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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들의 생각과 힘 - 과학과 왕립학회 이야기
빌 브라이슨 지음, 이덕환 옮김 / 까치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자연철학과 자연과학의 걸죽한 향연. 이 책을 한마디로 얘기해본다면 그렇다. 너무나 걸죽하다. 이야기라는 수프를 한 수저 뜨자 걸죽한 묘한 덩어리들이 바닥까지 죽 느려뜨려진다. 너무나도 걸죽해서 (나에게는) 먹기도 전에 질리고, 느끼했다. 어렵다는 감상을 떠나서 매우 압축적인 각각의 글 꼭지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생각을 따라가기에도 벅차다. 이 책은 20명의 과학 저술가 혹은 과학자들이 자신들이 연구하는 영역안에서(어쩌면 영역밖을 넘어서) 펼쳐졌던 하지만 그리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과학사에 종종 등장하는 거인들은 뉴턴 이전 시대의 거장들이다. 거인이 어디에서부터 등장했는지 잠시 다른 책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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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더 멀리 보아왔다면, 그것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오(If I have seen farther, it is by standing on the shoulders of giants)." 아이작 뉴턴은 1676년에 로버트 훅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사실 그것은 광학에서의 발견에 대한 언급이었을 뿐, 좀더 중요한 중력 이론이나 운동 법칙에 관한 것이 아니었지만, 과학을 비롯한 문명 전체가 그 이전에 이루어진 성과 위에 새롭게 구축되는 일련의 누적적인 진보라는 것을 밝혀 주었다는 점에서 적절한 언급이었다...(중략)...
스티븐 호킹 편저,『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서』중 서문에서 발췌, 까치,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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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들의 생각과 힘』은 스티븐 호킹이 편저한 책의 발췌문에서 표현한 것처럼 우리 세계를 이룬 누적적인 과학의 진보의 과정을 여러 에세이들로 묶은 책이다. (인용문의 굵은 글씨나 밑줄은 내가 임으로 한 것임..) 그러니까 도대체 누적적인 진보가 뭘까? 그에 대한 답은 '경험철학'이라고 볼 수 있다. 사고실험을 통한 결과를 대화로 풀어가며 내 생각, 니 생각 어떻게 꿰어보고, 또 반론해보고 나름대로 결과를 유추해내는 것이 아닌, 한마디로 보고 듣고 수행한 일에 대하여 보고서로 작성하고 그 보고서를 돌려 다른 사람에게 읽히고 그와 유사한 일에 대해 또 같이 사유해보고 기록하는 요즘말로 일련의 과학을 수행하는 초기 버전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그러니까 과학적 지식을 모으는 것이 아닌 과학적 지식을 만드는 일을 의미한다. 다시말해 이 책은 기록에 대한 증언이다.
서론은 '빌 브라이슨'이 썼는데 왕립학회란 어떤 곳인지 개략적으로 설명을 한다. 빌 브라이슨이 말하는 왕립학회는 먼저
'비국수적이고 중립적인 국제적인 단체로 회원 자격으로는 과학적 성실성과 창의성을 우선적으로 꼽으며, 3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권위를 자랑하는 단체'쯤으로 요약된다. 빌 브라이슨의 서문을 읽어보면 과학적 통찰과 영감 혹은 사실의 발견보다는 그런 것들을 이룬 사람들에게 더 애정을 보인다. 왕립학회에서 발굴한 과학적 사실보다는 발굴의 과정에 다양한 의견을 내었던(물론 발굴자를 포함한) 그 사람들의 삶의 투쟁(학문적 투쟁)이 곧 왕립학회의 역사라는 의미이다. 그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낸 결과물은 단지 하나의 보답물쯤으로 본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보답물인 실험기자재들을 포함한 자료들은 아주 중요한 역사적 보물로 왕립학회에서 보관하고 있다.
앞서 중립적 단체라 함은 왕립학회(Royal Socity)라는 단체명에 왕이라는 정치적 지칭어가 들어갔음에도 런던을 붙여 놓음으로써 중립적 위치로 돌린다는 의미로 풀이한다. 즉, 영국 왕립학회가 아닌 런던 왕립학회가 정식명칭이다. 이 학회 멤버들은 요즘 말로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TV 프로그램의 VJ들이다. 이상하거나 희귀한 사건이 벌어지면 일단 회원들을 보내 조사하게끔 하고 보고서를 받는다. 현대인의 시각으로 보자면 왠지 코믹쪽 요소가 보인다. 그 고전적 VJ들의 과정의 이야기가 곧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이며, 또 현대의 VJ들 그러니까 현재 왕립학회 멤버인 과학자들의 이야기도 실려있다. 이러한 허무맹랑을 좇는 상황을 '마거릿 애트우드'는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와 비교하여 들려준다. 미친짓같이 보이지만, 결국엔 미친짓은 아니라는 소리이다.
왕의 시대에는 신의 이름으로 민중위에 군림한다. 신이 만들어낸 모든 현상들은 왕이 알고 있어야 하며, 왕에 의해서 이름 지어진다. 물론 그 이전에 일련의 이런 과학적 발견이나 물질의 발견은 왕의 이름으로 헌상되어지는 것이 관례이다. 그렇다고 왕 스스로가 이름짓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왕과 신을 떠올리게 만드는 그럴듯한 이름 붙여지며, 우주의 기초가 되는 사상에 맞추어 이름 지으려 노력한다. 합리주의적 철학이나 경험주의적 철학과 같은 사상을 바탕으로 그들은 우주를 규정하고 세상을 규정하고 왕의 권위를 세운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레베카 뉴버거 골드스타인'의 <이름에 담긴 뜻은?> 이라는 꼭지에 실려있다.
'사이먼 샤퍼'의 <전기를 가진 대기> 이야기는 당시 최첨단 기술인 피뢰침에 관련한 이야기이다. 벼락을 맞아 불에 탄 건물을 조사하던 중 그 건물이 최첨단 기술이었던 피뢰침이 설치된 건물이었음을 알게된다. 사람들은 지적 미로에 빠져버렸다. 피뢰침 자체가 번개의 피해에서 자유롭게 해준다는 생각이 틀린 생각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에서부터 너무나 뾰족하면 의외로 부작용이 생겨 번개를 불러온다는 의구심까지 불러 일으키는 골치아픈 문제로까지 번졌다. 사실 왕립학회는 미국의 벤저민 프랭클린의 이론을 수용했다. 더구나 그의 논리적 이론과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실험은 왕립학회 멤버들에게는 아주 매력적이었고 프랭클린에게 메달과 왕립학회 회원 자격까지 수여하였다. 이제 하나의 반증이 나타남으로써 피뢰침에 대한 의구심이 곧 미국인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이제 미국과의 전쟁에 군수품을 공급하던 군수원에도 이러한 보고가 들어갔고, 전면적인 재조사에 들어간다.
재밌는 것은 번개를 피하기 위해서는 번개를 불러들이는 회로를 설치해야한다는 딜레마이다. 이 딜레마를 극복하는 것을 '프로메테우스적 자유'라고 불렀는데, 이 자유를 얻기위해서는 또 그만큼의 내포된 위험성에 노출되는 이중적 상황에 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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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메테우스적 과학은 누구나 얻을 수 있는 경험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그런 원칙에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실험을 고안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는 것이 밝혀졌다. 일부 지역과 사람들만 신뢰할 수 있었다...(중략)...대법원장은 '과학의 문제에서 과학자의 주장에는 과학자만이 답변을 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문제는 누가 '과학자'인가를 결정하고, 위험스러운 프로메테우스적 과학을 어떻게 정립할 것인지였다. 타이탄이 불을 훔치고, 그에 대해서 지독한 벌을 받은 것은 자유 탐구와 그에 대한 벌칙을 뜻한다. 여성운동가 메리 울스턴크래프는 1794년에 프랑스 혁명에 대한 훌륭한 논평에서 '성직자들이 엄청난 강요의 구조를 세워놓은' 프로메테우스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그녀는 오히려 '우리는 인간이 더욱 지혜로워지면 아무 생각도 없이 서로에게 더 큰 행복을 제공하게 될 것임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 세대도 지나지 않아서 그녀의 딸인 메리 셸리가 과학적 야망과 그것의 두려운 결과에 대한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렇게 등장한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의 부제가 바로 「현대의 프로메테우스(The Modern Prometheus)」였다.
『거인들의 생각과 힘』중에서, p.161~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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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간단하게나마 다른 이야기의 꼭지들을 소개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너무나 방대해져서 '리뷰'라는 목적에도 맞지 않게 되어버린다. 물론 내가 완벽히 소화한 것도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이 책은 읽는다고 해서 그러니까 독자의 눈이 흰 바탕의 검은 글자들을 따라간다고 해서 자연적으로 머리속에 이미지화 되는 그런 책이 아니다. 문자를 이미지화 시키기에도 독자의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거인들의 생각과 힘』은 한 권의 책이지만, 과학 이슈를 담은 과학잡지를 보는 듯 하다. 그만큼 읽을거리, 생각할거리를 던져준다. 특별한 최신 이론을 소개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과학자들을 소개함으로써 흔히들 지나치기 쉬운 과학사의 틈새를 메꿔준다. 사실 이 책은 당장 우리에게 어떤 지적 욕구를 채워준다기 보다는 다른 과학서적의 독서에 도움을 주는 배경 지식을 깔아준다. 20여편의 에세이에 등장하는 소재는 다양하다. 천문학, 우주론, 광학, 생물학, 진화론, 비행역학, 지질학, 화석학, 양자역학 등등으로 말이다.
가령 이런 것이다. DNA를 발견한 과학자를 우리는 안다. 또 X선을 발견한 사람을 우리는 안다. 그렇다면 DNA를 X선으로 찍은 사람은 누구일까? 뭐, 이렇게 직관적인 물음으로 시작하는 책은 전혀 아니지만, 읽다보면 알아서 스스로 정보를 조합할 수 있다. 참, 답은 '빌 아스트버리(FRS 1940년)' 이다. 여기에서 'FRS 1940년'이란 Fellow of the Royal Socity의 약자로 1940년에 왕립학회 회원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얼마전에 『막스플랑크 평전』을 읽었다. 그 책은 독일의 근대 과학사를 이야기하는데, 이 책은 영국의 과학사 특히 왕립학회를 통해 펼쳐지는 과학사를 들려준다. 두 권의 책에서 서로의 대척점은 없을지라도 그만큼 개인적, 단체적, 국가적으로 얼마나 과학에, 학문에, 지식에 힘을 쏟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지 느끼게 한다.
음, 우리는 어떨까. 우리도 과학의 증언에 힘을 쏟고 있겠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