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랄라시아 세계 지대를 이루는 파푸아뉴기니, 태즈메이니아, 오스트레일리아가 빙하기에 하나로 연결되어 있던 사훌(Sahul)에 사람들이 이주하여 정착하는 과정의 일부였다 - <빅 히스토리>, 데이비드 크리스천 외 2인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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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와 바퀴

마야인이 즐긴 특이한 오락은 하나 더 있다. 마야 아이들은 점토로 만든 작은 재규어 장난감을 갖고 놀았는데, 일부 장난감의 다리에는 바퀴 달린 축이 붙어 있었다. 마야인은 바퀴 달린 장난감을 만들었지만 어른이 쓸 바퀴 달린 탈것을 만든다는 생각은 못 한 듯하다. 물론 탈것을 끌 커다란 가축이 없었으니 바퀴 달린 수레는 쓸모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퀴를 토기 빚는 돌림판에 쓰고, 흐르는 강물에 수차를 만들어 맷돌을 돌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마야인이 장난감 이외의 분야에 바퀴를 활용했다는 증거는 없다. 바퀴 없는 아프로·유라시아 역사를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 <빅 히스토리>, 데이비드 크리스천 외 2인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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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란은 여성의 지위에 대한 초기 이슬람의 관점이 복잡했음을 보여준다. 여성을 재산이 아니라 존중할 반려자로 묘사한 대목이 종종 등장하며, 무함마드도 아내들에게 다정하고 존중을 표했다. 또 『쿠란』은 여아 살해를 불법화하고, 혼인은 신부의 동의가 필수적인 계약이라고 간주했다. 혼인 지참금을 남편이 아니라 아내가 받아야 한다고 촉구하며 여성이 집안에 가져온 부를 관리할 권한을 갖도록 허용했다. 이 대목들 때문에 일부 성역사학자는 당대의 많은 사회보다 이슬람 사회의 법이 여성에게 상당한 권리를 부여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다른 역사학자들은 여성의 성적·사회적 삶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여성은 남편을 1명만 얻을 수 있는 반면 남성은 아내를 4명까지 가질 수 있는 이슬람 법의 노골적인 가부장적 성격을 지적한다. - <빅 히스토리>, 데이비드 크리스천 외 2인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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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공화국의 붕괴


귀족은 대량 실업, 엄청나게 많은 도시 빈민, 영향력이 강해지는 상인 계급의 요구에 대처할 능력이 없었기에 공화국이 붕괴하고 전제적 제국이 출현했다.

BCE 1세기 중반의 로마 도시 빈민 인구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는 통계 자료가 약간 남아 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권력을 잡자 이탈리아 외곽에 퇴역병들을 위한 정착촌을 세우고, 원로원 땅에서 일하는 일꾼 중 3분의 1을 해방시키는 법을 제정했다. 그 결과 약 50만 명에 달하는 총인구 중 정부가 곡물을 지원하는 사람의 수가 32만 명에서 15만 명으로 줄었다. 따라서 카이사르의 법 이전에는 로마 인구의 약 64%가 정부의 지원을 받아야 생계를 유지할 정도로 가난했다고 볼 수 있다.

- <빅 히스토리>, 데이비드 크리스천 외 2인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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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 : 아테네 vs. 스파르타
- 민주적인 아테네가 더 불평등하다


역사적 증거를 살펴보면 여성에 대한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인식이 달랐고, 일반화가 위험할 수도 있음을 알 수 있다. 아테네 여성들은 공적 생활에 참여할 기회가 거의 없었고, 집 안에 갇힌 채 살아가야 했으며, 가족 이외의 남성과는 말을 나눌 수 없었다. 반면 스파르타 여성들은 공적 활동과 스포츠 경기에 적극 참여했다. 아테네는 여성의 혼인 연령이 14~15세인 반면, 스파르타는 18세였다. 아테네는 여성의 재산 소유를 금지했지만, 스파르타에서는 많은 여성이 재산을 소유했고, 대부분 가정을 관리했다. 스파르타 여성들은 읽고 쓰는 법도 배운 반면 아테네에서는 그런 교육이 정상이 아니었다. 아테네 남성이 매춘부를 찾으면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외국인 여성은 대개 사회적 통제를 받지 않았다) 여성의 불륜은 용납되지 않았다. 반면 스파르타에서는 남편이 전쟁터로 떠난 지 너무 오래되면 여성이 다른 남편을 맞이할 권리가 있었다. - <빅 히스토리>, 데이비드 크리스천 외 2인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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