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브라이언 그린의 신작이 아마존에서 소개된 것을 보고 오매불망하였으나 막상 우리말로 번역되어 책이 나오니 다른 책들에 밀려 구입이 계속 미루어진다.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몇 권의 우주론 관련 서적을 읽었기에 구입은 조금 뒤로 미뤄질 듯 하다. 

  신작 원제는「The Hidden Reality」이고 번역본 제목은「멀티 유니버스」. 번역서 제목이 조금 불만족스럽다. 영어에서 유니버스 단어 자체가 복수형을 인정하지 않을듯 하지만 유니버스는 복수형이 가능하고 코스모스가 복수형이 불가다. 따라서 '멀티 유니버시스'가 맞겠지만, 우리글로 그대로 옮기면 더욱 이상해져서 이것저것 절충을 하여 '멀티 유니버스'로 나온듯 하다. 사실 이보다는 '멀티버스 multiverse'를 더욱 많이들 쓰지만 일단 '유니'가 들어가야 우주론관련 서적인줄 알지 '멀티버스'라고만 한다면 자기계발서부터 컴퓨터 전공서적(-verse를 -bus로 읽는다면...)까지 추정 범위가 넓어질듯 하다. 아마 과학서적, 특히 우주론 관련 이야기를 많이 접해보지 않은 독자까지 고려하지 않았나 혼자 추정할 뿐이지만 조금 아쉽기도 하다(멀티버스와 같은 말로 메가버스나 멀티 유니버시스 등이 있다).

  책을 읽어보지 않아 Reality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언급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숨겨져 있다는 단서에서 몇 가지 것들을 떠오르게 한다. 일단 인간의 눈으로는 절대 볼 수 없는 것일테고, 또한 보이지 않는다고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마 이마저도 인간의 감각을 총동원한다 하더라도 알아채기 쉽지 않은 것일테다. 

 자연과학 책, 특히 우주론 관련 책은 읽어도 읽어도 별 진전이 없다. 몇 권을 보았든지간에 공간이 어쩌고 시간이 어쩌고 하면 머리가 팽팽 돈다. 글을 읽고 머리속에서 문맥을 이해하려 해보지만 쉽지 않다. 누군가는 과학을 그림으로 그려가면 (수식보다도) 이해하기 쉽다고는 하지만, (다이어그램으로 유명한) 파인만이나 펜로즈를 어찌 따라잡을 수 있겠는가. 그래도 다양한 책들을 보며 개념이 같은 부분을 이 책에서는 어떻게 썼고, 저 책에서는 어떻게 옮겼는지만 보는것으로 만족해야 할듯 싶다. 어쩌다 좋은 책 만나면 그 부분의 이해도가 약간은 진척이 있을 테고. 혹 없어도 무슨 상관?

'없음' 그리고 무(無), 진공

숨겨진 실체, 또는 보이지 않는 실체하면 가장 대표적인 것이 '없음'이다. 

_마커스 초운, 「현대과학의 열쇠, 퀀텀 유니버스」, 마티
 
* 74쪽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를 재구성해 보면 입자의 에너지와 그것이 존재했던 시간의 양을 동시에 측정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요컨대 우리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특정한 빈 공간에서 일어나는 사태에 주목한다면 그 공간의 에너지 내용에 커다란 불확실성이 존재할 것이다. 다시 말해 에너지가 무(無)에서 출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질량은 일종의 에너지이다. 그러니 질량 또한 무에서 출현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질량이 아주 짧은 시간 동안만 존재했다가 다시 사라진다는 단서가 붙기는 한다. 마치 사물이 무에서 출현하는 것을 막는 자연 법칙이 아주 빨리 잠깐 동안만 일어나는 사태는 못 본 체하는 것 같다.

비록 아무것도 없게만 보이는 공간이지만,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에 따라 순간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에너지 파동이 존재하고, E=mc^2에서 보여지듯이, 에너지는 질량의 또 다른 이름이므로 '없음'의 공간 밖으로 질량을 지닌 알갱이들이 튀어나온다는 얘기다. 이 얼마나 정갈하고 깔끔한 말인가. 우주의 근본이 무(無)의 상태에서 출발한다는 하나의 논리가 세워진 것이다. 이런 양자가 파동을 일으키는 상태, 그러니까 '양자 진공'에서 나타나는 에너지를 '진공에너지'라 한다. 

  현재의 기술로도 완벽한 진공은 어렵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입자의 수가 희박하다는 진공을 의미한다기 보다는 여기에서는 에너지가 깃들여있는 진공이라 여기면 된다.이를 검증한 것으로는 '카시미르 효과(혹은 힘) Casimir effect(force)'가 유명한데, 진공속에 두 개의 대전되지 않은 금속판을 아주 가까이 놓았더니 이 금속판들이 서로 끌어당기더라는 것이다. 1948년에 네덜란드 물리학자인 헨드리크 카시미르가 제안을 했지만 기술적 문제로 1997년에야 실험을 하였다 한다. 이 실험의 의미를 역으로 생각해보면, 우리가 아주 어렵사리 정말 텅 빈 공간, 진공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그 공간에는 숨겨진 에너지가 존재하며, 이는 양자적인 어떤 힘이 꾸준히 관여한다는 의미가 된다. 이 양자적 어떤 힘을 '양자 떨림 (혹은 요동) quantum jitter'라고 한다. 이 양자 떨림을 통해 튀어나오는 입자를  '가상 입자(virtual particle ;  생존기간lifetime이 아주 짧은 입자)'라 부른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끈이론은 어떤 진동은 A라는 입자를 만들고, 또 다른 진동은 B라는 입자를 만든다는 이론이다. 또 초끈이론은 A와 B가 대칭이되는 입자일 수 있는데, 여기에서 입자의 대칭이란 페르미온과 보존 입자들을 가리킨다. 즉 물질에 짝이 되는 물질이 있다는 의미이다. (여기에서는 초대칭은 넘어가겠다.)

 
 질량을 가진 입자가 생성되었다면, 이는 시공간이라는 자리를 깔았다는 뜻이다. 시간은 사실 인간의 관념이다. 왜냐하면 절대로 측정 불가하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지. "시계가 측정하는 것이 바로 시간이다"라고.) 태양과 지구의 거리가 다르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은 전혀 다른 관점으로 느껴질 것이다. 시간과 공간은 서로 상대적이라서 아인슈타인은 시간을 공간과 묶을 수 있었다. 시공간(spacetime)이라는 개념으로 퉁쳤다. 지구에 있는 우리는 그래서 시공간속에 있고, 이 시공간은 너와 나의 각자의 개념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 내 시간 다르고 니 시간 다르다는 의미. 내가 아주 빨리 이동한다면 공간은 단축되겠지만 그 보상으로 시간은 연장된다(같은 의미로 공간의 수축과 시간의 팽창이라고도 한다). 따라서 엄청 빨리 움직이면 시간이 더욱 늦어져 우리는 젊어지는 것이다. 아니 그만큼 천천히 시간은 흐른다. 그 예가 쌍둥이 패러독스이다. 어쨌든 시간과 공간은 한통속이라는 것.

인플레이션

  멀티버스는 사실 이론이 아니다. 그냥 추측이고 가설일 뿐이다. 따라서 이 개념에 대항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아까 진공에너지 이야기를 하였는데, 이 진공에너지는 사실 우주의 시작과 관련이 있다. 물질의 탄생, 그래서 질량에 대응하는 공간이 만들어지고, 시간이 만들어진 이러한 시작이라는 개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인플레이션 이론이다.  


 _마르틴 보요발트,「빅뱅 이전」, 김영사 

* 235쪽
처음에는 물질을 포함하지 않고 있던 진공상태가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는 동안 점점 더 많은 입자들로 채워지는 것이다. 

우주론에서 이것은 빅뱅의 완전한 진공상태가 인플레이션이 진행되는 동안 그대로 남아 있지 않고 물질로 채워지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중략)...


* 236쪽
입자의 창조는 다음과 같이 일어난다. 다른 상태와 마찬가지로 팽창하는 우주에서 물질의 진공상태도 요동을 친다. 모든 입자의 수는 평균적으로 0이지만-따라서 진공상태라고 할 수 있지만- 정확히 말하면 그렇지 않다. 요동은 전자의 파동함수 위치가 평균적으로만 정확하게 결정되는 것과 비슷하다. ...(중략)... 그러나 우주의 팽창은 역학에서의 유효 힘처럼 물질의 파동함수에 의해 결정되는 입자의 수에 양자 요동이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략)... 
초기 뜨거운 우주는 식어가기 시작하는데 온도가 낮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에너지가 떨어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그렇게 잘 떨어지다가 한 순간에 에너지가 요동을 친다. 언덕에서 돌을 굴렸는데 그대로 쭉 (최소에너지를 향해서) 미끄러져 내려와야한다. 그런데 잘 내려오다가 삐죽 나온 바위에 걸려 굴린 돌이 일순간에 튀어 오른다. 이때 에너지는 변화를 겪는다. 순간 인플라톤장(팽창할 수 있는 음압을 만들어낸다. 이땐 중력이 척력으로서 작용한다)이 그 작은 공간에 퍼지고 그러다가 우주가 인플레이션-단순히 팽창이라면 영어로 expansion이지만, 이때의 팽창은 우리말로는 급팽창이고, 영어로는 말 그대로 inflation이다-이라는 하나의 작용을 하기 시작하여 그 짧은 시간에 공간이 급격히 팽창이 되어 지금의 우주(물질로 채워진)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때 거의 진공상태이지만 돌부리에 걸려 에너지가 요동을 치게 한 그 상태를 '가짜진공'이라 말한다. 곧 이 가짜진공은 바닥상태의 진공상태로 떨어지지만, 가짜진공 상태의 시간이 얼마냐 길었느냐에 따라 지금의 우주를 만들게한 충분한 팽창이 있느냐로 수렴된다. 그 지연된 기간이 충분히 길었기에 지평선 문제, 평평성 문제, 자기홀극 문제를 극복했다고 본다. 

  _브라이언 그린,「우주의 구조」, 승산 

* 580쪽
정확한 관측데이터가 점차 많아지면서 관측결과와 일치하지 않는 이론들은 사라졌고, 지금은 인플레이션 우주론이 가장 유망한 후보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10장에서 지적한 대로 인플레이션이론은 단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우주론학자들은 다양한 형태의 인플레이션이론들을 제시해 왔는데(구형old 인플레이션, 신형new 인플레이션, 고온warm 인플레이션, 혼합hybrid 인플레이션, 하이퍼hyper 인플레이션, 원조assisted 인플레이션, 영구eternal 인플레이션, 확장extended 인플레이션, 혼돈chaotic 인플레이션, 이중double 인플레이션, 약한weak-scale 인플레이션, 초자연hypernatural 인플레이션 등), 우주가 초기에 급속한 팽창을 겪었다는 점에서는 모든 이론이 일치하고 있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많은 차이를 보인다.
 인플레이션 이론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여러개 있다. 따라서 어떤 인플레이션 이론을 채택하냐에 따라 수많은 우주를 만들어 낼 수 있고, 따라서 멀티버스 개념을 불러 올 수 있다. 특히 '혼돈chaotic 인플레이션'은 바닥상태로 붕괴되지 않는 진공(가짜진공)을 만들어 냄으로써 그 거품의 진공으로부터 수많은 우주를 자라게 한다는 이론이다. 그 거품 중 하나가 바로 우리의 우주이다. 또한 그렇게 생긴 우주는 또 다시 어느 공간에서 다시금 인플레이션을 진행시키는데 또 다른 자손우주들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영구히 증가하는 모델을 영구eternal 인플레이션이라고도 한다. 혼돈 인플레이션은 영구 인플레이션 중 하나이다.

 우주의 암흑 에너지는 하나의 예측이다. 그럼 이것을 기존에 알고 있는 무엇과 대응시키고 싶어할까. 그것은 앞서 말한 진공에너지이다. 그래서 주된 의견 중 하나가 진공에너지는 암흑에너지일 수 있다는 가설이다. 그런데 이 암흑에너지는 상당히 재미있다. 우주의 팽창을 야기한다고 그랬는데, 먼 물체일수록 더 빠른 속도로 가속한다는 것은 우리의 인식으로는 이해가 가질 않는다. 무슨 말이냐면, 내 1m앞에 A라는 물체가 있는데 1초 후에는 나를 기준으로 1m 더 멀어진다는 거다. 사실 나와 A라는 물체 기준으로 서로를 향해 1초당 0.5m씩 멀어지는 것이다. 우주의 팽창(expansion)은 고정된 기준점이 없고 각 기준으로 우주 곳곳에서 그냥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B라는 물체가 나보다 10km더 멀리 있다면 1초 후에 10km+1m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같은 비율로 1초 후에 10km로 벌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멀리 있는 물체일수록 단위 시간당 더 벌어진다. 이것이 팽창이론의 기본 개념이다.

  우주를 얘기할 때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관측 가능한 우주와 그렇지 않은 우주. 관측 가능한 우주의 끝을 지평선이라 부른다. 이 지평선 너머는 도저히 관측할 수 없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다시 어린애들과 같은 유치한 상상력을 부여한다. 지평선 너머의 우주는 우리의 우주와 같이 동작할까?

  그렇다고 보는 과학자들은 멀티버스를 얘기하고, 그렇지 않다고 보는 과학자들은 멀티버스 같은 것은 없고 똑같이 우리 우주 법칙을 따른다고 반박한다. 물론 나는 지금 멀티버스를 얘기하므로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얘기해야 한다. 이제부터는 말 그대로 상상이다.  


  파동함수

 
  죽었니? 살았니? 라는 슈뢰딩거의 고양이에 대한 개념은 양자역학의 가장 기본이 되는 'AND'로직이다. 물론 이 경우에는 '살았고, 죽었고'로 대변되지만. 굉장히 번뜩이는 아이디어인데 문제는 고양이에게만 초점이 맞춰진다는 것이다. 고양이의 상태를 본다는 관찰자의 관찰자체가 살아있다와 죽었다의 최종 상태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인데, 관찰자의 존재는 또 다른 관찰을 불러일으킨다. 따라서 관찰자를 본 제2의 관찰자, 또 그 관찰자를 본 제3의 관찰자가 계속 다단계처럼 나와주어야한다. 물론 샘솟듯 나오는 것도 괴로운일이다. 따라서 고양이에 대한 파동함수의 붕괴(죽었다는 파동함수가 붕괴되면 고양이는 살아있고, 살아있는 파동함수가 붕괴되면 고양이는 죽어있다라는...)를 고려하면 관측자의 붕괴도 같이 고려되어져야 하는(왜냐하면 물리법칙은 고양이든 관찰자든 같아야 하므로 다른 관찰자가 보면 그 전의 관찰자의 파동함수도 붕괴되어야 한다) 문제에 이르는 것이다. 그래서 이 문제를 우회하려는 하나의 해법으로 휴 에버렛 3세는 파동함수가 붕괴하지 않고 갈라진다는 역발상을 편다. 이게 바로 SF의 흔한 떡밥으로 우리에게는 다른 멀티버스 이론보다 매력적으로 들린다. 즉 내가 대통령인 우주도 있고, 또 거지인 우주도 존재한다는 내용이다. 물론 나의 우주에서는 안타깝게도 거지에 가깝지만. 상자를 열어 관찰자가 고양이가 죽어있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파동함수는 갈라져 살아있는 고양이는 알 수 없는 우주에서 잘먹고 잘살수 있다는 얘기다(이와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이 휴 에버렛 3세의 '다중세계해석'이다. 이때 갈라진 세계는 원래 진행하고 있는 세계 옆에 존재하게 되는데, 이때의 세계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진동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와는 전혀 다른 세계로 인식하여 바로 옆에 그 세계가 있어도 서로 간섭을 하지 못한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M이론과 닮아 있다. 과학자들은 우리의 우주를 '3-브레인'이라 추정을 한다.


  이런 갈라지는 세계에 대한 해석은 사실 닐스 보어를 주축으로 한 코펜하겐 해석과는 전혀 다른 것인데, 사실 파동함수가 붕괴된다는 법칙은 없다. 슈뢰딩거는 파동함수만을 선 보였지만 이것이 붕괴된다는 어떠한 주장도 펴지 않았다. 다중세계해석이나 파동함수가 붕괴된다는 얘기의 바탕에는 관찰의 처리 문제가 깔려있다. 관찰자. 이것이 우리에게는 문제다.

  결국에는 관찰자를 어떻게 처리하냐에 따라 다중세계해석과 코펜하겐 해석으로 나눌 수 있다. 물론 또 다른 의견들도 있지만 책에서도 나머지 의견에 대해서 그렇게 잘 다루지 않으므로 나 또한 모른다. 앞서 우주의 지평선 얘기를 했지만, 이 지평선 밖은 우리가 관찰자의 입장에서 벗어나게 한다. 그러므로 이 우주는 이제 지멋대로 뻗어 나갈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관찰하지 못했고 그래서 검증하지 않았기에 그렇다. 

  우주는 인플레이션으로 지금과 같은 우주를 형성했는데, 이 인플레이션이 지평선 너머의 우주에서는 또 다르게 급격히 팽창시킨다면, 그리고 전혀 다른 에너지 레벨에서 이루어진다면? 갈수록 복잡해지는데, 어쨌든 뭔가 넘치거나 모자른 우주가 생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우주의 토대가 되는 네가지 힘, 강한 핵력, 약한 핵력, 전자기력, 중력 이것들이 우리의 우주가 가지는 값(상수)들과 다른 범위의 값을 가진다면? 혹은 이들중 하나가 빠져있다면? 이것이 멀티버스의 기본이다. 결국 다른 값들이 가지는 우주의 풍경(landscape)에 따라서 전혀 다른 우주의 풍경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방금 말한 풍경은 두 가지 개념이 있다. 미시적인 풍경과 거시적인 풍경. 미시적인 풍경은 양자 떨림이 보이는 세계에서 이뤄지는 산과 계곡이다. 무슨 말이냐면 입자의 존재 확률이 커질수록 파동은 보강이 되고 이것은 산처럼 삐죽 솟아난다. 하지만 확률이 조금 더 떨어지면 확률의 세기(magnitude)는 약해지고 앞서 말한 산보다는 작아진다. 이런 서로 다른 확률들이 모여있으면 그것은 산맥과 같은 풍경을 이루고 확률이 없는 순간, 그러니까 어찌어찌해서 에너지 혹은 입자들이 상쇄되는 경우는 그냥 평평한 바닥이 되다. 미시적인 양자의 레벨에서 보면 이렇게 하나의 풍경으로 보여진다. 거시적인 경우는 앞서 말한 우주의 기본적인 힘들이 우리의 우주와는 전혀 다를 경우 그 우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이되고, 그렇게 우주는 또 다른 풍경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레너드 서스킨드가 주장하는 풍경은 이렇게 해서 나왔다. 그 시작은 화학의 분자 레벨에서 본 분자들의 생김새에서 따오긴 했지만 말이다.


빅뱅, 빅크런치, 빅립
 

  정리해보자면, 다중 우주, 멀티버스라고 부르는 것은 대충 두 가지 개념으로 볼 수 있다. 하나는 파동함수가 붕괴되지 않고 분기되어 진행할 때, 다른 하나는 우주의 힘이 우리의 것과는 다를때. 대충 이렇게 보면 된다. 따라서 이런 멀티버스 개념을 레벨로 나눈 사람이 있다. Max Tegmark라는 과학자인데 크게 멀티버스를 레벨 1에서 레벨 4까지로 나누었다. 따로 설명하자니 또 길어지므로 링크와 연결 시키려 한다. 어쨌든 이론적으로 정립된 것은 없고, 각자 상상한대로 주장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검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우주가 확률로 이루어졌다면, 여러번 주사위를 던져 많이 나오는 것으로 그려낼 수 있지만, 우주는 딱 한 번 주사위를 던져진 것과 같다. 물론 우리의 인식에서 그렇다. 빅뱅이 한 번 이루어졌고, 그래서 지금의 우주가 만들어졌다는 것.

  그렇다면 과연 빅뱅은 한 번 이루어졌을까? 그렇지 않다는 이론도 있다. 따라서 이 우주는 생성과 소멸을 주기적으로 한다.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인간 세계를 구원할 유일한 존재인가?와 같은 물음이다. 영화에서 네오는 7번째 네오다. 다만 앞선 네오들은 실패를 해서 우주를 싸그리 말아먹은 존재이긴 하지만. 어쨌든 오라클의 예언은 네오가 인간들을 기계에서 해방시킬 수 있다는것. 물론 여기에서 해방은 감독탓이긴 하지만 어쨌든 휴전을 의미한다. 영화 속 아키텍처가 레지스트리 정리할 필요가 있어서 싸그리 하드를 밀어버리려 하는 찰나에 네오가 잠깐! 우리가 알아서 조각모음 하겠다고 나서며 일단 붕괴를 막았다. 간략히 말하면 이렇게 없어질 우주를 '빅크런치'와 대응시킬 수 있고, 막판에 다시금 우주를 거주할 수 있는 환경으로 변모하기 시작하는 것을 '빅바운스'로 대응시킬 수 있다. 우리의 다양한 우주이론 중 하나가 그렇다. 그것은 우주는 수시로 빅뱅과 빅크런치가 반복하고 있다는 것. 빅크런치는 한마디로 우주의 수축이고 소멸이다. 이런 빅크런치는 우주의 임계밀도와 관련되어 있다. 우주의 평균밀도가 임계밀도보다 작다면 질량에서 야기되는 중력이 약하기 때문에 인력은 척력의 힘에 미치지 않아 팽창을 지속한다. 하지만 그보다 크다면 우주는 인력이 강해져 한 점(특이점)으로 수렴하려 할 것이다. 결국 이런 종말을 '빅크런치big crunch' 라한다. 그렇다면 우주의 밀도에 영향을 주는 것은 무엇일까? 이것을 '암흑 물질dark matter'이라 한다. 어쨌든, 보이지 않는(관찰이 불가능한) 우주에는 암흑 물질이 존재할 것이라고 추측한다. 다시 팽창하는 우주를 그려보자. 지속적인 팽창은 물질을 서로 더 멀리 공간속으로 떨어칠 것이고, 이는 중력의 세기가 너무 약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우주는 또 다른 시나리오로 종말을 맞는다. 중력의 세기가 약해서 모든 물질과 공간, 그래서 시간마저 찢어져 버리는 현상, 이것을 '빅립big rip'이라 한다. 그렇다면 평균밀도와 임계밀도가 같다면? 이런 팽창은 급격한 변화없는 평탄한 무한의 우주로 보이게 한다.


양자중력


  _ 브라이언 그린,「우주의 구조」, 승산 

* 658쪽 

끈이론과 루프-양자중력이론은 각기 다른 방법으로 양자적 중력이론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사실, 끈이론은 전통적인 입자물리학의 성공사레를 등에 업고 발전한 측면이 크다. 그래서 초기의 끈이론학자들은 중력을 부수적인 문제로 취급했었다. 그러나 루프-양자중력은 일반상대성이론에 뿌리를 둔 이론이었으므로 처음부터 중력을 중요하게 다루어 왔다. 이들을 한 문장으로 비교한다면 끈이론은 작은 영역(양자역학)에서 출발하여 큰 영역(중력)으로 진화해 온 반면에 루프-양자중력은 큰 영역(중력)에서 출발하여 작은 영역(양자역학)으로 진화해 왔다고 할 수 있다.

  빅뱅, 빅크런치, 빅립 등을 보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중력'이다. 우주의 생성과 소멸은 임계밀도와 중력과의 관련이 있다. 따라서 중력을 보다 양자적 입장에서 쳐다봐야한다는 이론이 등장할법 하다. 이런 하나의 덩어리 이론이 '양자중력'이다. 그리고 이것을 기술하는 하위 이론들이 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루프양자중력'이다. 이 이론의 특징은 시공간을 원자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마치 공간의 디지털화라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디지털화 시킨 것이 아닌 양자화이지만. 그리고 이 공간원자를 1차원 루프형태로 매치시킨다. 이런 루프의 모임을 망사스타킹으로 보면 된다. 루프양자중력 이론이 나오게 된 이유는 기존의 양자역학으로는 거시 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중력을 양자화하기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대 과학이 우주를 기하학적인 배열로 놓았듯이 양자중력 이론에서도 시공간을 구조가 있는 배열로 본다. 쉽지는 않지만 노드와 링크가 있는 토폴로지로 보면 되겠다. 가령 정보통신의 그물형, 스타형, 버스형과 같은 구조로 말이다. 결국 루프양자중력이론(이하 '루프중력론'이라 하겠다)에서의 특징은 '구조'이다. 이런 구조들의 집합체는 하나의 네트워크로서 작동한다. 이를 '스핀-네트워크'라 하는데, 노드와 링크에 숫자(양의 정수)로 라벨을 붙인다. 

_마르틴 보요발트,「빅뱅 이전」, 김영사 

* 15쪽
특히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이론의 결합 방법의 하나로 최근에 관심을 끌고 있는 루프 양자중력은 특이점이 없는 빅뱅과 관련된 결과를 제공했다. 이 이론에 의하면 우주는 빅뱅 이전에도 존재했다. 그러한 우주는 현재 우주와 어떻게 다른지도 대략 추정해냈다. 그것이 이후 우주 팽창 단계에 미치는 영향을 근거로 빅뱅 이전의 우주도 탐사할 수 있다.

* 170~171쪽
빅뱅 이전의 우주는 일반상대성이론 방정식이 아니라 루프양자우주론 방정식들로만 들여다 볼 수 있는 베일로 가려져 있다. 빅뱅 이전에 우주는 수축되고 있었다. 스스로의 무게에 의해서 작은 크기로 붕괴되어 결국에는 빅뱅의 뜨겁고 밀도가 높은 상태가 만들어졌다. 이러한 전환 자체도 중력의 양자이론으로만 분석할 수 있다. 고전이론의 한계는 양자이론적 성질을 고려한 좀더 포괄적인 이론들로 극복할 수 있었다. 빅뱅의 특이점은 빅뱅을 만들어낸 언어의 한계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것은 세상의 한계가 아니었다. ...(중략)...

... 양자역학에 의해 해결된 원자의 안정성 문제와 마찬가지로, 빅뱅의 특이점은 항상 인력으로만 작용하여 붕괴를 초래한 고전적 중력에 맞서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는 루프양자우주론의 새로운 반발력으로 막을 수 있다. ...(중략)... 빅뱅 이전에는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우주와는 반대로 수축하고 있었다. 붕괴에 의해 더 작아지고 뜨거워져 빅뱅 상태로 들어갔다. 그다음에는 양자 효과가 지배했다. 그리고 수축 속도가 줄어들다가 다시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팽창하는 우주가 나타났다. ...
루프중력론은 시공간원자의 구조를 매우 높은 밀도의 중력을 가진 성질로 바꿔놓는다. 여기에서 반발력이 뿜어져나온다. 가령 스펀지에 물을 먹인다고 생각해보자. 처음엔 물을 잘 빨아들이다 어느 시점에서는 더 이상 수용을 하지 못하고 물을 뱉어낸다. 마찬가지로 루프중력론에서도 시공간원자는 어떤 한계의 밀도를 넘어가면 반발력을 가진다(반대로 일반상대성이론에서는 계속 에너지를 먹어치우고 밀도는 무한히 증가한다). 보통의 밀도에서는 중력은 여전히 인력을 가진다. 어쨌든 밀도의 한계점 때문에 루프중력론에서는 특이점이 만들어지지 않으며, 이는 빅뱅의 이전 시간까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다. 어쨌든, 빅뱅 이전의 세계는 우리가 거울로 보는 세상과 같은 반사된 세상이라 하는데, 루프중력론이 맞는다면,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세상이 다른 우주 어딘가에서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와 모든 것이 반대인 세상이. 또 이 우주는 선순환을 하고 있다는 믿어지지 않는 얘기를 한다.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멀티버스를 왜 연구할까. 우리가 결코 볼 수도 없고 느낄수도 없는 우주인데 말이다. 사실 거의 모든 멀티버스이론은 인류원리(인본원리)로 수렴한다. 결국 상상속에서나마 우리가 살 수 있는 또 다른 우주를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물론 매트릭스에서의 보이는 인류원리는 누군가(아키텍쳐)의 설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우리가 살 수 있는 환경이 다른 우주에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혹은 다른 생명체이 있다면 어떻게 살아가고들 있는지, 거주하고 거주할 수 있는 환경을 그려내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 와중에 세상의 시작과 종말을 다루어야 한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이런 판타지와도 같은 것들은 사실 수학적 해로 존재하는 것이고, 수학적 기술의 오류를 발견한다면 바로 수정되어질 것이고, 그렇다면 우주는 또 다시 그 모습을 바꾸게 될 것이다. 



PS.   (많은 부분에서 비문이 보이므로 차츰 고쳐나가려 함..)

1. 처음에는 브라이언 그린의 새책을 구매하기 전에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짧은 글로 정리를 하려 하였으나 점점 더 길어지더니 정말 읽어보기 싫을 정도로 늘어났다. 그래도 우주론 관련 책들은 많이 읽었음에도 정리를 해본적이 없는데,  지금이라도 이렇게 정리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여러 책을 읽어가면서, 이 글을 뼈대 삼아 살은 살대로 붙이려고 노력해야겠다. 

2. 이 글을 쓰면서 책들을 다시금 뒤척이기도 하고 인터넷으로 찾아보기도 했는데, 어쨌든 오류가 있을 듯도 싶다. 사실 우주론책들마다 나오는 얘기들이지만 막상 내 머리로 정리하며 적어나가는데 쉽지는 않았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대충대충 책을 읽었는가 싶다. 그런데 또 죽으라고 읽을 필요도 없지 않은가. 어쨌든 이렇게 글이라도 써야 뭔가 남겠구나 하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3. 앞의 내용중, '빅뱅, 빅크런치, 빅립'에 대한 내용 안에 한가지가 더 들어가는데 너무 길어질까봐 뺐다. 그것은 '빅 스플랫'이다. 이것은 브레인 우주에서 두 브레인끼리 충돌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충돌후 두 우주는 밀려난 뒤 다시금 진화한다고 한다.

4. 양자중력이론에 대해서 좀 알기 위해 인터넷을 좀 보았는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래서 일부 내용은 영어로 해석한 것 몇가지를 조합해서 올렸다. 나중에 기회되면 이쪽 책도 좀 보고 싶다. 
「우주의 구조」에서 브라이언 그린은 앞으로는 양자중력과 초끈이론이 통합되어 우주를 풀 실마리를 얻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그랬다. 

5. 이 글을 쓰며 참조한 책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억의집 2012-02-19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 좀 만 더 일찍 써 주시지, 그러면 쿼크님께 tt 했을텐데요. 오늘 아침에 LHC 물리학의 최전선이 중고샵에 나왔길래 황급히 주문하면서 멀티유니버스도 주문했거든요.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잘 하세요. 이해가 안 간 부분이 있었는데 이 페이퍼 읽으니 이해가 될 듯 해요. 부럽습니다.
저도 우주의 풍경 조금 아주 조금 읽었는데,, 거기선 멀티버스라고 하겠다고 하더라구요. 메가버스보다. 근데 저도 그 책 조금 읽으면서 멀티버스에 회의가 들긴 해요. 정말 맞는 추측일까?하고요.

브라이언 그린은 빅뱅이론에 나왔다고 해서 흥미로워서 사 봤는데,,, 머리가 딸려서 이해 못 할 것 같아요. 저는 왜 그렇게 우주나 다윈책에 이끌릴까요?

퀴크님 이런 글 자주 올려 주세요. 한달에 한번 올리시는 것 같아요. 퀴크님의 과학책 리뷰나 페이퍼 기다리는 일인입니다. 이 페이퍼 읽으면서 퀴크님처럼 과학 전공자도 약간 어려워 하신다는 말에 왠지 위안이~

쿼크 2012-02-19 23:08   좋아요 0 | URL
아..'LHC 물리학의 최전선' 사셨군요. 저는 작년에 읽었는데..좋았습니다. 리뷰를 쓰긴 써야 하는데..읽고 나서 바로 안쓰면 그게 어렵더라구요. 이 페이퍼를 쓰고 이젠 'LHC 물리학의 최전선'이나 리뷰를 써볼까?라고 속으로 생각했었는데..조만간 뭔가라도 적어둬야겠네요..~~ (위의 '빅뱅이전'은 추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참...레너드 서스킨드는 메가버스라는 단어를 즐겨쓰죠. '우주의 풍경'이란 단어도 고집스럽게 쓰는것 보면 단어에 좀 집착이 있는 것 같아요. 멀티버스든 메가버스든 일단 관측불가영역에 대한 추측이므로 멀티버스 반대하는 사람들은 인류가 멸망할때까지 보지도 못할것(오히려 우주는 팽창하므로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보지 못하죠..) 뭐하러 상상이나 해댈까라고 주장도 하지만, 옹호자들은 일단 우리 우주에 대한 이해를 하기 위한 과정속의 부수적 산물이기도 하기에 멀티버스로 확장할 수 있다고도 하죠. 멀티버스 목차만 보더라도 사실 멀티버스에 관한 내용이라기 보다는, 매번 했던 블랙홀, 시간의 화살(시간의 비대칭성), 빅뱅, 인플레이션, M이론 등등 반복적으로 나오는듯 합니다. 이번 '멀티 유니버스'에서는 특히 홀로그래픽 우주에 대해 다루는 것 같기도 하구요.. 그런데 사실 이해 하나도 못하고 있어요. 이게 다 수학적 기술 방식이나 해이기 때문에 더 그런것 같아요..

저도 과학책 리뷰나 뭐 이런거 좋아하는데 사실 과학쪽은 글들이 많이 없어서 나라도 뭔가 쓰자 해서 쓰게 되었습니다. 과학쪽에는 좀 신경을 쓰려고 노력하는데, 오히려 역사(혹은 철학)를 모르면 안되겠더라구요. 그래서 역사를 읽으면 과학쪽에는 좀 소홀해지고..뭐 그렇게 되더라구요.

아무튼...한참 모자란 제 글을 좋아해주셔서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