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천황의 독특한
- 이름만 있고 성이 없다
- 역성혁명이 불가하다^^

혁명은 원래 ‘역성혁명易姓革命’의 준말로 왕조를 교체한다는 뜻이다. 군주가 덕이 부족하여 세상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할 때에는 천명天命이 그 왕조를 떠나 다른 가문으로 옮긴다는 천명사상이다. 임금의 성을 바꾸는 변혁, 즉 신라 김씨에서 고려 왕씨로, 고려 왕씨에서 조선 이씨로 천명이 옮겨가는 것이다. 무시무시한 사상이다. 이게 혁명이다.
그런데 일본은 어떤가. 역사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6세기 이후로는 한 번도 왕조가 바뀐 적이 없다. 법흥왕이나 진흥왕이 신라 임금이었던 시절에 일본에서 왕 노릇하던 그 집안이 지금도 왕이다. - <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93187


천황에겐 성이 없다. 히로히토, 아키히토, 그리고 지금 천황은 나루히토로 이름만 있다. 그러니 사실 역성易姓할래야 할 수도 없다. 우리는 김수로왕, 고주몽 등 아무리 왕이라도 성이 있다. 물론 천황 빼놓고 나머지 백성에게는 모두 성이 있다. 이 성들은 다 천황이 하사한 것이(라고 간주된)다. 사성賜姓이다. 그러니까 천황과 나머지 일본인은 차원이 다른 존재다. 조선의 왕이나 고려의 왕이라는 것은 왕이긴 하지만 크게 보면 수많은 성을 가진 사람들(백성百姓) 중의 최고 우두머리에 불과하다. 사대부의 예를 왕도 따라야 한다. 그러나 일본의 천황은 구름 위의 존재다.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존재다. 그러니 일본제국 시대에 ‘현인신現人神’이라고 해서 천황을 살아 있는 신으로 여기며 젊은이들을 가미가제로 내모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 <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93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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료마 대 쇼인, 국제주의와 민족주의

메이지유신 당시 청년들과는 달리 료마는 묘하게도 해외침략에 대해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는 해군육성과 무역추진 같은 바다와 관련된 주장을 주로 했지만 요시다 쇼인처럼 해외팽창론을 주장한 적은 거의 없다. 또 막부에 대해서도 ‘무조건 타도’를 외치지 않고, 지금까지 해온 막부의 공적을 인정할 건 인정한 위에서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시도했다. 요시다 쇼인 일파의 막부타도론, 존왕양이론과는 사뭇 결이 달랐던 것이다.
그래서 현재 일본 사회가 국제적인 마인드를 중시하고 아시아와의 협력을 중시할 때는 료마가 곧잘 소환된다. 일본의 대표적 국제통인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이 료마를 추앙한 게 좋은 예다. 반대로 일본의 민족주의를 강조하고 아시아에 대해 날선 자세를 보이는 정치세력은 요시다 쇼인을 즐겨 소환한다 - < 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 박훈 지음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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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 가능성과 계층상승 욕구

조선은 유동성이 강한 사회였기 때문에 가업에 대한 생각이 약했다. 지금도 자기 직업을 자식에게 물려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진 않다. 대개의 부모들은 자식들은 자기보다 더 나은 직업을 갖길 바란다. 또 그게 실제 가능했던 게 한국 사회였다. 한국인들의 유별난 계층상승욕은 실제로 그게 어느 정도 가능했기 때문에 형성된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봐야 상승 가망이 없는 사회에서 계층상승욕이 이렇게 광범하게 존재할 수는 없다.- < 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 박훈 지음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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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루터 노선 대 말콤 엑스 노선

1990년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흥망성쇠를 멀찌감치서 목도한 뒤부터 어떠한 이념 세례도 나에게 특별한 감흥을 주지 못했다. 페미니즘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견이지만, 모든 운동 노선은 ‘마틴 루서 킹의 길‘과 ‘맬컴 엑스의 길‘이 있다고 본다.1960년대 미국 흑인들이 온전한 시민권을 회복하는 방안을 놓고 전자는 린든 존슨 대통령이라는 리버럴 성향의 백인들을 포섭해 민권법을 개정하는 길을, 후자는 ‘흑인 해방을 위한 흑인 국가의 건설‘을 대안으로 각각 제시했다. 그러나 미국 사회의 실질적이고 점진적인 변화를 끌어 낸 것은 마틴 루서 킹의 온건 노선이었지. 맬컴 엑스의 ‘사이다 해법‘이 아니었다.

"백인들은 죽어도 흑인을 이해하지 못해"라는 식의 언설은 운동의 주체들에게 자기 위안을 줬을지는 모르지만, 운동의 확장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데아‘가 강한 분들에게는 유쾌하게 들리지 않을 얘기지만, 언젠가는 나의 진심이 전해지길 바란다. - P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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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형사재판 대 마녀사냥
- 기소자가 유죄를 증명할 것인가? 아니면 피의자가 무죄를 증명할 것인가?




누군가 나를 사기꾼 살인범이라고 지목했다고 가정하자. 지목한 사람이 개연성있는 근거를 먼저 내놔야 나 역시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는 ‘알리바이‘를 대지 않겠는가? 이것이야말로 여성운동 단체들이 이를 갈아온
‘중세 마녀사냥‘의 논리가 아닌가?

근대 형사재판은 의심만으로 마녀를 단정하고 화형에 처하는 식의 ‘마녀사냥‘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됐다.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죄 없음을 입증하라"는 것은 한마디로 시계추를 거꾸로 돌리는 역발상이다.

어쨌든 이런 식으로 피해자에게 피해자 중심주의와 2차 가해 금지, 피해자다움 요구 금지라는 ‘3중 갑옷‘을 덮어씌우고 밝히려는 진실이 과연 진실의 지위를 획득할 수 있을까?  - P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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