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의 실재와 뜻의 희망

본래 성경은 현실세계를 설명하자는 과학이 아니고 뜻의 세계를 말하자는 것이다. 다만 설명의 자료로 이 현실계를 빌렸을 뿐이다. 마치 시인이 자기 속의 느낌을 나타내기 위하여 풍월을 그 자료로 쓰는 것과 마찬가지다.

“꽃이 웃는다. 새가 운다” 하는 것은 그 현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뜻을 말한 것이다. 웃고 운 것은 시인 자신이지 꽃이나 새가 아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현상계로 하면, 무한히 변천해갈 것이지, 종말이란 것이 있을 리 없다. 그러나 뜻으로 할 때에는 뜻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시간이 있다는 말이다. - <뜻으로 본 한국역사>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66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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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과학과 도덕적 목적

인생은 목적운동이다. 그 사상이야 유물적이건 유심적이건 사람인 다음에는 무슨 목적을 실현하려 움직이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은 늘 도덕적인 것이다. 그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 목적을 도덕적으로, 값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만은 다름이 없다. 이것은 사실이다. 이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과학적이 아니다. 정말 과학적인 태도는 인간에게는 과학 이상의 것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다. 사람은 다른 동물과 같이 과학의 대상도 되지만 또 그것만이 아니다. 그 이상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이 가치의 세계다. 값을 과학으로는 헤아리지 못한다. 뜻으로만 안다. - <뜻으로 본 한국역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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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치전!!


궁중에서 예언과 천문을 담당하는 신하가 나와서 간했다.
 
“두 사람은 보통 사람을 가리키고 한 사람은 폐하를 가리키는 것이옵니다.”
 
그 말에 놀란 왕이 봉투를 열어보았다. 봉투 속의 글은 간단했다.
 
거문고 갑을 쏴라!
 
왕은 궁으로 돌아와 지체 없이 거문고 갑을 쏘아버렸다. 거문고 갑 안에서는 비명이 흘러나왔다. 선혜 왕비와 궁에서 향을 피우며 불교 행사를 진행하는 스님이 함께 들어 있었다. 알고 보니 왕비와 스님이 사랑에 빠졌고 왕을 죽이기 위해 흉계를 꾸몄던 것이다. 왕은 신비로운 힘이 자신을 지켜준 것에 감사하기 위해 매년 첫 돼지날, 쥐날, 말날에 찰밥을 만들어 까마귀에 바치게 했다. 봉투를 건네 준 연못은 ‘서출지’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 < 하룻밤에 읽는 한국 고대사, 이문영 지음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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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고난의 5세기

458년, 42년간이나 왕위를 지켰던 눌지가 세상을 떠났다. 신라는 고구려의 영향으로부터 신라를 벗어나게 한 이 위대한 왕을 마립간이라 불렀다.

눌지 마립간이 맺은 신라와 백제의 화친은 진흥왕 (재위 540~576)의 배반이 있기까지 120년 이상 지속되었다. 왜적의 침입은 더욱 심해졌지만 백제와 화친으로 안정을 찾은 신라는 왜적 격퇴에 전력을 기울일 수 있었다.

500년, 소지 마립간(재위 479~500) 때의 침공을 끝으로 왜적의 침공은 더 이상 기록에 나타나지 않는다. 5세기가 끝났다. - < 하룻밤에 읽는 한국 고대사, 이문영 지음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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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슬라,아슬라


고구려는 여전히 신라를 한수 아래의 속국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고구려 장수는 남의 영토임에도 그곳에 들어가 사냥을 즐기곤 했다. 신라 하슬라 성주 삼직은 그런 고구려 장수를 잡아 죽이고 말았다 450년. 반 고구려 정서가 표면화한 것이다. - < 하룻밤에 읽는 한국 고대사, 이문영 지음 > 중에서


아슬라(阿瑟羅)

인문지리지명

 강원도 강릉 지역의 옛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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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하서라(河西良), 하슬라(何瑟羅)분야인문지리유형지명성격고지명소재지강원도 강릉시시대고대-삼국-신라성격고지명소재지강원도 강릉시

 정의

강원도 강릉 지역의 옛 지명.

키워드

하서정

내용

본래 예국(濊國)의 고도로서, 한무제(漢武帝)가 한사군(漢四郡)을 설치할 때 임둔군(臨屯郡)을 두었던 곳이다.

고구려 때에는 하서라(河西良, 또는 何瑟羅)라고 하였다가, 신라의 영토가 된 뒤 512년(지증왕 13)아슬라주가 되어 처음으로 관리가 파견되어 통치하였다. 523년(법흥왕 10)에는 이곳에 군사령부인 하서정(河西停)이 설치되어 군사기능을 강화하였다.

선덕여왕 때 주를 소경(小京)으로 승격시켜 정복지역의 유공자를 이주시켜 그들의 정치세력을 견제시켰다. 658년(태종무열왕 5) 다시 아슬라주로 바꾸고 도독(都督)을 두어 진수(鎭守)하게 하여 군사력을 강화함으로써 삼국통일에 대비시켰다. 757년(경덕왕 16)명주(溟州)로 이름을 바꾸었고, 1995년강릉시와 명주군이 통합되어 새로운 강릉시가 되었다.

아슬라라는 지명은 ‘큰 바다’ 또는 ‘아름다운 자연의 기운(氣運)’ 등을 뜻하는데, 이는 이곳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에서 유래한다. 신라시대에 말갈족과 국경을 접한 지역으로, 국경분쟁이 잦았던 곳이다. 이곳은 영동지방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영서지방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로서 예로부터 중요한 곳이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아슬라(阿瑟羅))]
아슬라(阿瑟羅)

인문지리지명

 강원도 강릉 지역의 옛 지명.   


이칭 하서라(河西良), 하슬라(何瑟羅)분야인문지리유형지명성격고지명소재지강원도 강릉시시대고대-삼국-신라성격고지명소재지강원도 강릉시

 정의

강원도 강릉 지역의 옛 지명.

키워드

하서정

내용

본래 예국(濊國)의 고도로서, 한무제(漢武帝)가 한사군(漢四郡)을 설치할 때 임둔군(臨屯郡)을 두었던 곳이다.

고구려 때에는 하서라(河西良, 또는 何瑟羅)라고 하였다가, 신라의 영토가 된 뒤 512년(지증왕 13)아슬라주가 되어 처음으로 관리가 파견되어 통치하였다. 523년(법흥왕 10)에는 이곳에 군사령부인 하서정(河西停)이 설치되어 군사기능을 강화하였다.

선덕여왕 때 주를 소경(小京)으로 승격시켜 정복지역의 유공자를 이주시켜 그들의 정치세력을 견제시켰다. 658년(태종무열왕 5) 다시 아슬라주로 바꾸고 도독(都督)을 두어 진수(鎭守)하게 하여 군사력을 강화함으로써 삼국통일에 대비시켰다. 757년(경덕왕 16)명주(溟州)로 이름을 바꾸었고, 1995년강릉시와 명주군이 통합되어 새로운 강릉시가 되었다.

아슬라라는 지명은 ‘큰 바다’ 또는 ‘아름다운 자연의 기운(氣運)’ 등을 뜻하는데, 이는 이곳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에서 유래한다. 신라시대에 말갈족과 국경을 접한 지역으로, 국경분쟁이 잦았던 곳이다. 이곳은 영동지방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영서지방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로서 예로부터 중요한 곳이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아슬라(阿瑟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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