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단계에서 나타난 위아래로 뛰거나 소리지르고 위협하는 행동은 ‘사회적 행동‘이었다. 거울 속의 침팬지를 다른 누군가로 생각한것이다. 반면, 두 번째 단계에서 나타난 행동은 ‘자기인식 행동‘이었다.
겨울 속의 침팬지가 자기라고 생각한 것이다.
갤럽 교수는 침팬지가 ‘자기인식‘을 할 줄 안다는 것을 명확히 하기위해 2차 실험(마킹 테스트)에 들어갔다. 그는 침팬지들을 마취시킨 뒤,
눈썹과 귀 위에 빨간 물감을 칠했다. 거울 앞에 선 침팬지는 이젠 어떤반응을 보일까? 침팬지는 거울 속의 자신을 기억했다. 그리고 빨갛게표시된 눈썹과 귀를 만지고 긁어 댔다. 침팬지는 거울을 도구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침팬지가 본 건 자신임이 확실했다. 자신을 타자(거울)의눈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자의식이 있다는 것이었다.
1970년 갤럽 교수는 이러한 실험 결과를 저명한 과학 전문지 <사이언스>에 ‘침팬지 : 자의식‘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과학계는 물론 미디어가 들썩인 건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당시만 해도 ‘동물은 감정과의식, 마음이 없는 단순한 기계일 뿐‘이라는 데카르트의 주장이 학계 전반에 퍼져 있을 때였다. 거울 실험은 동물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을 바냈다. 지금은 동물이 어떤 형태든 인간의 자의식과 비슷한 정신 작용을한다고 보는 학자들이 많아졌고, 최근에는 유인원과 코끼리, 돌고래 등거울 실험을 통과한 동물은 ‘비인간인격체"conhuman person 라고 주장하면서 동물원 전시·감금과 동물실험 등을 금지해야 한다며 이들의 신체적권리를 주장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갤럽 교수의 거울 실험은 지금까지2,500회 이상 논문에 인용된 ‘세기의 실험‘ 중 하나로 꼽힌다. - P314

최근에는 미국의 변호사 스티븐 와이즈가 이끄는 비인간 관리프로젝트 NhRP, Nonhuman Rights Project가 비인간인격체 운동의 중심에 서 있다. 스티븐 와이즈는 동물행동학자 도널드 그리핀의 논의를 발전시켜 동물을분류했다. 그에 따르면 욕망이 있고, 의도를 가지고 행동하고, 그런 자신을 인식하는 자율적 의식을 가진 게 100퍼센트 확실하다면, 그 중의자율성 지수AutonomyValue는 1이다. 이런 의식이 전혀 없는 게 확실하다면0이고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상태는 0.5이다.
이를 이용해 와이즈는 동물을 네 가지로 나누었다. 제1 범주는 0.9이상으로 자의식의 존재 여부를 알아보는 거울 실험을 통과한 동물이다.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 돌고래, 코끼리 등이다. 제2범주는 0.5 초과 0.9 미만인 동물이다. 고차원적인 자의식은 없지만 의사소통과 사고가 가능하며, 인지능력이 있다. 포유류와 조류, 파충류, 어류 등이 속한다. 그리고 우리가 의식의 존재 여부를 당분간 알 수 없는 동물을 제3법주(0.5)로, 자극에 단순히 반응하는 종을 제4범주(0.5 미만)로 묶었다."
비인간권리프로젝트는 유인원, 코끼리, 고래, 돌고래 등 비인간동물을 자연인이나 법인과 같은 법률상 권리주체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물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신체의 자유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동물의법적 지위 변경을 통해 비인간인격체의 전시·공연 금지, 동물실험 금지등을 노린다. - P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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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스가 여키스영장류연구센터로 찬텍을 만나러 갔을 때, 찬텍은미동 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찬텍이 수화로 말했다.
"엄마 린, 차에 가자 집에 가자."
그녀는 찬텍에게 아프냐고 물어보았다.
찬텍은 "아프다" hurt 라고 대답했다.
"어디가 아프니?"
찬텍은 "마음"feelings 이라고 대답했다."

타자에 대한 환대가 혐오로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얼마 뒤 존 트림피인문사회대학 학장은 ‘찬텍 프로젝트‘의 종결을선언한다. 그는 이 결정이 습격 사건과 관련이 없다면서도 "찬텍의 몸집이 너무 커지고 빨라져, (찬텍을 위해) 증축하려고 하는 시설 또한 적당하지 않을 것 같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고 밝혔다. 미국 국립보건원NH, 국립과학재단NSF 지원하는 연구 프로젝트였다. 마일스는 반대했지만 결정권이 없었다.
이 사건 뒤 찬텍은 채터누가를 떠나야 했다. 찬텍은 다시 그가 태어난 감옥 같은 케이지로 돌아갔다. 마일스가 찬텍과 함께 산 지 8년째 - P302

어떻게 보면, 찬텍은 괴물이었다. 인간도 아닌 오랑우탄도 아닌, 반인반수, 인류학계에 휘몰아친 1960~1970년대의 수화 연구 열풍은 이런 유인원을 열 마리 이상 탄생시켰다.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은 네댓 살만 되면 인간 어른보다 훨씬 센 힘을 갖는다. 화가 나서 생긴 약간의 완력에도 사람은 크게 다칠 수 있다. 그걸 모르지 않았을 텐데, 과학자들은 그들을 집 안으로 들였다. 그리고 버렸다. 말하는 유인원들은 어정쩡한 삶을 살다가 지금 연구실의 좁은 시멘트 방에서, 동물 보호소에서 아픈 과거를 삼키며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 - 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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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주의는 원주민의 몸에도 흐르지만, 동물의 몸에도 흐른다.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원주민과 아메리카들소와 늑대와의 관계를 살펴보면,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원주민과 사자와의 관계를 분석하면 이들의 신체를 식민주의가 관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구 생태계의 지배계급은원주민과 동물의 삶터를 점령하고, 그들을 계몽해야 할 야만으로 치부하며, 그들의 몸을 자신의 정치체제에 복속시킨다.
사실 짐바브웨 사자를 멸종 위기에 빠뜨린 건 영국 제국주의다. 제국주의는 아프리카의 사자를 비롯해 코끼리, 침팬지, 고릴라를 잡아 동 - P277

물원에 처넣거나 박제해 서재, 박물관의 진열장 안에 넣었다. 동물들은그렇게 멸종 위기의 나락에 빠졌다. 그런데 이제 와서 영국의 연구기관이 황제의 사자에게 GPS를 달고 서구의 언론이 앞장서 야생동물 보전을 설파한다. 사자 세실도 영국 식민주의자 세실 로즈의 이름을 따왔다.
그는 남아프리카를 통치하던 식민지 관료였으며, 짐바브웨에서 다이아몬드를 채광하는 사업가였다. 만약 일본인 연구자들이 지리산 반달곰에 ‘이토 히로부미‘라는 이름을 붙이고 GPS를 달아 실시간으로 관찰한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분개할 것이다. - P278

아프리카 야생에 대한 지배는 식민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 바뀌었다고 댄 브로킹턴은 말한다. 식민지 시절 닥치는 대로 사자를 잡아들였다면, 지금은 쿼터를 주고 사냥허가권을 판다. 보전의 외피를 둘러쓰고이윤을 창출한다. 놀라지 마시라. 주류 학자들은 스포츠 사냥이 야생 보전에 기여한다고 주장한다. 한국 기준에서는 진보적으로 보이는 세계자연기금도 스포츠 사냥을 반대하지 않는다. 옥스퍼드대학 야생 보전팀조차도 ‘지속가능한‘ 스포츠 사냥을 주장하는 미국의 이익 단체 ‘댈러스사파리클럽‘에서 일부 후원을 받고 있다. 이들의 논리는 이렇다. 외국인 갑부에게 사냥 허가권을 주고 번 돈은 가난한 아프리카 경제에 기여한다. 아프리카 국가들도 여기에 대체로 수긍한다. 정부는 토지 소유주에게 자신의 땅을 민간 사파리로 바꾸도록 권장한다. 짐바브웨에서는야생동물의 경쟁자인 가축의 방목지 27만 제곱킬로미터가 민간 사파리로 바뀌었다. 귀족 사냥 여행의 주 고객은 미국과 유럽 등 옛 제국주의나라의 갑부들이다. 짐바브웨는 독립했지만 잡혀가는 동물, 잡아가는 인간은 달라지지 않았다. - P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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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방법 : 평균 비교 vs. 역사서술 방식

닉슨은 미국 역사상 최초로, 그리고 유일하게 해임된 대통령이다. 그래서 닉슨의 사임은 실제로 일화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일화라는 이유가 관찰의 중요성을 감소시키는 것일까? 드물고 색다른 사건이 갖는취약성은 인정해야만 한다. 뒤에서 보겠지만, 내가 관찰한 침팬지 중 하나는 유사한 상황 하에서 닉슨과 유사한 반응을 보였다(물론 말로 표현한부분은 빼고). 그러한 사건들을 이해하고 분석하기 위해서는 그 사건이만들어지는 과정이나 각 개체들의 개입 방법, 그리고 이전의 것과 비교해서 그 상황에 특별한 것은 무엇이었는지를 하루하루 기록하는 것이필요하다는 사실을 초기 연구를 통해 배웠다. 단지 침팬지들의 행동 빈도를 세고 평균을 내는 대신 연구 프로젝트에 역사 서술 방식을 도입하고자 했다.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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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 - 청일전쟁부터 태평양전쟁까지
가토 요코 지음, 윤현명 외 옮김 / 서해문집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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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청일전쟁(1895)의 승리로 한국에서는 일본의 압도적인 우위가 확립된 것처럼 보였지만 이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한국은 근대 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모색하고 있었고, 러시아와 일본이 한국을 둘러싸고 세력 균형을 유지하는 상황이 전개된 것입니다(1897년 대한제국 수립). 자, 이쯤에서 러시아가 삼국간섭(1895)을 통해 일본에 압력을 가했기 때문에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좋아졌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때의 중국은 청을 가리키는데, 청의 정치를 움직이는 사람은 다름 아닌 이홍장이었습니다.
한편 러시아의 중국 정책은 어떠했을까요? 이홍장의 대러시아 접근정책에 호응하듯이 러시아의 대중국 정책도 활발해집니다. 조금 전에 러시아는 한국보다 만주에 흥미를 가졌다고 말했는데, 정말로 러시아는 시베리아의 남쪽, 즉 중국 동북부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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