 만약 청중 평가단이 평가한 결과에서 똑같은 표를 얻은 가수가 6위에 2명 이상이 나왔다면 제작진은 어떤 식으로 7위를 발표할 것인가. 이미 청중 평가단은 자리를 뜬 상황일 텐데 말이다. 생각하면 제작진의 프로그램의 깊은 고뇌가 보이지 않는다. 자신들이 기획하고 제작하였음에도 말이다.

떨어뜨리기 위한 방송이 아니라고 재차 강변을 해왔고, 떨어지는 것이 실력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했지만, 제작진은 앞서 언급한 '검'을 무서워한 것이 틀림없다. 또 어떤 분위기를 흐르는 것을 매우 경계한듯하다. 이제 영향은 가수들에게 미칠 것이다. 과연 그들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할 것인가. 임전무퇴의 마음가짐은 임전유퇴가 한 번 일어남으로써 관객들에게는 반감되어 보일 것이다. 지루해질 수도 있다. 어떤 노래냐가 아니라, 어떤 퍼포먼스냐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도 없게 되었다. 그전까진 퍼포먼스도 선택된 노래 속 하나의 가락으로 봐줄 수도 있었지만, 이제는 지뢰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 것이다.

오늘 방송분을 보고 마치 정치판을 보는듯했다. 정치는 말 그대로 공정해야 하지만, 그 공정성을 정치가들이 스스로 정함으로써 판도를 바꾼다. 엉뚱한 흐름이 엉뚱한 현실을 만들고, 그게 역사가 된다. 물론 이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나는 가수다가 규칙을 깸으로써 이미 '나는 가수다'는 2회에서 종영한 것과 다름없어졌고, 이젠 새로운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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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1 22: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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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2 01: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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