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물론 포털만 보더라도 스포일러로 넘치긴 하지만요...

쌀집 아저씨 김영희 PD의 굳은 표정과 단호한 말투와는 다르게 MBC의 '나는 가수다'는 흐물흐물 녹아내리고 있다. 오늘 세 번째 방송분을 보고 든 생각이다.

프로 가수라는 간판을 떠나 가창력을 지닌 실력파 가수를 데리고 순위를 매긴다는 발상은 양날의 검이다. 한쪽의 날이 적을 향해있다면, 다른 한쪽은 나를 향해있다. 그럼에도 양날의 검은 역시나 날을 두 개나 가지고 있다. '나는 가수다' 프로그램을 공격적으로 홍보하고 진행한다면 효과는 배가되었을 것이다. 비록 일부에서 비판을 내놓긴 했지만, 참여자들이 즐긴다면 그리고 이런 쇼를 보는 청중이나 시청자들이 호응한다면 비판은 묻히기 마련이다.

문제는 역시나 양날의 검이다. 막상 전쟁이 터지자 병사가 칼을 무서워하는 꼴이다. 연습용 목검을 쥐여줘야 안심을 할까? 오늘 방송분에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관심을 뒀을 것이다. 이 프로그램의 뼈대라 할 수 있는 '서바이벌'이 처음으로 드러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7명의 실력파 가수 중 한 명은 떨어지고, 그 자리를 다른 가수 한 명이 메운다. 이것이 뼈대다. 나머지, 그러니까 긴장하고, 슬퍼하고, 불안해하는 심지어 좋은 노래를 부르는 것, 이 모두는 살덩어리에 불과하다.

좋은 노래를 훌륭한 가수를 통해 듣는다는 것. 이것은 프로그램이 말한 보편적인 의도지만 결국은 누가 떨어지고 또 누가 들어오느냐야말로 가장 큰 관심사이다. 어떤 노래를 부르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러야 하는 어떤 노래야말로 이 프로그램의 변수이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제작진의 의도이다. 그래야만 탈락한 가수의 자존심을 뭉개지 않고 다음 주자에게 배턴을 건네줄 수 있다.

오늘 방송에서 이 변수를 바꾸어 버렸다. 어떤 노래가 아니라 어떤 퍼포먼스로 말미암아 떨어졌다는 것이다. 7위를 한 김건모가 립스틱을 '짙게' 바른 행위가 평가단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자체' 평가를 했다. 반면에 1위를 한 윤도현의 '지휘자' 퍼포먼스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방송을 봤던 사람들은 누구든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여기에서 이상한 결론을 내릴 수 있는데 , 7위를 한 김건모의 퍼포먼스는 순위에 악영향을 미쳤으므로, 마땅히 그 순위를 재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1위를 한 윤도현의 퍼포먼스는 순위에 순영향을 끼쳤으므로 마땅히 윤도현의 '스마트'한 전략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김건모는 다시금 재도전이라는 매우 '용기있는' 결단을 내렸다.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은 바로 제작진이 프로그램의 어디까지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냐이다. 김건모의 재도전에는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재도전이라는 새로운 규칙을 그 자리에서 뚝딱 만들어버리는 제작진에게는 공감이 가질 않는다. 더구나 이젠 청중 평가단이 무색할 지경이다. 그들은 무엇 때문에 점수를 매기는 것일까? 청중 평가단은 꼴등을 한 가수는 다른 가수로 교체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사실을 직시하면서 1등 가수를 뽑은 것이다. 그런데 제작진은 마치 없던 일로 돌려놓았다. 재밌는 것은 만약 청중 평가단이 평가한 결과에서 똑같은 표를 얻은 가수가 6위에 2명 이상이 나왔다면 제작진은 어떤 식으로 7위를 발표할 것인가. 이미 청중 평가단은 자리를 뜬 상황일 텐데 말이다. 생각하면 제작진의 프로그램의 깊은 고뇌가 보이지 않는다. 자신들이 기획하고 제작하였음에도 말이다.

떨어뜨리기 위한 방송이 아니라고 재차 강변을 해왔고, 떨어지는 것이 실력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했지만, 제작진은 앞서 언급한 '검'을 무서워한 것이 틀림없다. 또 어떤 분위기를 흐르는 것을 매우 경계한듯하다. 이제 영향은 가수들에게 미칠 것이다. 과연 그들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할 것인가. 임전무퇴의 마음가짐은 임전유퇴가 한 번 일어남으로써 관객들에게는 반감되어 보일 것이다. 지루해질 수도 있다. 어떤 노래냐가 아니라, 어떤 퍼포먼스냐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도 없게 되었다. 그전까진 퍼포먼스도 선택된 노래 속 하나의 가락으로 봐줄 수도 있었지만, 이제는 지뢰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 것이다.

오늘 방송분을 보고 마치 정치판을 보는듯했다. 정치는 말 그대로 공정해야 하지만, 그 공정성을 정치가들이 스스로 정함으로써 판도를 바꾼다. 엉뚱한 흐름이 엉뚱한 현실을 만들고, 그게 역사가 된다. 물론 이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나는 가수다가 규칙을 깸으로써 이미 '나는 가수다'는 2회에서 종영한 것과 다름없어졌고, 이젠 새로운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1-03-21 2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22 0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