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연휘발유의 전사 : 돈의 부작용

사실 미즐리의 연구팀은 엔진 노킹 문제의 완벽한 해결책으로 에탄올을 수년 동안 밀기도 했다. 그런데 왜 에탄올을 버리고 엄청나게 유독하다는 걸 누구나 아는 물질을 택했느냐고? 너무 충격받지 말길 바란다. 돈 때문이었다.

에탄올의 문제는 생산하기가 너무 쉽고 저렴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특허를 낼 수 없었다. 찰스 케터링의 회사 델코는 거대기업 제너럴모터스에 1918년에 인수된 상태였고, 그의 연구팀은 자기들이 돈 안 되는 연구만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실제로 돈을 벌 수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받고 있었다. 제조가 너무 쉬워 집에서도 만들 수 있는, 그래서 전매 상품화할 수 없는 에탄올은 그런 면에서 쓸모가 없었다. 연구팀은 납으로 가기로 했다.

혹시라도 토머스 미즐리가 ‘비열한 기업 논리에 악용당한 착한 발명가’였다고 생각한다면, 그렇지 않다. 납을 사용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강하게 주장했던 것은 미즐리였다. 자기가 직접 계산까지 해봤다. TEL 연료는 갤런당 3센트를 더 붙여 팔 수 있으리라는 계산 결과를 얻었고, 광고 캠페인을 공격적으로 벌이면 휘발유 시장의 20퍼센트를 점유할 수 있으리라고 내다봤다 - < 인간의 흑역사, 톰필립스 지음, 홍한결 옮김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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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센코주의와 유전학 : 이념의 부작용

리센코의 이론들은 맞기는커녕 엉터리에 불과했지만, 권력자들의 편향된 이념에 잘 맞는다는 장점이 있었다. 1930년대에는 이미 유전학이 학문 분야로 정착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리센코는 유전학을 전적으로 거부했다. 유전자가 존재한다는 것조차 부인했는데, 그 이유는 개인주의적 세계관을 부추긴다는 것이었다. 유전학은 생물체의 특성이 고정되어 변하지 않음을 시사했지만, 리센코는 환경을 바꾸면 생물체의 형질이 개선되며 그 개선된 형질을 자손에 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심지어 환경만 맞으면 농작물의 종이 바뀔 수도 있다고 했다. 농작물을 심을 때는 더 촘촘하게 심어야 한다고 농부들에게 지도했는데, 이유는 같은 ‘계급’의 식물인 경우 절대 서로 자원을 놓고 다투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 < 인간의 흑역사, 톰필립스 지음, 홍한결 옮김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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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표준의 혼란

조사를 한 뒤 원인이 밝혀졌는데, 궤도선은 충격량, 즉 자세 조정에 필요한 추진기 분사량을 표준 미터법 단위인 ‘뉴턴 초(N·s)’로 계산하고 있었다. 그런데 외부 업체에서 납품받은 지상 컴퓨터 상의 소프트웨어는 야드파운드법 단위인 ‘파운드 초’를 쓰고 있던 것이다. 그 결과 추진기를 분사할 때마다 그 효과가 예상보다 네 배 크게 나타났고, 우주선은 목표로 했던 고도보다 약 100킬로미터 더 화성 표면에 가깝게 접근하고 말았다. 이어서 궤도에 진입하려는 순간 화성 대기에 강하게 충돌했고, 3억 2,700만 달러짜리 최첨단 우주선은 바로 산산조각이 났다 - < 인간의 흑역사, 톰필립스 지음, 홍한결 옮김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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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자 콜롬버스의 잔인성

콜럼버스가 나타났을 때 타이노족도 같은 문제에 직면했다. 처음 몇 차례의 만남에서 타이노족은 신뢰를 보였고, 친절하고 후한 대접으로 콜럼버스를 감탄시켰다. 낯선 이들에게서 친절하고 후한 대접을 받았으니 콜럼버스 역시 인간된 도리에 맞게, 이렇게 일기에 적었다. “종으로 부리기 딱 좋겠다.” 그리고 며칠 더 생각해보고는 이렇게 또 적는다. “병력 50명만 있으면 이들을 모두 복속시켜 필요한 일을 시킬 수 있을 것이다.” 정말 대단한 양반이다. - < 인간의 흑역사, 톰필립스 지음, 홍한결 옮김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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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식민 지배 덕분에 피식민국이 통치 체제를 개혁하고 법치를 중시하게 되었는가? 그 얘기는 제국주의 열강과 원주민들 사이에 맺어진 수많은 조약의 역사와 부합하지 않는다. 그 역사는 ‘법치의 존중’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니까.

그 얘기를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가서 해보라. 영국, 미국 정부와 수백 건의 조약을 맺었지만 모두 파기당하고 땅을 빼앗긴 그들 말이다.

그 얘기를 영국과 와이탕이 조약을 맺은 마오리족에게 가서 해보라. 영어와 마오리어 사이의 갖은 번역 문제로 합의 내용의 모호성을 영국 측에서 편리한 구실로 이용할 수 있었던 그 조약 말이다.

그 얘기를 남아프리카의 영국령 카프라리아에 살던 코사족에게 가서 해보라. 1847년 새로 부임한 총독 헨리 스미스 경이 자기들 앞에서 호탕하게 웃으며 평화 조약서를 보란 듯이 찢어버리는 광경을 보고만 있어야 했던, 그리고 그의 명령에 따라 지도자들이 1명씩 앞으로 나가 총독의 군화에 입을 맞추어야 했던 그들 말이다. - < 인간의 흑역사, 톰필립스 지음, 홍한결 옮김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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