료마 대 쇼인, 국제주의와 민족주의

메이지유신 당시 청년들과는 달리 료마는 묘하게도 해외침략에 대해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는 해군육성과 무역추진 같은 바다와 관련된 주장을 주로 했지만 요시다 쇼인처럼 해외팽창론을 주장한 적은 거의 없다. 또 막부에 대해서도 ‘무조건 타도’를 외치지 않고, 지금까지 해온 막부의 공적을 인정할 건 인정한 위에서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시도했다. 요시다 쇼인 일파의 막부타도론, 존왕양이론과는 사뭇 결이 달랐던 것이다.
그래서 현재 일본 사회가 국제적인 마인드를 중시하고 아시아와의 협력을 중시할 때는 료마가 곧잘 소환된다. 일본의 대표적 국제통인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이 료마를 추앙한 게 좋은 예다. 반대로 일본의 민족주의를 강조하고 아시아에 대해 날선 자세를 보이는 정치세력은 요시다 쇼인을 즐겨 소환한다 - < 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 박훈 지음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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